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한가위, 친척들이 미워질 때 보는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09. 10. 2. 12:24

 

 

기명진_cotton leaves_혼합재료_38×45.5cm_2009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오랜시간 귀성차량들의

병목현상을 보며, 힘들게 고향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찾아봅니다. 일년이란 시간을 주기로 만나는 친척들은 어떤 면에서

타인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며느리들 사이의 기 싸움이며, 해묵은

마음들이 수면으로 부상하며 감정싸움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가을의 풍성함과 상찬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를 답답함에

힘든 며느리/시어머니들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기명진_기억속의 꽃_혼합재료_60.5×72.5cm_2008

 

우리에게 추석명절을 비롯,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수많은 축제와 기일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문화

인류학자들은 그걸 '일상의 무료함으로부터의 탈피'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파종과 경작, 수확에 이르는 경직된 생의 리듬에 한번씩 변화를 줌으로써, 다시 한번

비루한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버텨가는 힘을 얻기 위한 것이지요. 일상의

제의가 유교적 사유의 힘을 통해 형식적인 요소에만 그쳐왔던 것이

사실이고, 이 부분은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집고 넘어야 할

마음의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추석이 끝나고 나면 이혼율이 급증하는 시대

여기엔 일상의 무료함보단, 스펙터클과 갖은 볼거리, 시각적

욕망이 즉시로 채워지는 시대의 풍경이 담겨있죠. 그만큼 심심하지 않은 세상

추석이 아니어도 풍성하게 먹거리를 논할 수 있는 세상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의 감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죠.

 

 

white cotton leaves,  52.5x45.3cm, mixed media, 2009

 

며느리가 많은 집,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뺀질대고

고생해서 음식 차려놓으면 얌체처럼 와서 먹고만 가고, 남편은

시댁에 와서 가족들과 텔레비젼 앞에서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분명 섭섭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당연합니다. 시어머니들이 이날, 며느리를 부리며 편한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어디를 가나 꼭 얌체짓을 하는 사람은 있고,

이런 사람 때문에 속으로만 꾹꾹 참아내는 이도 있습니다. 추석명절, 예전 딸같은 아들인

저는 전을 부치고 잡채를 만들고, 갖은 상찬을 준비하다 보면, 정작 추석 땐

기름냄새에 지겨워 음식을 못 먹습니다. 뭐 얄미운 짓을 할 며느리도

없는 탓에, 음식이 남으면 요즘은 푸드뱅크에 보냅니다.

 

그래서 고민한 것이 왠만한 것들은

늙은 어머니를 위해 제수용 음식들을 구매해서 먹고

음식 낭비를 줄이고 있습니다.

 

 

나비의 꿈, 52.7x45cm , mixed media, 2009 

 

만남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대화들의 소재는

매우 한정적입니다. 꼭 추석 때가 되면 자칫 발생하기 쉬운

오해의 소지가 많은 소재가 바로 종교와 교육, 아이문제입니다. 써놓고나니

사실 이 문제만큼 첨예한 이해관계가 갈리는 소재도 없네요. 기독교식으로 제사를 바꾸자

혹은 어떤식으로 하자 어쩌자......설왕설래, 추석명절을 기점으로 종교전쟁화 되는

시간. 이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많은 기독인들이 추석을 그들이 세는

추수감사절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건 분명 아닙니다.

 

농번기를 비롯, 추석명절과 같은 절기의 배후엔 오랜동안

종교의 탄생 이전부터 '생의 리듬을 회복하고, 자연에 감사하는'인간의

장구한 시간이 켜켜히 쌓여있다는 점,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보내는가를 논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우리를 존재하도록 이끈 자연에 대한 감사, 우주적 리듬에

대한 감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점에서 기명진의 목화작품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목화는 솜을 껴안고 삽니다. 아니 우리를 입히고 따뜻하게 녹이는 목면의

존재를 계절의 아픔을 인고하며, 잉태해냅니다.

 

목화와 이파리의 사랑속에, 무엇보다 그들을

부족함없이 생육하고 먹이고 얼르는 자연의 힘이 있어

그들은 그곳에서 인간을 나비로 만들어낼 물질을 생성하는 것이죠.

 

 

기명진_알을 품은 나뭇잎_혼합재료_38×45.5cm_2009

 

저는 기명진의 작품 중, '알을 품은 나뭇잎'이란 이 작품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족간의 유대가 점점 약해지고 원자처럼

떠도는 영혼이 많아지는 지금, 가족은 여성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서구에선

더욱 견고한 안전망의 보루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석이란 절기를 이용해

얻고자 하는 건, 헤어져있음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에 대한 목마름을 해갈하고,

해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 있다면 실행하기

위한 작은 계기를 얻기 위함일 뿐은 아닐런지요.

 

자식자랑에 귀가 따갑고,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간

동서가 밉고, 나 한테만 일을 시키는 어머니가 밉고, 추석이 다시

오는게 싫은 이 땅의 많은 분들에게 이 그림을 보냅니다. 알을 품은 나뭇잎처럼,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어주세요. 오로지 덕담의 미덕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을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남편분들, 이제는 추석 때 '괜히 쑥스럽다'는 핑계로 아내가 일할 때

놀지마세요. 설겆이 하나 해놓고 큰 일 치룬양 이야기 하지 마세요.

 

 

leaves on leaves , 45.3x37.8cm , mixed media , 2009 

 

이파리 위에 이파리가 엊히고, 마치 레이어드룩처럼

겹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명진의 작품 속 이파리에는

우리의 생과 삶의 무게가, 각자의 어깨에 조금씩 기댈 수 있기에 견딜만

하다는 작은 믿음을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왜 한가위엔 보름달이 뜨는 것일까요?

둥근 보름달처럼 모 나지 않은 하루를, 일상의 황홀을

이날 만큼은 만끽하라고 알려주는 자연의 지혜로움은 아닐까요?

포용의 그릇을 키워 해묵은 상처와 작은 잘못들을 껴안고

깊은 달빛아래, 내 작은 모습들을 더욱 발효시켜

짙은 사랑의 향기만 나도록 노력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한가위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제 전 부치러 갑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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