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자유연애를 허하라-창극 '춘향2010'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4. 14. 06:30

 

 

S#1 2010년, 춘향 부활하다

 

봄향이 차오르는 연두를 넘어 주황빛으로 변하는 계절. 주변은 온통 만화방창의 세계입니다. 명멸의 순간이 짧기에 봄의 시간이 더욱 소중한 것이겠죠. 벚꽃이 토해내는 생의 뭉텅이같은 슬픔을, 하얀 목련이 감싸안으며 낙화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봄의 색과 향, 멋에 취하고 싶은 오후 남산 국립극장으로 마실을 나갔습니다. 국립창극단의 기획공연 <춘향 2010>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올 2010년 봄을 맞이하여, 야심차게 연출한 <춘향 2010>. 한 마디로 놀랍고 또 놀랍습니다. 창극의 세계화 가능성과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쐐기를 박는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춘향전의 내용은 다 잘 아실테니, 창극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음악극으로서, 창극을 새롭게 부활시키는 작업은 말처럼 쉽진 않았습니다. 서양의 드라마적 문법을 철저하게 익히고, 여기에 동양의 극 이론을 개입시켜, 제3의 물꼬를 트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특히 무대화작업이 두드러지게 약진하고 있음을 보여준 <춘향 2010>입니다.

 

전통 오방색을 4개의 펼침막으로 사용, 극의 전개와 더불어 유기적으로 움직입니다. 몬드리안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황과 적, 녹과 청을 배합해, 삶의 조각을 이어붙인 우리 내 보자기와 더 닮았습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 듯, 극의 전개와 갈등의 구성에, 역동적으로 펼침과 가림을 반복하는 무대는, 이야기의 긴장감도 살리고 가창을 하는 배우에 초점을 맞추도록 관객의 시선을 이끕니다. 전면에는 영상으로 한국화를 이용, 풍경처리를 해서, 그림 속 이야기의 느낌이 배어나도록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고, 오케스트라 앞으로도 길을 내어, 배우들의 동선이 관객이 있는 자리까지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예전 마당개념에서 발전한 우리 내 극의 형식을 창조적으로 변용한 것일 겁니다. 관객과 배우의 일체감을 만드는 무대인 셈인 것이죠.

 

 

이번 춘향전을 보면서, 춘향전 속 '말'의 아름다움과 느낌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한마디로 되바라진, 도발적인 춘향의 캐릭터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고, 이몽룡이 몰락한 양반행세를 하며 그들과 주고받는 언어 속, 기층민중의 저항적인 모습 또한 새롭습니다. '지금 남원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농민들은 "우리 남원은 사판이라며, 사또는 놀 판이고, 거부장부는 뺏는 판이며, 육방 관속은 먹을 판, 우리 백성은 죽을 판"이라는 대사가 귀에 쏙 들어오네요. 우리 말에도  무대상의 '말장난(pun-말의 음율이나 두음을 맞춰 노는 것)'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춘향전은 단순히 자유연애를 꿈꾸는 기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우리 민중들의 생생한 생의 향기가 녹아있죠. 이런 텍스트를 면밀히 읽어보지 않았던 것, 사과부터 해야겠습니다.

 

 

S#2 무대와 관객, 하나가 되다......그러나 고쳐야 할 것들

 

무대 배경으로 사용한 솟대가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솟대 위 새들을 볼 때마다 상념에 빠지곤 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저 새들이 기다림을 완성하여 자신의 몸 보다 더 긴 다리를 잘라내고 구름위로 비상할 수 있을까? 신분사회의 악습을 깨고 자유롭고 싶은 농민들의 심정이 배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조선후기의 향촌사회는 기층민이 변혁의 주체로서 등장하면서 구조상의 재편이 요청되죠. 하지만 중앙권력을 상징하는 수령은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분제에 근거한 규제 질서를 강화합니다. 일부 수령은,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낱낱이 고발한 대로, 아전들과 결탁하여 개인적 탐욕을 채웠습니다. <춘향전>의 작가-작가군은 무능한 수령의 형상을 제시하고, 향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닌 비판의식을 집결시킵니다.

 

오마이뉴스 문성식 with Permission

 

앞에서 설명한 관점에서 보면, 춘향은 결국 자유연애를 꿈꾸는 여인의 모습을 떠나, 기존질서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혼이며 변학도는 기존 구체제의 질서를 요구하는 양반사회의 기층권력입니다. 옥에 갖힌 춘향이가 님을 그리워하며 노래합니다. 목소리에 애절함이 묻어나죠. 그런데 한가지 옥의 티. 바로 옥중 춘향의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코러스와 무용입니다.

 

 

 오마이뉴스 문성식 with Permission

 

왜 창극에서 그리스 비극에서 사용하는 코러스와 오케시스 가면을 썼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한국의 가면을 갖고도 '저승사자'의 역할을 살릴 수 있는 미감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요. 왜 어설프게 그리스 비극 흉내를 내셨을까요? 게다가 가면을 쓴 이들이 선보인 무용은 일본식 부토입니다. 동선을 하나씩 살펴봤고 시선과 손동작을 봤는데, 너무 일본식입니다. 두번째로 아쉬운 건 국립 창극단 자체의 연기력 문제입니다. 창극이다 보니 도창의 기능을 강화해서 현장성을 살리겠다는 의도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다만 창을 제외한 연기 부분에서 여전히 미진한 일면이 보입니다.

 

춘향전 속 인물 '캐릭터의 재해석'을 견지하겠다는 연출자의 의도와 달리, 눈에 띄는 재해석은 없어 보입니다. 평면성만 안전하게 가져갔을 뿐이었죠. 춘향이도 밋밋하며, 이몽룡은 존재감이 없습니다. 변학도를 '원칙주의자로서 현실적 욕구와 욕망의 경계가 혼동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면, <베니스의 상인>속 샤일록의 이미지를 활용했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무대배경으로 그림을 사용할 때, 비생물인 그림과 맞추어 인형을 사용 대사를 치곤 하는데요. 무대에 들인 비용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전제 하에서, 입체적인 등장을 고려해 표현하는 배경을 만드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S#3 봄의 향기.....와 함께 사랑에 빠져라

춘향 2010은 기존창극의 고답적인 느낌을 탈피, 새로운 방향을 부여한 점에서 높이 살 만합니다. 유영대 예술감독님을 비롯, 연출을 맡은 김홍승 선생님, 그저 존재감 하나만으로 든든한 안숙선 선생님의 노력도 잊어선 안되겠죠. 춘향이란 텍스트 자체가 익숙한 탓에 운용의 묘를 함부로 부리기도 쉽지 않았을터, 섬세한 무대와 배경 디자인, 황홀하다 못해 미려한 아름다움을 빛낸 한복의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만큼 숨어있는 일인치를 잡아내려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2010년 봄, 춘향 2010과 함께 자유연애의 꿈도 한번 꾸어볼까요? 그 나이에 뭔 헛짓이냐구요? 봄향기가 너무 센 탓입니다....그려. 용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