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사진을 잘 찍는 방법
패션사진......넌 누구냐!
사진 홍수의 시대다. 다양한 장르의 하위 사진들이 등장하고 각각의 문화를 형성하는 시대다. 패션 또한 사진의 주요 장르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쉽게도 패션 사진의 역사를 비롯한 제대로 된 이론서 한권도 없다. 맨날 다 연구되어 있다고 말은 하는데, 정작 찾아보면 참 없는 분과의 책들이 많다. 그게 우리나라다.
패션 큐레이터의 서재를 운영하면서 한달에 보통 2500불 정도의 예산을 쓴다. 패션 매거진보다는 주로 시대의 이미지를 담은 사진작가의 전체 도록을 주로 사서 모은다. 패션책들은 대부분 10년 단위로 그 트렌드의 본질을 나누어 규정하고 있기에, 시기별 주요 사진작가들의 사진집을 통해 시대의 정조를 읽어나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보그잡지의 탄생에서 예전 스타일링을 살펴보는 데는 꼭 사진작가의 도록보단 특별판으로 기획되어 나온 책들이 있기에 이걸 사면 된다. 보그 몇십년....하는 식의 책들이다. 이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부편집장 자신이 편집했던 내용을 모아 단평과 함께 정리한 책이 한 권에 30만원이 넘는다. 물론 그래도 질렀지만.
이번에 구매한 독일 출신의 패션 사진작가 레지나 레랑의 <우아한 세계>는 바로 그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50년대와 60년대의 패션사진들, 특히 보그와의 콜래보레이션 작업들을 주로 모은 책이다. 흔히 복식사가들은 이 시대를 가리켜 제 2의 로코코, 우아한 시대라고 규정한다. 전쟁의 참사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시 한번 여자들은 경제적 여유와 넉넉함,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패션을 통해 표현했다. 그녀의 사진은 시대의 정신과 패션을 일종의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명징하게 드러낸다.
1950년대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피에르 가르뎅, 이브 생 로랑 등과 같은 남성 패션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의 전면에 등장, 다시한번 여성의 신체를 통해 꿈을 꾸도록 유도했던 시대다. 사람들은 옷의 스타일에만 주목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다. 바로 옷을 입은 여성들의 몸선이다. 여성들의 신체가 옷을 통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난 패션사진을 볼때 많은 것에 주목한다. 우선 옷의 스타일과 전체적인 실루엣부터 다시 확인한다. 그 이후엔 역시 착용자가 된 모델의 느낌, 옷 매무새, 피트된 느낌을 본다. 그러나 더 중요한게 있다. 바로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의 표정이다. 사람들은 그저 역사 이래로 모든 인간들이 표정을 자유롭게 소유했을거라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의 표정'이 재발견된 것은 바로 르네상스 부터다. 서구의 관상학은 이때부터 외부의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표정에 주목한다. 그만큼 인간의 감정이, 그 미세한 변화가 사람을 읽는 기호로서 최초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표정의 발견은 중요하다.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시대, 여성들의 표정은 어떨까? 이 사진집은 바로 그런 표정을 짓는 모델들의 몸을 통해 시대의 패션을 다시 한번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대체가 난 왜 이렇게도 이 시대가 좋은 것일까? 현대 패션 사진 속 모델과는 달리, 하나같이 너무나 인형처럼 예쁘고 가는 허리를 가진 모델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당시 유행한 에이 라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전쟁 이후 여성들을 '패션의 유혹'속에 가두어두려는 남성들의 또 다른 음험한 전략은 아니었을까 싶다.
패션사진을 읽는 시간
패션을 찍는 다는 것, 혹은 옷을 재현하는 문제는 단순히 옷을 예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많은 블로거들의 사진 중, 패션을 찍는 사진 중에서 최고의 한컷을 고르지 못했다. 그건 패션을 프레임속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옷의 세부를 찍고 전체를 찍고 사람의 표정을 찍는다고 패션사진이 완성될까? 천만에......패션사진도 결국은 '결정적 순간'과의 조우가 담겨야 한다. 옷을 제작한 디자이너의 열망과, 시대를 살아가며 디자이너의 독재에 언제든 자신의 몸을 내어준 여인들의 열망과, 그것을 담아내는 사진작가의 열망이 하나가 될때, 바로 시대의 표정이 잡힌다. 패션사진이 이상하리만치 만만치 않은 이유다. 결국 패션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선 이 세 가지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너무 추상적인 말이라고 생각된다면 다시 되집어보자. 사진작가는 옷의 질감과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고, 시대의 표정을 읽고 그 속에서 자연스레 모델이 자신의 잠재성을 드러내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패션 도서관을 꿈꾸며.....
많은 분들이 <패션 큐레이터의 서재>폴더에 소개된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음에 아쉬워한다. 100퍼센트가 원서고 그나마 영문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불어판, 독어판, 심지어는 스페인어판 자료들도 구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최근 유럽패션이 워낙 스페인이 강하다 보니 그렇다) 추천수도 미약하다. 이걸 감수하면서도 꾸준히 쓰는 이유는 하나다. 어차피 대한민국에서 패션관련 책을 전문적으로 컬렉팅하면서 내용을 정리할 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바로 그 중 한명이고 말이다. 필자의 소망은 2020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 도서관을 짓는 일이다. 미술과 디자인, 패션과 건축 같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함께 정리해서 '밀도있게'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마음껏 자료를 찾으며 공부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퐁피두의 미술도서관을 보면서, 미국과 호주, 세계의 많은 나라에 세워진 패션 전문 도서관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걸 짓지 못하고 있나......항상 화가 났었다.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 그들의 아이디어, 생각을 알려면 결국은 '텍스트'를 읽는 고통을 견뎌야 하고 책으로 정리된 내용들을 머리 속에 집어 넣어야 한다. 맨날 시각 이미지만 본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중요한 건 텍스트의 행간에 담긴 '흩어져있는'기호들을 찾아 내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특히나 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관련 글은 인기가 없다. 모르고 쓰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패션에 대해 심도깊은 생각을 함께 하고자 하는 소수의 이들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글을 쓸 생각이다......뭐 내맘이지 않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