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권력을 향한 교회의 몸부림

패션 큐레이터 2009. 12. 21. 19:21

S#1 박근혜는 닭(?)-잡아먹어야

 

인터넷 공간이 종교논쟁으로 시끄럽다. 진앙지는 강남교회의 김성광 목사의 발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짖어대는 닭과 개는 잡아먹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박근혜가 시집을 가봤나" "쓸모없는 훈시만 늘어놓는다" 등 원색적 비난을 한 사실이 17일 뒤늦게 밝혀졌다.

 

박사모와 한나라당 평당원 모임인 한사평까지 명예훼손으로 검찰고소를 고려 중이다. 김 목사 측 반응도 발빠르다. 오늘 크리스천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분열과 대립보다는 하나가 되어 협력해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자신의 발언을 살펴봐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 김성광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S#2 정치교회-세상을 향한 권력의지를 토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정교분리가 되지 않은, 미분화된 사회의 측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정치교회의 권력의지가 극에 달했다는 점을 느낀다. 문제발언의 주인공 김성광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처남이다. 교회성장사를 보면 1970년-80년대에 성장한 선발 대형교회와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한 후발대형교회의 성장으로 나뉜다. 서울로 올라온 이농민을 흡수, 급성장을 이룬 선발 대형교회의 축은 순복음교회다. 당시 한국사회의 지배적 갈망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가난 탈출의 염원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 도시 하층민의 희망을 담보로 '신앙장사'를 했다. 이들의 생활력은 강했고, 모든 것은 성공을 위한 도구였다. 성공주의가 대표적인 논리다.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구원>론도 영혼구원, 생활축복, 건강축복을 주장하며 사람을 끌었다. 선발대형교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집착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색채를 띠게 된 것도 이때다. 한기총의 정치적 행보에서 느껴지는 추함은 바로 이러한 성장과정과 맞물려있다. 김성광 목사의 정치적 행보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용기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S#3 교회는 쿨하지 않다-명품신앙을 찾는 이들

 

한국교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광기가 면면에 베어있다. 일제시대, 철저하게 골방중심의 신학을 유포하며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던 기독교의 속죄의식을 다른 것으로 풀려는 행동이다. 이후 기독교는 철저하게 '빨갱이' '공산주의'를 운운하며 친 정부적 성향을 띤다.

 

후발대형교회로 불리는 소망교회를 위시로 한 일련의 교회지도자들의 정치적 행보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한기총이란 연합단체의 힘 아래, 얼마나 자신의 코드에 맞는(?) '대통령만들기'에 열을 올렸는가. 중상류 계층의 사회적 도덕적 품격을 강조하며 '명품신앙'을 주장했던 후발대형교회의 정서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성서를 인용해 설명해본다.

 

마가복음 10장엔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의 모든 계명을 다 지켰노라고,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예수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너의 재물을 모두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한다. 청년은 재물이 많기에 슬픈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소망교회의 면모와 닮아있지 않은가? 정직하고 예의바르고, 때 되면 선교도 가고 외국어도 잘하고 악기도 하나쯤은 다루는 쿨한 아이들의 교회. 단 충분한 자산상태에 기반을 둔 계층이 누리는 여유로움이 '은혜'로 포장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품적 우월감으로 포장된 신앙. 그것이 바로 오늘날 MB 정권의 정신적 멘탈리티인 '선진화'의 한 단면이다. 이들의 정치참여는 바로 철저한 문화적 보수성에서 기인한다.

 

S#4 박근혜를 옹호함-정교분리의 사회를 꿈꾸며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명하고 '기독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원 활동을 펼치는 보수주의 교회들. 이들은 성경적인 삶의 실천과는 완전히 유리된 삶, 자신들의 리그만을 공고히 하려는 권력의지를 가진 바리새인과 다를바 없다. 기독의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형식으로 참여할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낮은 자리에 임했던 예수. 그는 시대의 정치적 부당성과 메시아 신앙을 추종하던 당대의 편집증적 광기와 싸움을 벌인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몸을 통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의 언어를 전달했다. 그런 마음이 지금 있기는 한 것인지. 무례한 자들의 성탄절을 맞아, 다시 한번 성탄의 의미를 되세겨 보길 촉구한다.

 

비 기독교도인 박근혜 대표를 향한, 저주섞인 말은, 기독 전체로 그 비난이 쏟아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정치권력에 입맛을 다시는 자에게 구원의 메시지는 없다. 유대교와의 전면전을 통해, 자폐증에 걸린 패권주의 이념을 극복하고 탈신학의 세계를 소요유 했던 예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작가 송진화의 <주신 강림하사>란 작품을 올려본다. 연말이라 취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요즘. 목사는 주(主) 대신 주(酒)를 선택한 것 같다. 술에 취한 헛소리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길.

 

 



 

4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