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비행공포증을 극복하는 법-영화 '해피플라이트'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8. 27. 00:56

 

S#1 살다보면 누구나 추락할 때가 온다(?)

 

요즘같이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려 본 적이 인생에서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주 열린 아시아 톱 갤러리 아트 페어에서 특별 도슨트를 했습니다. 하루에 6번 도슨트 투어를 뛰었지요.

 

경기도 미술관에서 기획한 <패션의 윤리학: 착하게 입자>展의 도록 서문을 깨알같은 글씨로 A4 7장을 썼고, 한겨레 신문과 기획하고 있는 <패션 사진의 거장 사라문>展 웹 사이트에 올라갈 패션사진 관련 원고를 썼습니다.

 

오늘은 MBC 문화센터 두 곳에서 <샤넬 미술관에 가다> 특강을 했습니다. 오전 11시와 2시 부랴부랴 잠실과 본점을 오가며 특강 시간을 맞추느라,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습니다.

 

바빠져서, 그만큼 부수입이 생겨 좋지 않은가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으나, (청강생으로 부터 전문 프리랜서 강사냐?)는 질문을 들어야 할 지경이 되었다면 약간 곤란합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지만, 요즘 제 모습이 영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 일 저 일 다 하느라 어디에도 초점을 못맞추고 있는게 사실이죠. 이러다 정말 개콘에 나오는 강선생 말 마따나 '한방에 훅 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네요.

 

자 오늘 늦게 인터넷을 보니 실패한 나로호 문제로 설왕설래 의견이 분분합니다. 페어링에 실패하면서 발사자체가 실패했건만 정부가 '부분성공'인양 부풀려 발표한 것 때문에 신뢰문제가 생겼다는 지적. 추락하는 모든 것들은 날개가 있다는 시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보기도 했네요.

 

오늘 소개할 영화 <해피 플라이트>는 본지가 꽤 지났는데 이제서야 늦은 리뷰를 올립니다. 저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남자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의 좌충우돌 스토리 워터보이즈, 여기에 재즈밴드를 결성한 여고생들의 이야기 스윙걸즈까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특정 테마를 잡아 영상화 하는 방식엔 웃음꽃이 만화방창으로 피어납니다. 여기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섬세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번 <해피 플라이트>는 해외출장이 잦은 제겐 추억을, 항공사 AP인 제 친구에겐 '밥벌이의 괴로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영화 해피 플라이트는 공항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공항은 그 시대 최고의 첨단기술이 어우러진 떠다니는 섬입니다. 통제기술과 물류,첨단 컴퓨터 과학을 동원된 시뮬레이션이 지배합니다. 그러나 이 푸른 테크놀로지의 꽃을 조율하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요소입니다. 영화 해피 플라이트는 2년간의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정확한 지식을 화면 곳곳에 심어, '공항의 한 단면'을 해부해 보여줍니다.

 

 

비행기가 출항하기 전, 각 부분부분의 요소를 챙기는 정비팀과 승객들의 짐과 하물, 좌석과 발권을 책임지는 프론트, 기상상태와 항로를 검색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운영통제탑, 기내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는 스튜어디스, 여기에 비행의꽃인 파일롯이 있죠. 각각의 요소가 철저한 팀플레이로 촘촘하게 묶여진 세상. 비행기 하나가 뜨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 대부분이, 테러리스트에 의한 비행기 납치나 추락과 같은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많죠. 그러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이번에도 예의 자신의 시각을 빌려, 이 공항이란 특수공간을 웃음과 따스한 여유, 인간미있는 공간으로 그려냅니다.

 

 

이 영화 한편으로 공항과 기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 각각의 애환을 배우게 되는 점은 큰 장점이 아닐수 없습니다. 기내에서 식사시간이 될때마다 전쟁을 치루는 스튜어디스. 발권 전과 탑승 후 완전 180도 성격이 달라지는 진상손님을 상대하는 프론트, 비행안전을 위해 각자 다른 식사를 하는 두명의 파일롯,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 교통정리를 하는 관제탑 직원은 일상에서도 직업의식이 발동되어 군것질 거리로 가져다 준 초콜렛 비행기를 하나하나 줄 세우기도 하죠.

 

 

비행기 하나가 뜨기 위해 각각의 팀이 하나로 뭉쳐 소통하는 모습은 원거리 비행을 위해 브이자 대형을 형성하는 철새를 떠올리게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대열에서 지쳐 떨어지는 새를 위해 함께 나는 새들의 비행은 아름답지요. 우리 내 인간의 삶이, 연대의 생명력이 이런 새들의 비행보다 못하다는 건 슬픈 현실입니다.

 

 

한 나라의 통치는 비행기의 운항과 닮았습니다. 각각의 부분이 긴밀하게 소통체계를 이루어 투명한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이번 나로호 실패에 따른 정부의 일방적인 감추기 발표는 '대한민국호'의 운항에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걸 드러내는 작은 사건일 뿐입니다. <해피 플라이트>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공항과 비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총괄하는 통합 센터의 베테랑 오퍼레이션 디렉터 마사하루의 에피소드입니다. 한때 최고의 실력자였으나 최첨단 시스템이 깔리며 중늙은이가 된 이 남자. 신세대 디렉터의 눈치나 보며 아이들 공항투어나 돕고 있습니다. 그러나 벼락으로 컴퓨터가 무용지물이 될때, 그의 오랜 경력 속에 묻힌 직감은 컴퓨터의 역량을 뛰어넘어, 놀라운 인간의 터치를 보여줍니다.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순간, 인간의 능력은 조직에서 퇴출위험에 처하지만, 정작 이 기술의 구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간의 누적된 경험의 힘임을 영화는 행복하게 그립니다. 인간의 경험속에 묻혀있는 내적지식을 외화하지 못한 기술구현은 빛을 잃기 마련입니다. 한국의 기업은 조직내 인간의 경험을 지식화 하는 부분이 매우 취약합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죠. 사람을 잘라내는 일에만 주력하면, 통제불능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조직내부원의 섬세한 직관을 무기로 쓰기 어렵습니다. 이는 스스로 비행중 바다에 소중한 보석을 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수송기관 중 가장 안전한 것이 비행기라죠. 비행기가 쉽게 추락하지 않는 것. 그것은 인간의 결집된 노력 때문입니다. 그러니 비행기를 탈때 너무 두려워마시길요. 함께 하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 연대의 힘을 믿어보세요.

 

저도 한방에 훅가지 않기 위해, 여러분들과 더욱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을 내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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