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인생을 사는 법
4억 명품녀에 대한 단상
인터넷이 뜨겁다. 모 케이블 방송에서 몸에 걸친 것만 4억이라는 4억 명품녀 때문이다. 무직으로 부모의 용돈으로만 화려한 생활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결국 국세청까지 세무조사를 해야 할 판이 되었다. 당연히 실정법 상, 증여에 대한 세금 부분을 정리해야 하고 그녀 또한 이 부분을 모르지 않을테니, 나머지 추이는 여기에 맡기면 그만이다.
키티 캐릭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보석을 비롯한 패션 액세서리와 자동차까지 키티의 핑크빛으로 통일한 걸 보면 말이다. 사진 속 키티 목걸이를 놓고 말이 많다. 2억이라고 소개한 목걸이가 실제로는 4천만원 정도. 그러니 허언이 된 것이고, 더 웃기는 건 이걸 제작한 보석 디자이너도 실제 값의 청구는 천오백 정도를 더 얹은 모양이다. 물건값 지불 문제를 놓고 온라인에서 '서로 까발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명품 인생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4억 명품녀를 둘러싼 공방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선정적 테마를 골라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걸로 시청율을 올리려는 방송사의 책임 또한 크고, 여기에 편승해 자신의 삶을 한 꺼풀 더 포장한 값싼 명품 인생 양쪽에 다 책임을 묻고 싶다. 내가 이번 사안을 보면서 답답한 것은, 자칭 명품녀라 불리는, 아니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칭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일말의 '시그너처'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각인되는 그 사람만의 취향과 독특한 매력, 한 마디로 인식의 불도장을 찍어줄 '시그너처 스타일'이 부재한다. 키티를 시그너처로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정신감정이 필요할 듯 하다.
희망의 좌표가 되는 인생을 살자
청바지에 흰 셔츠 하나만 입어도 명품인 여자가 있다. 좌우대칭이 정확한 얼굴 프로필, 단아한 몸매,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연기자 김태희다. 물론 나는 그녀의 연기를 백 퍼센트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수식어 '미인배우'를 넘어 연기자가 되려는 노력에는 박수를 친다. 장동건이란 배우가 있다. 그 또한 '미남배우'로 오랜동안 살았다. 그렇게 묻혀버릴 수 있었을텐데, 그는 연기자로 태어나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왔고, 연기에 눈을 뜨고, CF가 아닌 영화에 혼신을 쏟았다. 배우는 자신의 연기, 그 속에서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겐 '시그너처'로 남는다.
팔순에 가까운 할아버지 배우가 있다. 모든 배우가 존경의 찬사를 보내는 이 남자. 배우 이순재 선생님이다. 이 분이 조연을 하는 드라마를 보면 부족한 주연 배우의 아우라를 묵묵하게 매워주는 힘이 느껴진다. 중견이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배우다. 그 힘 자체가 아우라다. 명품연기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온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남자의 심정을 그보다 잘 표현한 시인이 있을까? 정권의 마뜩찮은 품새에 밀려, 총장직도 박탈당하는 수모를 당했지만, 그의 시 제목처럼 겨울나무에서 봄 나무가 피는 날, 그는 다시 돌아오리라 믿는다. 바로 시인 황지우다. 나는 그의 명작읽기 강의의 팬이 되었다. 문학이 한 시대의 아픔의 성감대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강의 속에 알알이 배어있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글를 읽으며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어여서, 빼놓지 않고 필사했다. 정말 타고난 시인이었다.
그들도 한 때는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었을거다. 문예창작을 하는 이들에겐 황지우란 이름은 암기 불가능한 시어 사전이었고, 김태희나 장동건 같은 배우는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외모를 가진 이들이었을거다. 연예계는 화려한 세상이다. 별들로 가득한 은하계 같은 곳. 한 때의 기라성 같던 별도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침몰한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가, 그저 '선망의 대상'으로만 끝날 수 있는 인생. 이런 인생으로 가득한 곳이 연예계다. 선망의 대상이 되기 보다 '희망의 증거'가 되어 남은 자들의 삶의 좌표가 될 수 있는 이들만 별이 되어 남는다. 노년의 배우 이순재에게서, 담석 수술 후 휴식도 없이 강의하시던 황지우 시인에게서, 미인/미남 배우의 표찰을 벗고, 연기자로 태어난 장동건과 김태희도 그렇다. 잘 나서 명품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시금석을 통과했기에 명품이 되고 시그너처가 된다. 이것이 명품인생이다. 희망의 증거로 사는 인생. 그 삶의 유효기간은 측량할 수 없는 장기에 걸친다.
나 또한 패션을 철학하고 사유했던 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 적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 2억 목걸이와 핑크색 벤틀리로 기억되는 인생은 거부하고 싶다. 나도 희망의 근거가 되고 싶다. 일상이라는 황홀한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 오늘도 출근을 위해 단추를 여미며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