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풍자화가 호거트의 그림 속 '부정선거'의 풍경

패션 큐레이터 2009. 10. 27. 22:13

 

 

윌리엄 호거트 <선거를 위한 유흥>

1754년 캔버스에 유채, 100 x 127 cm, 성 존 소언 박물관, 런던

 

10월 28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최고의 풍자화가 윌리엄 호거트의 <선거 시리즈>그림을 살펴봅니다. 한나라당은 강릉을 제외하곤 그 어느곳에서도 절대적 우세를 점유하지 못하고 있고, 민주당 또한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바짝 따라붙는 형국입니다.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지역에 따라 정당의 선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것은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1754년 호거트가 그린 선거 시리즈는 악명놓은 옥스포드샤이어 지역의 총선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전통적으로 토리당은 옥스포드 지역의 정치의석을 장악해 왔습니다. 토리당은 구세대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당이었죠. 토리당의 압도적 우위는 1710년까지 지속됩니다. 1752년 당시  휘그당은 철옹성과 같은 옥스포드지역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의회에서 다수당인 휘그당은 2년여에 걸친 선거 캠페인을 위해 물량공세를 퍼붓죠. 전례 없는 뇌물과 부패로 찌든 캠페인이었습니다. 휘그당의 후원자들과 정치적 서포터들을 위한 파티를 여는 모습이 그림 속엔 적나라하게 그려있죠. 오렌지색 깃발은 바로 휘그당의 표시, 청색은 토리당의 상징입니다.

 

그림 속에서 휘그당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떡밥'을 던집니다. 초대된 손님들은 두 테이블에 나뉘어 착석, 그림의 왼편과 오른편에 앉아있는 두 명의 후보가 유권자에게 한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왼편의 후보는 예나 지금이나, 잘하는 짓인 프리허그를 하고 있네요. 오른편에 앉은 후보는 옥스포드 시장입니다. 그는 당시 남자들이 정력을 위해 즐겨먹었던 굴을 통째로 먹고 졸린지 옷깃을 풀어해친채 널브러져있네요. 시장 옆에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선거대리인은 토리당의 열성 후원자들이 던진 벽돌을 맞아 뒤로 내동댕치쳐진 상태. 왼편에 있는 검정모자를 쓴 퀘이커 교도는 휘그당이 준 '뇌물'의 액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꼬마아이가 유흥을 위해 술을 끊임없이 쏟아붇고 있고, 또 그 옆의 푸줏간 주인은 바깥에서 토리당의 열성당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다친 서포터의 머리에 알콜을 부어 상처를 씻어주고 있네요.

 

두 번째 그림은 여관 앞, 마을 거리에서 벌어지는 '한표구걸'의 현장을 그린 것입니다.

 

로얄 오크와 크라운, 포르토벨로라는 세개의 여관이 무대인데요. 그림 속에선 로얄 오크의 여주인은 한표에 대한 '뇌물'을 세어보고 있고, 그녀 뒤에 있는 사자상은 프랑스의 문장인 붓꽃을 마구마구 씹어먹고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와 영국의 계속된 전쟁을 상징하는 표시입니다.

 

원래 붓꽃은 부르봉 왕조 이래로 프랑스 궁정의 상징이니까요.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이 Canvass for Vote 입니다. 한국말로 풀면 표를 훓기 위해 지역을 돌아다니는 일을 말하죠. 그림 속 여관 앞 사인보드를 보시면, 영국 국고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 세례를 쏟아붇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세금으로 당장 하루가 급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꼬락서니는 똑같군요.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휘그당이 납세자의 세금을 이용해 금권선거에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암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이런 사인보드를 사용한 것입니다. 사인보다 아래 두 명의 여관지기도 휘그당 당원에게 뇌물을 받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네요.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 볼일이 있어 가는데, 온통 도로의 블록을 다시 교체하고 있더군요. 한해 예산을 마무리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납니다. 국민들도 공무원의 탁상행정이 만든 이런식의 보도블럭 교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젠 거의 푸념에 가까운 비난만 보내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세 번째 그림은 바로 선거당일의 풍경을 담은 <선거날>입니다. 현대정치에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때보다 높고, 개혁해야 할 사회적 단체 중 1위가 바로 이 국회의원 집단이죠.

 

지금같은 비밀선거의 원칙이 없던 시절이라, 두 정당을 대표하는 깃발이 각각 포스트에 매달려 있습니다. 머리에 붕대를 맨 상의 군인은 토리당에 와서 한탄을 하고, 목에 하얀색 천을 두른 남자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데, 이런 사람도 투표장으로 끌고 온 모양이네요.

 

어느 시대나 선거는 항상 "하늘은 공약으로 가득하고 그 약속은 공허함으로 가득하다'는 지혜를 이 그림을 통해서 똑똑하게 배울수 있을거 같습니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인간들의 권모술수와, 이를 알면서도 뇌물의 힘 앞에 금권 앞에 한없이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이번 재보궐 선거는 향후 이명박 정권의 하반기 정책 수행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 그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세종시' 약속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수정'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인데, 당사 이해관계자인 지역 민심은 어디를 향할지, 여전히 허전함으로 가득한 '공약'을 철저하게 믿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2년여에 걸친 뇌물공세에도 불구하고 토리당은 옥스포드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죠. 유리 창 밖으로 토리당 후보가 의석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는 휘그당원들. 체어맨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막판까지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혈세로 만든 음식을 퍼올리는 사람들의 행진. 맨 왼편에 상의가 찟겨진채 담배 한대 물고 쉬고 있는 병사의 모습도 가관입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토리당의 후보 또한 좌석에서 곧 떨어질 것 같이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나라는 전쟁으로 백척간두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건만, 그저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영속화 하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와 뇌물을 써서라도 이 영화로움을 지속하고 싶나 보네요. 그런 정치적 환멸의 감성을 호거트는 잡아냅니다.

 

실제적으로 서민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있는 지금, MB 정권의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은 허구에 가까운 정치적 수사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를 비판하는 세력의 '정권심판론' 또한 그리 새롭지 않다는 것이죠. 워낙 박빙인 지역이 많다보니 선거전도 뜨겁다지만, 경남 양산의 경우, 특정 후보를 밀면 지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 처럼 말하는 정치인들의 못된 버릇이, 1752년 그림 속 세상과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똑같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알고보면 모두 우리가 낸 세금인데, 왜 저들이 그 돈으로 생색을 내는지 의문이네요. 이번 선거에선, 높은 투표율로 심미화된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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