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난 공부하러 룸살롱에 간다-룸살롱의 역사

패션 큐레이터 2011. 2. 23. 23:02

 

 

최근 모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 <패셔놀로지>라는 제목의 수업을 시작한지도 이제 세번째 시즌이 끝나갑니다. 자유예술캠프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인문학 강좌입니다. 인문학이 문화상품이 된 시대입니다. 자유예술캠프에서 매시간 4시간씩, 7주를 강의했습니다. 일반 기업이나 갤러리, 특정단체에 가서 한 회 강의를 하고 받는 비용보다 못한 강사료를 받으면서 이 강좌를 이끌었습니다. 여기에는 제 나름의 '곤조'같은게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저는 인문학이 소수의 부르주아들의 지적 유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강의는 유독 수강생들의 나이 폭이 컸습니다. 중3 학년 학생에서 72살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결국 인문은 인간의 무늬를 찾아내기 위한 여행이고, 저는 그 과정에서 옷이란 매개를 통해 인간의 면모들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살롱 드 모드-살롱의 역사를 되집다

홍대 앞 사진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원래 자예캠 수업 이후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학습 모임을 취재하고 싶다는 기자분의 의견 때문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7명의 멤버들은 복식사를 비롯 패션을 통한 사회읽기,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클럽을 결성을 했습니다. 클럽 이름이 <살롱 드 모드 Salon De Mode>입니다. 원래 살롱하면 한국에선 룸살롱을 떠올리지만 실제 역사에서 살롱은 바로크 시대 중기부터 시작된 학습 공동체, 나아가 문학과 예술의 토론을 위한 사교 공동체였죠. 왜 한국에선 폐쇄적인 방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룸살롱이 등장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사람들이 함께 대화와 토론을 이끌며 교류하는 공간, 살롱. 이 살롱의 기원은 고대 아테네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플라톤의 <향연>이란 책을 보면 사람들이 모여 포도주를 마시며 특정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 시절, 1000여개가 넘는 폴리스로 구성된 도시 국가다 보니, 사람들에게 '정치'란 멀리 떨어져 있는 화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학(Politics)도 이 폴리스가 어원이잖아요. 이 살롱의 기원이 된 그리스의 아고라(Agora)는 정치적 집회와 제전, 상품거래 등 다양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던 대화의 광장이었습니다. 다음 포털의 <아고라>도 사실은 이 기능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것이죠. 이 아고라의 정신이 로마시대로 들어오면서 <플라자(Plaza)>와 <포럼(Forum)>으로 이어집니다.

 

 

마담 조프랭의 살롱

 

초기 프랑스의 살롱 문화는 이탈리아에서 온 것입니다. 반 이탈리아계 여걸이었던 랑부이에 후작부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 궁정에 있던 살로네(Salone)를 본떠 사람들, 특히 문사들을 모았습니다. 이 당시의 살롱은 귀족들의 수집품이나 미술작품을 전시했던 공간으로서의 속성이 더 강했습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살롱은 '뷔로 데스프리(Bureau D'sprit), 즉 재능의 집이라 불리면서 편지를 쓰거나 회상록을 읽기 좋아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모임, 대화, 회의, 어울림의 공간으로 변모해가는 것이죠. 지식인 뿐만 아니라, 귀족, 학자, 시인, 예술가, 관리자, 군인, 심지어는 건달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토론하고 대화하는 공간이 됩니다.

 

1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살롱의 수는 800여개로 증가합니다. 살롱은 품위 있는 대중의 탄생과 판단력을 가진 개인을 육성하고 문학이론에 대해 토론하는 장소로 인정받게 되지요. 그림 속 마담 조프랭의 살롱에서는 제3 신분의 계몽사상가나 외국에서 건너온 저명한 중간계층의 문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요. 이 살롱안에서 만큼은 대화의 계층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즉 지위 자체를 도외시하는 사회적 교제의 성격을 띠었죠. 그만큼 귀족중심사회를 지탱하는 담론을 허물어뜨리는 혁명적인 사고와 생각이 잉태될 수 있었던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철학적 기반이었던 계몽주의도 결국 이 여인들의 천국이었던 살롱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니까요.

 

당국의 감시를 받는 금서를 읽으며 토론을 한 곳도 바로 이 살롱이었습니다. 그러니 살롱을 주관하는 안주인도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죠. 그림 속 주인공 마담 조프랭 시절이 로코코 시대 살롱 문화의 최전성기였습니다. 철학하는 시민계급의 여인으로 그는 디드로와 볼테르와 같은 철학자들을 후원했고 달랑베르가 디드로와 함께 <백과사전>을 편찬했다가 판금조치를 당하자 20만 프랑을 출판사에 보내 그 일부를 자신의 살롱에서 작성하게 했습니다. 이만한 후원자도 없습니다. 이번 특집기사의 주된 테마가 <나를 찾아가는 공부>랍니다. 늦게 시작하는 공부, 단순히 학위나 특정 과정이 아닌,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스스로 모임을 결성하고 나누는 그런 단체들을 찾았다고 하더라구요. 라캉 원전을 읽는 그룹도 있고 우리처럼 패션의 풍속사나 유행 사회학 분야의 텍스트를 읽어내는 그룹도 있고, 내용이 다양한가 봅니다.

 

 

초기 이 모임을 만들어놓고 저 스스로가 시간을 내지 못해 많이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적어도 한달에 두 번씩은 모여서 원전을 읽거나 발표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살롱 드 모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연락주세요. 앞으로 모임을 활성화시켜서 패션관련 전시를 보러 가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도 만들어서 질러보는(?) 일을 해보려 합니다. 저는 블로그를 잘 써서 책을 냈고 패션 큐레이터 1호란 인정까지 받았지만, 사실상 저의 노력은 대부분은 학문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요즘들어 패션 글을 더욱 쓰고 싶은 이유도, 결국 현실의 패션과 그 세계를 더욱 이해하고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지요. 물론 한국의 패션계에서 좋은 분들, 멘토들을 많이 만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알아요? 사업가들이 모여서 패션 공부를 하면서 멋진 신인 디자이너들을 육성하기 위해 패션 펀드도 만들고 사업체도 만들고 할지 말이에요. 18세기 조프랭 부인의 살롱이 그랬듯, 참신한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발굴하고 만나는 것 만큼 힘이 되는 일이 어디에 있던가요? 그것이 제가 (룸)살롱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토론해야 할 주제가 되겠군요. 올해는 말로만 하지않고 몸으로 많이 뛰어다닐 생각입니다. 패션 전시도 실제로 하고, 연극도 올리고 책도 마무리 해서 깔끔하게 보여주려고요. 이 과정에서 살롱 드 모드가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같이 하지 않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