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우리시대의 반전동화-연극<오장군의 발톱>

패션 큐레이터 2010. 4. 24. 14:53

 

 

순수의 시대-반전을 꿈꾸다

 

연극 <오장군의 발톱>을 봤다. 박조열의 희곡작 <오장군의 발톱>은 한국전쟁 당시 최전방에서 복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1974년 발표되었지만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사정권 하에서 무대화 작업은 수월하지 않았다. 검열의 횡포는 작품이 담고 있는 '전쟁반대'의 메세지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작가는 툭하면 정보부에 끌려가 작품의 내용에 대한 '비판과 고문'을 감내해야 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당시 명동예술극장에서의 공연불가 판정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88년 해빙의 시간을 맞아 극단 미추가 이 작품을 올리면서, <오장군의 발톱>은 한국 연극사의 서사적 동화란 새로운 형식미학을 선 보인다.

 

 

1970년대는 한국연극의 '리얼리즘' 열풍이 불던 때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문학사회학과 신화에 기반한 형식주의 비평이 첨예하게 부딪치던 때. 아쉽게도 치열한 사실주의 담론은 학계의 담 안에서만 이뤄졌을 뿐, 현장성을 담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 하에서의 '반전'은 유독 사실주의가 지향하는 사회적 현실의 고발과는 먼 거리에 놓여 있어야 했다. '저 만치'의 세계에 피어나는 그늘 속의 산유화였던 셈이다.

 

오장군은 어머니와 장가들고 싶은 꽃분이, 황소 먹쇠와 함께 하루하루 두메산골 벽지의 작은 감자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어느날 동쪽나라와 서쪽나라의 전쟁이 일어나고, 오장군은 징집명령을 받는다 평생 땅만 일구다 살아온 그에겐 모든 것이 낮설다. 고문관으로 찍혔다. 사실 이 시대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자들이 한둘이었나. 한 마디로 '전장터에 끼어든 무력한 바보'가 된 오장군. 어느날 다시 찾아온 집배원, 그가 들고 있는 징집명령서. 이게 무슨 일일까? 알고보니 처음 받은 징집명령서는 옆 동네의 장군이에게 발부되었던 것. 엄마와 꽃분이는 잘못된 국가의 명령을 바로 잡으려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국가는 행정상의 문제가 없다고 발뺌한다. 한편 군부는 오장군의 순수를 이용하기도 마음먹는다. 사령관은 그를 이중간첩으로 이용하고, 전후사정 모르고 전장터에 선 오장군은 적군에게 일부러 잡혀 '유용한 정보'를 흘리고, 끝내는 간첩 혐의로 사형 당한다.

 

 

왜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을 오장군이라 불렀을까? 우선 장군이란 이름부터가 뭔가 근엄하고 조직에서의 적응력이 뛰어난 인물을 상징할 것 같은데, 현실은 완전 딴판인걸까? 극의 슬픔은 이름 하나가 환기시키는 서사적 객관화의 거리에서 나온다. 원래 그리스 비극은 '영웅의 죽음'을 소재로 삼지만, 우리시대의 비극은 약한 자의 순수가 짓밟히는 과정상의 쓴 웃음을 보여준다.

 

최전선 배치를 앞두고, 정훈장교가 나와 혹시라도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할 경우, 가족들에게 보낼 머리칼과 손톱을 자르라고 명령한다. 우리의 오장군은 손톱과 더불어 발톱까지 깍게 되고 동료들은 그에게 동조한다. 죽음에 앞서 한 인간의 흔적을 나타낼 수 있는 최소의 살점을 남기는 순간의 소롯함에 몸이 떨린다.

 

 

이중간첩 혐의로 적국의 포로로 사형대에 오르는 오장군. 그의 죽음을 모른 채, "오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뭐가요" "전쟁이 끝나는 날이 말이다" 라며 극 중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와 꽃분이의 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20살 나이에 전쟁을 겪고 12년간 군대에 몸 담았던 작가 박조열에겐 그저 전쟁은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장도 아니고, 인간존재의 참상을 드러내는 무대도 아니다. 인간의 순수한 원형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자의 작은 희망을 담는 것. 그것이 작가의 소망한 소망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연출가 이성열은 이 작품을 철저하게 삶의 원형을 찾는 '동화'의 모습으로 무대화한다. 장욱진 화백의 그림 속에서 볼수 있던 나무의 형상이나 붉은 해와 단순하지만 깊은 봉우리는, 바로 근대화와 함께 우리가 상실한 고향의 모습이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엔 밤 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곳, 바로 시인 정지용의 <향수>가 그린 우리들의 원형세계다. 연극 무대 속 장군이가 살아가는 생의 터전이다. 전쟁의 폭력성과 군대조직의 비 논리성을 비꼬았다는 이유 하나로, 오랜동안 무대화가 금지된 점.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봉인해야 할 기억과 봉인을 열어, 아픔에도 불구하고 대면해야 할 우리들의 기억이 있는 법이다. 전쟁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전전 세대와, 전쟁에 대한 비평과 냉소적 시선을 가진 전후 세대가 함께 봐야 할 연극. <오장군의 발톱>은 전쟁이란 이념 배후에 녹아있는 '삶의 진정성과 원형'을 우리 앞에 현현시킨다. 한편의 우화가 주는 힘이다. 순수의 시대를 노래하는 동화 앞에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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