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숫자 8에 담긴 의미를 아세요?-올덴부르크 무용단의 <에이트>

패션 큐레이터 2011. 10. 3. 08:00

 

 

SIDance, 서울국제무용축제의 두 번째 작품을 보고 왔다.

독일의 올덴부르크 댄스 컴퍼니의 <No. 8>란 작품이다. 말 그대로

8 이란 숫자를 연구하고 탐색한다. 무용을 보러 갈 때면 항상 긴장이 된다.

인간의 육체를 읽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고, 언어란 매개를 통해서만, 서로의 의견을

통어 해온 인간의 깊은 습속이 몸에 깊숙이 배어있기에, 몸이 발산하는 기운을

언어로 재 해석하고, 그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일련의 감정을

설명할 단어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는 이렇게 어렵다.

 

 

특히 무용처럼 무언으로 풀어가는 장르일 경우

소도구나 무대 장치를 일일이 기호적으로 풀어보기도 한다.

이 또한 언어적 습성이긴 하다. 현대미술을 그냥 생각하지 말고 즐기라고

예술가들은 말하지만, 이걸 글로 옮겨내어 써야 하는 평론가의 입장에선, 사실 작은

지푸라기라도 하나 잡고 싶은 심정에서, 공연에 메일 수 밖에 없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8개의

붉은 의자에 앉아있는 무용수들의 얼굴을 살펴본다. 객석을 향해 얼굴을 돌려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고, 다양한 표정들을 지어보이는 이들. 인간의 표정 속엔

다양한 세계가 잠재되어 있다. 그들이 그려갈 육체의 동선도 그렇다.

 

 

노르웨이 출신 크리스텔 요하네센이 안무한 올덴부르크 무용단의

넘버 에이트는‘8’을 문화적/신화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시바의 팔이 왜 여덟 개인지,

창조의 제 8요일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지 안무자와 무용단은 우리 삶에서 ‘8’이 지닌 비밀과

 의미의 역사를 풀고, 해체하고, 재해석하며 증폭해 나간다. 숫자 8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든 수비학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는 은유였다.

 

 

수비학(Numerology)은 인간의 숫자에 담긴 의미들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전 시대의 다양한 문명들은 이 숫자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점술로 썼다. 가령 마법의 정사각형 숫자 배열로

인생의 기로를 점치는 중국의 마방진은 고대 이집트와 인도의 점술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매개다. 그 체계가 어떻든 숫자에는 각각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1은 창의성과 자신감, 2는 협력

3은 표현과 감각과 같은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8의 의미는 어떨까?

수비학에서는 숫자 8은 강한 권위의식, 의사결정 능력

강한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용 작품 속에서 8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8을 뒤집어 놓으면 수학의 무한대가 된다. 그래서일까?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의 숫자도 8명이다. 각 무용수들은 자신을 번호로 소개한다.

이것이 그들이 사용하는 유일한 실제 언어다.

 

 

각 무용수들은 각각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타로 카드를 들고

일종의 성을 쌓는다. 이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타로 카드를 안무에서 주요한 기제로 썼다는 점이다. 결국 타로 카드도 인간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카드에 새겨진 그림을 이용하듯, 무용수들의 역할과 움직임은

이 타로카드의 그림 속 세계를 모사한다. 정말 쉽지 않은 작품이다.

글을 쓰면서도, 무용은 연극과 달리 정말 해석의 여지들이

만만치 않음을, 해석의 고통을 토로하게 된다.

 

 

무용수들의 춤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다.

작품 속 인물들과 상황은 강인함에서 갑작스런 나약함으로

위험에서 아름다움으로 급박하게 변화한다. 슬픔에서 기이한 감정으로

전이해간다. 두 개의 감정들이 서로 충돌하며 부딛치며 만들어내는 모순은, 인간의

복잡한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숫자 8은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 속에 녹아

있다. 8 이란 숫자는 자세히 보면 두 개의 원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다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세계, 평화의 어울림을

표현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형상화를 위한 무용수의

몸은 아름다운 지상의 무게를 안고 간다.

 

 

작품 공연이 끝나고 무대 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안무가와 디렉터, 무용수들이 나와서 작품에 대해 자신의 생각들을

말해준다. 사실 이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처럼 현대무용이란 개념 자체가

여전히 미약하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사실 현대무용이나 발레 양쪽 모두

항상 '그들만의 학예회'가 되어왔던게 사실이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서울 국제 무용페스티벌도

올해로 9년째에 접어들지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럴수 밖에 없다. 무용은 여전히 우리에게

먼 존재이고, 보기 힘든 공연이며, 그들만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만든 건 결국 국내의

많은 예술가들의 탓도 있다. 어느 장르보다도 폐쇄적인 교습방식, 예술가들의 고집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갖혀있었다. 이런

페스티벌이 좀더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몰고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