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뉴욕에 간 김삿갓-캐롤리나 헤레라의 한복 패션

패션 큐레이터 2011. 2. 21. 16:30

 

 

올 2011년 뉴욕 패션 위크에서 단연 돋보인 한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아마도 한국인들에겐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구냐?'며 묻는 이들이 있지 않았을까

바로 1970년대와 80년대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로 유명했던 캐롤리나 헤레라다. 1939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출생한 미국인 패션 디자이너 헤레라는 올 해 봄/여름 시즌 한국패션의

향기를 뉴욕에 알렸다. 한국 전통복식의 요소들을 결합해 만든 이번 컬렉션은 한국

복식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서구인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신호탄이 될 것 같다. 지금 껏 한국 디자이너에 의한 전통복식의

재해석은 빈번했지만 서구 디자이너들이 적극적으로

우리의 것을 차용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 것은

한국의 갓과 한복의 여밈, 전통문양을 차용해 재해석한 디자이너의

시선 때문이다. 헤레라는 70년대를 풍미했던 디자이너다. 그녀의 고객 중에는

아메리칸 쉬크를 탄생시킨 재클린 케네디와 르네 젤위거등 탄탄한 인맥들이 자리한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한복의 매력에 빠져들었을까? 

 

 

동양에선 미인이 되기 위한 조건 중에서 머리결의 상태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오발선빈烏髮蟬 이란 말이 있다.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과 풍성한 머리숱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 여성의 풍성한 검은

모발과 구름처럼 높게 올린 가체, 다양한 장신구를 꽂은 쪽머리, 청초한 댕기머리

등 한땀한땀 쪽을 져서 변주한 우리내 여인들의 머리결에는 저항하기 힘든 매력이 숨쉰다.

 

디자이너는 한국 패션의 매력에 빠져 뉴욕에 있는

한국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다소 아쉬운 것은 고증상의 풍부한

해석과 내용이 뒷받침되었더라면 탄탄한 컬렉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은 남는다.

 

한국의 갓은 단순한 모자가 아니다. 서양에서도 근대 이전까지

모자는 사회계층과 부의 정도를 표현하는 액세서리였고 그 형태도 다양했다.

우리또한 그랬다. 특히 갓의 지름에 따라 양반 내에서의 사회적 분화를 표현했는데

전체적인 형태를 원으로 잡은 것은 한국인의 정신적 사고의 뿌리를 원의 형태로 해석해왔던

우리들의 습속 때문이다. 한국의 건국신화 중 유독 알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음양의 조화와 균형을 둥글게 표현하고자 했던 우리의 조형의식이 숨어있다.

 

 

디자인을 전개할 때 우리는 흔히 영감의 원천을

어떻게 변모시킬까의 문제로 고민한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발산되는 전략적 지점. 그것이 바로 디자이너에겐 영감을 촉발시킨

지점이자 재해석의 공간이었을 터.

 

 

조선시대 여성복식의 특징 중 하나가 하후상박이다.

상의는 타이트하게 아래로 갈수록 플레어로 퍼지는 형태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형태는 한복의 규범적인 미로 자리잡고 있는데

더 중요한 건 이런 실루엣이 등장하던 시대가 예학이 성행하던 조선시대란 점.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패션은 매우 에로틱한 측면을 띠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만큼 여성은 사회의 중심 세력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남성

중심적인 시선으로 규정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은은한 성적매력을

발산하는 옷차림새를 발전시켜왔다는 뜻이다.

 

 

헤레라는 한국 여성들의 전통 복식의 특징 중 하나인

속옷의 중첩효과에 눈을 돌린 듯 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내

여인들은 속옷을 첩첩이 겹쳐 입음으로써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팬티에 해당하는 다리 속곳을 입고, 그 위에 속속곳, 단속곳, 속바지를 입었다.

그 위에 속치마를 입는데 이때도 대슘속치마, 무지기 치마를 입었다. 이는 오늘날의

페티코트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옷을 겹쳐입어도 속바지는 밑이 갈라진

구조를 하고 있어서 좌우를 갈라 용변을 보고 추슬러서 입었다. 헤레라의 드레스를

보면 서양의 페티코트를 한국의 속치마 형태로 전환해 입힌게 보인다.

여기에 실크 오건자를 한국의 수묵처럼 옅은 배색으로

염색해 그 아련한 매력을 더했다.

 

 

한국 전통 복식을 공부하면서 꼭 한번 쯤 입어보고 싶은

옷이 있었다. 바로 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로 되어 있는 철릭이다.

이 철릭의 매력을 완성하는 게 바로 광다회란 것인데 옷에 사용하는 납작하게

평직으로 짠 끈을 말한다. 이 끈의 색이 붉을수록 사회적 품계가 높다는 것을 상징했다.

이번 헤레라의 2011년 컬렉션에는 한국 복식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정교하게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디자이너로선 열정을 다해 한국 복식의 요소들을 살펴보고, 차용이 가능한

것을 최대한 이용했다는 점에서 헤레라의 작업은 주목할 만 하다. 18세기 중국풍이

유럽을 휩쓸고 19세기 부터는 일본풍이 휩쓸었던 유럽의 패션계에 이제

한국의 쉬크가 그 힘을 발휘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