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분단의 벽을 넘는 기적의 시간-영화 '의형제'

패션 큐레이터 2010. 2. 28. 21:55

 

 S#1 분단은 이야기의 창고다

 

영화 <의형제>를 봤다. 동시에 늦게나마 영화 <아바타>도 봤다. 아바타는 한국영화계의 역대 흥행을 깨뜨렸다. 오랜동안 깨지지 않았던 난공불락의 기록이 깨졌으니, 새로운 응전의 역사를 써야 할 터. 영화 <의형제>는 그 도전의 장을 열게 될 주역이 될 것 같다.

 

어느 시대나 당대를 지배하는 이야기 코드가 있다. 그 코드는 역사/문화적 상황에서 발산되고 재생산 된다. 지긋지긋한 분단의 역사는 바로 수많은 이야기가 차연될 수 있는 현실적 토대다. 의형제의 영화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25일 만에 400만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고 '이거 따라하는 작품이 많이 생기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카피캣(Copycat)이라 불리는 '테마 따라하기'는 너무나 오래된 일종의 관행이다. 카피캣은 모방범죄란 뜻이다. 영화에서 카피캣 효과(Copycat Effect)는 이야기의 큰 줄기, 내러티브의 배열과 스타일을 배끼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 최진실 주연의 <편지>가 흥행을 했다. 남자 주인공이 죽었고 이후 "8월의 크리스마스"를 위시로 많은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개인적으론 이런 식의 모방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대해본다. 이번 <의형제>의 성공에 힘입어 분단상태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예정이다.

 

한국영화계의 병폐 중의 하나가 '서사의 부재'다. 이야기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틀이다. 특정 테마를 다룬 이야기가 인기를 끌면 정작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하려는 냉철한 현실은 사라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만 남는다. 그렇게 영화도 복제된다. 캐릭터도 비슷하게 엮여, 주인공 배우만 달라지는 상황이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저 뭐 하나가 뜨면, 그 스타일대로 '베껴주세요'라고 말하는 창투사와 배급사들이 힘을 발휘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쓸모없는 기우를 너무 많이 썼다. 남이야 베끼던 말던 그건 그들의 상황일 뿐. 중요한 건 영화 <의형제>를 통해 확인하게 된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어찌보면 <의형제>는 한국영화계가 오랜동안 축적해온 서사의 다양한 탐색적 노력이 빛을 발휘한 결과다.

 

분단상황을 다룬 영화는 왠만하면 인기를 끌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현실의 상황을 모든 이들이 숙지하고 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회적 의제이기에, 영화적 현실 속에서나 상상적 해방을 꿈꾸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분단체계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은 수많은 작품들을 낳았다. 이광모의 <아름다운 시절>처럼 전후상황을 동화적으로 다룬 작품이 있는가 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통해, 비극적 생의 궤적을 걸어야 했던 형제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쉬리>는 한 발자욱 더 나가 첩보전이란 형식을 빌어, '현재진행형' 속에 있는 분단상황을 뒤틀었는가 하면 <실미도>는 북파공작을 위해 훈련받던 국군첩보부대(HID)를 소재로 삼아, 한국의 근대사에서 끝끝내 숨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드러낸다.

 

 

S#2 분단인식의 역사-우리시대 문학과 영화의 진화과정

 

영화 <의형제>는 '분단상황' 서사의 또 다른 확장이다. 지금까지 분단현실을 지켜보는 시선은, 세월과 정권에 따라 조응하기도 하고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며 변모해왔다. 만화영화 똘이장군에선 북한은 붉은 늑대로 표현되는 괴수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시절 김청기의 만화 속 북한은 정복과 굴복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영화장르만 그랬던 건 아니다. 50년대 부터 한국문학은 분단상황과 인식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낳았다.  50년대는 인위적인 재난의 정점인 전쟁의 시대인 동시에 전쟁체험과 그 처리, 전후의 황막한 분위기가 편재화하는 수난의 시대를 그려내는 데 주력했다. 2차대전 이후, 상이한 이념의 자물쇠에 잠긴 남과 북의 현실은 전쟁이란 귀결을 맞이한다. 결국 같은 한국인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동족살상과 형제살해로 이어졌다. 참전국의 다원화로 인해 여러 정치적 현실이 맞물려 절대적인 관점의 해석이 불가능한 전쟁이 되었다. 이후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50년대의 피해의식은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분단의 내면화 과정으로 연결되었고, 이후 70년대로 가면 드디어 전쟁의 비극을 '자기화'하는 상황에 이른다. 전쟁체험은 인간의 성장과 맞물려 있으며, 현실의 변화와 성숙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기제로 등장한다.

 

 

S#3 아버지 바다의 은빛 고기떼

 

영화 <의형제>는 2010년 우리 안의 분단상황을 그려낸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한낮의 총격전, 국정원 요원 한규와 남파 공작원 지원.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한규는 국정원에서 파면당하고, 지원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북에서 버림받는다. 한규는 이후 도망간 베트남 출신 신부를 다시 붙잡아오는 해결사로 살아가고, 우연한 기회로 지원을 만난다. 서로를 알고 있으나 속으로 감춰야 하는 상황. 영화의 초/중반부는 두 사람의 심리전이 주력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겠다. '정말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춘 영화 한편'을 봤다는 느낌이다. <의형제>는 비단 남과 북의 분단의식과,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배제된 두 사람만의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농촌에 시집온 많은 필리핀과 베트남 여성들의 삶을 희화화 하며, 우리 속에서 여전히 배제하는 '사회적 체계와 질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분단의 벽만이 벽이 아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배제의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져간다. 이런 견고함을 깨드리는 감독의 연출이 놀랍다. 입가에 미소가 머금도록, 이야기 간간 유모어를 삽입하는 감독의 타이밍과 호흡은 절묘하다. 한규와 지원은 같은 남쪽에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소속집단에서 배제된 존재다. 그들 사이에 미만하게 피어나는 연두빛 소통은 단절 속에 살아가는 상처받은 인간을 감싸는 힘이 된다.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인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신을 보면서, 한국영화의 촬영기술이 이렇게 성장했나 싶었다. 한 마디로 미장센의 성공이다. 미장센(Mise-en-Scene)이란어떤 면에서 보면 회화적 개념이기도 하다. 캔버스에 사물을 배치하고 사물간의 거리와 호흡, 빛의 효과를 생각하며 표현한다. 영화 속에 인물과 사물을 배치시키는 작업은 그래서 쉽지 않다. 도대체 감독이 누구길래, 이렇게 촘촘하게 이음새 없이 화면을 잘 구성했나 봤다. 김기덕 감독 사단에서 내공을 쌓은 감독답게, 회화적 화면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었다. 놀랍다. 물론 화면 속을 종횡하는 이야기의 입자는 더욱 조밀하다.

 

2010년 우리사회는 많은 종류의 화해가 필요하다. 권력욕망이 큰 일방독주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화해, 다국적 사회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우리 앞에 뿌리깊에 박힌 피해의식과 배제의식과의 화해, 무엇보다 남과 북의 화해가 그것이다. 통일은 너무나 힘든 외부적 과제다. 남한 사회 내부의 의견차의 통일 또한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상상적으로나마, 우리 속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는 바로 '소통과 믿음'에 있음을 확인시킨다. 또 다른 천만 관객의 역사를 쓸 영화 <의형제>, 한국영화의 새로운 문법을 써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