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타격의 과학

패션 큐레이터 2011. 10. 2. 19:29

 

 

어린시절 나는 꽤나 야구장을 열심히 드나들던 꼬마 야구회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된 한국프로야구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스포츠의 한 축이 되었다. 프로야구 원년, 각 기업들은 어린이 회원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선물과 이벤트를 마련했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스 등, 특정 팀을 응원하기 보다 사은품에 눈독이 갔던 나는 3년 내내 팀을 바꿔가며 야구잠바와 모자를 갈아탔다.

 

야구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 결합된 팀 플레이다. 9명의 조합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어떤 공격의 흐름을 지속하고 유지할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예전엔 단순하게 게임을 즐기고 좋아하는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 것이었지만, 최근 들어 몇 몇 전문 야구서적들을 보면서, 야구란 게임이 인생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주리 대학의 심리학과 부교수인 마이크 스태들러가 쓴 <야구의 심리학>과 메이저 리그의 마지막 4할대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가 쓴 <타격의 과학>은 바로 야구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다. 한 편의 경기는 인생의 궤적과 닮았다. 그 이면에 담긴 심리를 다양한 심리학 연구 방법론을 통해 설명한다. 마이크 스태들러의 책은 '야구는 심리전'이란 전문가들의 말을 확증시켜준다. 여기에 철학자로서 스포츠의 역사와 매혹의 요소를 연구해온 한스 굼브레히트의 <매혹과 열광>은 그저 돈과 권력을 놓고 투쟁하는 스포츠에서, 인간의 눈에 현존하는 몸의 아름다움과 본능을 승화시키는 다양한 미적 원칙에 대해 설명한다.

 

야구를 포함한 구기 경기가 아름다운 건, 스포츠의 본질이 경쟁이 아닌 아레테(arete), 즉 그리스 시대 귀족들이 자신들의 몸을 향상시키고 정신과 신체가 오롯하게 질서잡힌 존재로서의 '탁월한 존재'를 꿈꾸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은 항상 우리의 눈 앞에 현존한다. 현존이란 무엇인가? Presence(현존)은 어떤 것의 앞에 있다는 뜻의 라틴어 프라에세에서 나왔다. 그만큼 손에 닿을 수 있고, 우리가 접촉할 수 있으며 감각으로 직접 지각할 수 있는 것이란 거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이란 시간을 배제하진 않지만 항상 시간을 특정한 장소에 붙들어 놓는다. 우리가 축구장과 야구장에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심리적 의미를 탐색하기 위한 여정인 셈이다.

 

공을 때리고 달리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좋은 공을 고르고 기다리는 것. 특정 투자안을 놓고 그것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를 평가하고, 위험요소를 어떻게 분산시키는 지 공부하는 재무관리나 투자론의 원칙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다이아몬드를 돌기 위해, 구사하는 다양한 주루 플레이와 타자의 배트에 맞아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계산하는 인간의 능력, 공에 대한 감각, 이 모든 것들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풀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3시간 여의 야구게임에서 실제로 치고 달리는 시간은 30분이 겨우 넘는다. 그만큼 공을 기다리고 치고 달리는 멘틀 게임이다. 홈 경기와 어웨이 경기의 차이, 왜 누군가는 심리전에 당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얻고 싶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가을이다. 경기장 가기에 너무 멋진 시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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