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을 듣는 시간-미샤 마이스키 첼로 연주회에서
S#1 하이든을 좋아하세요?
오늘 일산의 아람누리 공연장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하이든의 전 곡을 레코딩한 하이든 필하모니의 협연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내린 비로, 길가의 양갈래 땋은 나무들의 마른 표정이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일산에 갈때마다 아람누리 미술관에서의 특강을 계기로 만나게 된 8분의 좋은 독자분들을 뵙습니다. 오늘도 이분들과 함께 근사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 연주회는 하이든 공식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 공연이란 점과, 무엇보다도 하이든의 음악에 대한 깊이있는 층위를 경험해 볼 수 있기에 그 의의가 컸습니다.
로코코 시대에서 신 고전주의 시대까지, 음악가 하이든이 활동했던 시대를 연상해봤습니다. 복식사를 예로 들면 복식의 역사상 가장 여성적인 속성이 강하고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로코코 시대의 패션이 자리잡고 있지요.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시대의 의상과 음악의 속성이 맞물려 들어간다는 걸 잘 알수 있습니다. 틀에박힌 규칙적인 궁정생활을 벗어나 살롱 중심으로 사람들의 엔터테인먼트 향유 문화가 바뀌던 시절이지요. 환상과 우아함을 정수로 하는 패션이 등장하는데, 풍만한 엉덩이와 허리장식, 섬세한 여성적 곡선과 넘칠듯한 장식요소들이 실내와 패션을 가득 매우던 시절입니다.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마을, 수레를 만드는 목수장의 아들로 태어난 하이든은 5살 되던 해, 1740년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소년합창단에 들어가면서 음악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후 합창대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곡들을 남겼지요. 100여곡이 넘는 교향곡과 70곡이 넘는 현악사중주를 작곡, 음악의 고전시대 기악곡의 원형들을 만들어낸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이든 필하모니는 트럼펫 협주곡 Eb 장조와 교향곡 제 45번 '고별'이 연주했습니다.
연주회가 시작되면 선명한 트럼펫 연주가 귓가에 조곤조곤 들어옵니다. 당시 반음을 연주할 수 있는 트럼펫이 개발되면서 이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하더군요. 이후 연주되는 교향곡 45번 고별.
저는 이 중에서 '고별'을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마지막 4악장 아다지오가 연주되는 동안 연주자들이 하나씩 연주를 멈추고 퇴장합니다. 결국 모두가 퇴장한 후 두 대의 바이올린만 남게되죠.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고, 음악을 듣다가 '이 무슨 일인가?' 하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고별이란 교향곡을 설명하려면 작곡가 하이든이 가장 전성기 시절, 1760년에서 90년까지 30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헝가리의 에스테르 하지 후작 가문의 부악장으로 활동합니다. 에스테르 하지 후작은 항상 하이든의 편에 서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갖은 재정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곳이 바로 에스테르 하자라고 불리는 후작의 여름별궁입니다. 정확하게는 지금의 헝가리에 위치하고 있지요. 헝가리의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위용과 세련된 실내장식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호반에 세워져 주변의 경관과 더불어, 로코코 시대의 화려함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곳이기도 하죠. 방이 126개나 되었다고 해요. 후작이 죽고 동생이 뒤를 이었는데 다행이 동생도 음악에 조회가 깊었고 악기연주에도 능숙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하이든은 자신의 오페라 <약제사>를 비롯한 여러작품을 공연합니다. 하이든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의 음악, 그와 더불어 연주하는 단원들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고, 정제된 앙상블과 군더더기 없는 음악이, 마치 최상의 조리법으로 요리를 만들듯, 조려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별궁생활을 청산하고 원래 있던 아이젠수타트란 곳으로 가야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이 생겨 별궁에서의 생활이 자꾸 길어지게된 것이죠. 소화하지 못한 연주회의 횟수가 늘고, 이를 정리하려다 보니 후작은 별궁에 머무는 시간을 연장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당시 궁정악단의 단원들 중 갓 결혼한 이들도 많고, 아이들을 두고 온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그러니 얼마나 그립고 아이들이 보고 싶었을까요? 툭하면 집에 한번만 내려가면 안되냐며 볼멘 소리를 늘어놓았을 터입니다.
오늘 들은 교향곡 '고별'은 바로 이런 난처한 마음을 후작에게 전하기 위해 하이든이 작곡한 것입니다. 4악장에 바로 단원들의 마음을 전하는 힌트를 넣어 연주하게 된 것이죠.
4악장이 시작되면 슬슬 연주자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역사 속 하이든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때 두 대의 바이올린만 남고 모든 연주자들이 무대를 떠나는데, 이 두 대의 바이올린을 지킨 이가 한명은 하이든이고 다른 한명은 콘서트 마스터인 토마시니란 사람이었다는 군요.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 처절하고 가능한 가장 불쌍한 표정과 애처로운 포즈를 취해가며 연주했을 터입니다.
오늘 연주를 맡은 아담피셔는 현존하는 최고의 하이든 전문가입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유태계 거장으로 현재 헝가리 국립가극장 총감독이기도 하죠. 자신이 설립한 하이든 필하모니와 고향곡 전집을 레코딩하여 음반계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미샤 마이스키와의 협연. 사실 미샤 마이스키는 한국에 자주 왔습니다. 십여 차례 넘게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친한파 연주자이기도 하고, 사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세계 음악 시장에 알려지게 된 것도 그의 영향력이 크죠. 개인적으로 미샤 마이스키 연주를 듣는데 한 마디로 화가 날 정도로 너무 연주를 잘합니다. 극단적 서정성과 울림이, 어찌보면 이질적인 듯한 느낌의 속성이 그의 현 위에서 마구마구 연기를 펼칩니다.
첼로를 듣다보면, 마음 한구석에 앙금처럼 가득 매워졌던 상처들이 하나씩 대기 속으로 용해되는 걸 느낍니다. 텅 빈 것만이 아름답게 울린다는 사실을 첼로를 통해서 배우게 되죠. 허공에 걸린 몇 줄기 별빛같이, 화석이 되어버린 상처의 기억은 이제 현으로 환생, 내 안에 텅빈 여백을 오랫동안 흔들며 울어내어, 다 토하도록 만들어버립니다.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엔 그런 서정성과 낭만이 아로새겨져있죠. 현을 듣고 온 날엔 마음이 가볍고, 영혼도 따라 가볍습니다. 좋은 시간을 만들어준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하이든 필하모니, 그리고 오늘 공연을 볼수 있도록 해주신 일산의 소중한 독자분들. 참 감사합니다. 힘내서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곡은 연주회에서 들었던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과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한 첼로협주곡 제1번 C장조를 함께 올립니다.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