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으로 만나는 프리다 칼로-여자의 외출이 외로운 이유
서울 세계 무용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풍성한 외국의 현대무용단을 비롯
육체를 통한 소통을 꿈꾸는 이들의 무대가 펼쳐진다. 10월 16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및 호암아트홀 등에서 열린다. 기대된다. 올해로 14년째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는 열악한 현대무용에 대한 지평을 확장
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은 보이지만
해를 더할 수록 공연의 성과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이번 축제의 개막작은 독일 자를란트 주립발레단-돈론 댄스 컴퍼니의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성화가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고, 무엇보다 절체절명의 질박한 생을 살아야 했던
화가의 내면을 육체를 통해 어떻게 형상화할지 내심 기대했던 공연이었다.
멕시코의 전설적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 그녀의 생은
뛰어난 화가로서의 자질과 작품세계보다, 사실 그녀가 평생 사랑하고
사랑한 만큼 상처받았던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생을 통해 투영된 일면이 더 많다.
그만큼 여성의 삶을 직시하고 풀어가기 보다, 남성이란 타자를 통해 여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사고로 인해 32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두 팔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축복(?)아닌 축복을 예술로 승화했던 화가. 고통스런
자신의 상황을,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유일한 무기가
되어준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자신의 <자화상>을 비롯 모든 작품에 사랑하는
디에고 리베라의 흔적을 각인시켰던 그녀. 이번 무용작품은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궤적으로 4개의 무대를 이용, 쫒아간다. 4명의
무용수가 등장, 그녀가 살았던 <푸른집>을 배경으로 그녀의 내면 깊숙히 숨겨진
푸른 상처의 멍울을 육체로 풀어낸다. 프리다 칼로의 통제할 수 없는
다채로운 세계는 그 자체로 보는 이에게 충격이자 감정을
이입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푸른집은 말린 꽃과 나비, 책, 인형, 그림 등
멕시코의 전통적 색채가 강력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실제
칼로의 피폐한 영혼이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상정된다.
4명의 안무가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사실 무용작품을 보면서, 그녀가 걸어갔던
회화적 세계의 단계들을 곱씹어 보았다.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 디에로 리베라, 그러나
그 사랑은 철저한 배신과 상처로 돌아왔다. 누구보다 강렬하고 치열한 눈빛으로 세상과 대면하면서
싸웠고, 그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했지만 실상 내면은 너무나도 약하고 여린 상처로
가득한 낑낑거리는 동물같았던 여자. 바로 프리다 칼로였다. 무대의 첫 시작을
삼각 면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조각난 얼굴을 치장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분열되고 나뉘어진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너무나도 당연한 무대적 장치일 뿐이다.
‘나의 마지막 외출이 즐겁기를, 그리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이번 작품에서 세 여성 무용수들은 프리다 칼로의 그녀의
또 다른 자아로 등장한다. 서로의 육체는 엉키고 뒤섞이며 분열된
자아가 충돌하고 마찰을 빚는 형상들을 보여준다. 그 호흡은 강인하고 견고하다.
내가 무용을 좋아하는 것은, 똑같이 무대에서의 현존, 바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짐이란 무기를
사용하지만 연극과 달리 무언으로, 더욱 강렬하게 감정을 투사하는 매개로 육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때 몸은 단순한 인간의 영혼과 질료를 담는 그릇을
넘어, 타자를 향해 세상의 목소리를 전하는 매개가 된다.
안무가 마거리트 돈론은 그녀의 다면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주요 갈등의 요소가 되었던 남편이자 벽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둘 사이의 정신적 충돌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용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음악의 배열과 선곡은 무용 공연 전체의 실루엣을 그려내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한다. 음악가 클라스 빌레케는 영상과 전통음악을 조화시켜, 작품의 사운드 트랙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냈다. 음악의 선율은 인간의 육체를 빌어 육화된 언어로 우리 앞에 펼쳐지며 다양한 몸의 언어는
붉은 꽃잎으로 치장한 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칼로의 내면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여인의 마지막 외출을
감행하는 칼로. 여인의 외출이 화려함 보단, 뭔가를 깊숙히 감춘 채 잠행하는 그 모습에서
상처에 노출된 이 땅의 여인들, 그 삶을 떠올리게 된다면 지나친 언어 도단일까?
사진제공: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