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친구는 함께 익어간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후로 항상 함께 다니는 멤버들과 모임자리를 가졌습니다. 8명의 지인에, 새롭게 합류한 CBS 대기자이자 국장님이신 변상욱 기자님도 함께 했습니다. 예전 이프시절, 글 쓰실 때 워낙 맛깔나게 쓰시는 글에 반해 한번 뵙고 싶었는데요. 이번 모임에서 뵈었습니다. 태권도와 유도, 수벽치기, 검도에 이르기까지 11단의 경력을 가진 기자분이에요. 문과 무를 겸했다고 할까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날렵하면서도 사람들을 대하며, 사용하는 언어는 오랜 기자생활로 가다듬어진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에 박학하신 분을 오랜만에 뵈었어요. 만남이 단순하게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내가 모르고 있던 주제에 눈을 뜨게 해주는 사람, 혹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이지만 그 속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 그를 통해 내 안에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 거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 이런 분과의 만남은 참 행복합니다.
변 기자님과 같은 줄에 앉아있는, 체크 셔츠에 안경을 쓴 분은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챔프>의 프로듀서 임희철님입니다. 말과 인간의 교감을 다룬 영화답게, 가족영화로 추석시즌에 좋은 결과를 내었으면 하는 마음이죠. 왼편에는 끝에서 부터 영화 프로듀서 김효정님, 다음엔 인터뷰의 여왕 천수림 기자, 신지혜 아나운서, 천진란 작가님입니다. 그리고 뒤에 합류한 심현정 음악감독님, 영화 <올드보이>와 <아저씨>의 음악을 맡았었죠. 지금은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작업을 하고 계신다네요. 언제 만나도 행복한 이들입니다. 갖고 있던 2008년 샤토 몽페라 와인을 두 병 가지고 가서 함께 마셨고, 칠레산 와인 한병 추가. 여기에 쫄깃한 고르곤졸라 치즈를 엊은 피자와 버섯피자, 마르게리타 기본피자, 깍뚝썰은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 과일 등이 차례 차례 나왔습니다.
영화 프로듀서란 직업은 어디를 가나, 타인의 이야기를 굉장히 몰입해서 듣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픽션보다 더욱 강력한 영화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요. 이날도 변상욱 기자님의 암스텔담 근무 시절, 들려주신 '아주 강력하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원래는 희철님이 프로듀싱 하셨던 영화 <호우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이쪽으로 빠졌습니다. 저도 영화 호우시절에 대한 리뷰를 썼었지요. 제가 좋아하는 허진호 감독님의 작품이었고, 지금도 그 작품의 전반적인 정조와 감성에 찬성합니다. 감독님의 성품이랄까,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거든요. 예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할때 제작부 생활을 하면서 뵈었었는데 지금은 중국에서 영화 작업 중이시더군요. 누구에게나 영화 <호우시절>같은 느낌의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건지, 비슷한 스타일의 이야기에 눈이 가는 편입니다. |
작가들이 아무리 리서치를 한들, 머리 속으로 치열하게 구상을 하더라도, 진솔한 한 사람의 이야기의 힘, 그 힘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이란게 진실하다고 그나마 느끼는 것은, 글을 쓰면서 저 스스로가 감정을 몰입할 수 있었고, 정서적으로 흔들린 글은, 그것을 읽는 사람도 흔들리는 걸 봤습니다.
서초동에 있는 와인바를 골라서, 오늘의 호스트였기 때문에 손님들을 기다렸습니다. 사촌누나가 운영하는 대형 와인바 겸 샵입니다. 저도 처음으로 가봤습니다. 정갈하게 정리된 테이블을 메우는 사람들이 한명 한명 들어옵니다. 공간을 메우는 것은 그리움일 겁니다. 샤토 몽페라의 입안 가득 채워진 향도 좋지만, 결국 좋은 작황의 결과로 나온 포도가 좋은 와인을 만들듯, 주변의 친구들이,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힘과 연대, 그들의 품성이 오늘날의 나를, 우리를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투자해야 하는 이유고요. 자칭 우테크(友-tech)라고 할까요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저는 유독 감사의 마음이 큽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친구 관계를 규정하는 학교, 동창여부, 이런 것과 상관없이 영화란 매체에 대한 공감의 힘, 이것 하나 만으로도 뭉친 멤버들이지요. 함께 이야기 하다보면, 그/그녀의 사고가 보이고, 영화를 읽는 다양한 시선도 함께 배웁니다. 친구와 기울이는 한 잔의 와인처럼, 친구에게 닮아가고, 그 빛깔에 물들며, 그들이 토해놓은 정서의 샘 위에서 몸을 행구워도 기쁜 이유일겁니다. 그렇게 술과 친구는 역시 오랜 것이 좋고, 함께 익어가는 것이 좋은가 봅니다. 가을이 다가옵니다. 투자란게 뭐 별거인가요? 머쓱하게 고개 내밀고, 전화 한통이라도 따스하게 말 던져 보는 것이겠지요. 결국 우리가 외로울 때, 함께 있어줄 한 명의 친구를 위해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