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화장품 샘플을 제일먼저 사용한 여자-에스티 로더

패션 큐레이터 2009. 7. 5. 22:28

 

  

 S#1 아름다움의 제국을 건설한 여자

 

지난 금요일, 보그 매거진의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클래스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화장품의 일반적인 사용법과 메이크업,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보니, 화장품 산업의 역사 또한 꽤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다.

 

오늘 찾아간 곳은 세계적인 메이크업 브랜드인 '에스티로더'사다. 뷰티 클래스는 이번에 새롭게 출시되는 로더사의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제품에 대해 설명도 듣고, 테스트를 겸해서였다.

 

약간 자랑같지만 우리집안은 피부가 좀 타고난 편이다. 사실 내가 미용이나 패션에 대해 글을 자주 쓰다보니, 사람들은 내가 화장품을 꽤나 열심히 바르고 다니는 줄 알지만, 베이스도 사다놓고 거의 쓰지 않고 버리다 시피한다. 최근엔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날 일들이 많다보니, 자회선차단제 정도는 바르려고 노력한다. 누나가 키엘 브랜드가 좋다며 권해줘서 요즘은 이걸 꼭 바르고 나간다.

 

작년 겨울 화장품이 딱 떨어져서 블로그에 올렸더니, 화장품회사의 이사로 계신 독자분이 토너와 세럼을 보내주셔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내가 화장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회사생활을 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삼성역에 회사가 있다보니 현대백화점에 종종 들렀는데, 화장품 코너를 지나다 짙은 군청색의 화장품 보틀이 너무 멋져서 골랐던게 화근이었다. 그게 바로 갤랑 브랜드였는데, 이후로 갤랑족이 되긴 했다. 토너에 진주가루가 뭍어나오는게 어린마음에 신기하기도 했고 말이다.

 

오늘은 어찌되었든 에스티 로더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갤랑 이야기는 이 쯤에서 그만두자. (하긴 뷰티 클래스 갔을때도 남자가 나 한명이어서 강사님이 유독 신기했던지, 나이트 리페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에 '전 갤랑족인데요'라고 말해서 빈축을 샀다). 오늘날 백화점 1층에 가보라.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들이 여성고객을 잡기 위해 경합을 벌인다. 화장품산업의 역사를 보면 반드시 언급해야 할 세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헬레나 루빈스타인과 엘리자베스 아덴, 그리고 오늘 방문한 에스티 로더다. 그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고, 미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과 일에 대한 헌신을 통해, 여성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노력에 경주했다.

 

 

화장품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던 초기, 신분이 높은 여성들과 귀족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화장품을 산업화 시킴으로서 '미의 민주화'를 이뤄낸건 그녀들의 공로라 할수 있다. 물론 고급 브랜드 화장품의 가격은 중산층 여성들이 사기엔 쉽지 않지만. 1800년대 비누가 처음 나오기전,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미백과 염색을 위해, 고래로 전해진 별별 희귀한 방법들을 사용해 자신을 가꾸었다. 말똥을 머리에 발라 빗질하면 금발이 된다는 말에 여성들은 정말 따라했고, 서클렌즈 효과를 내기 위해 독즙을 눈속에 삽입하기도 했다는 사실. 이후 화학의 발전과 더불어 여성들은 피부친화적인 용품들을 갖게 되었다. 오늘 소개할 에스티 로더하면 사실 난 '화장품 샘플'이 떠오른다. 1930년대 결혼 후, 가내수공업 수준의 화장품 가게를 이끌던 에스티 로더가 전략적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밀납봉투에 미처 팔지 못했던 '화장품'을 소량 넣어서 정품과 함께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의견 또한 있다. 화장품 샘플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이 로더가 아니라 에이번 화장품의 창립자란 말도 있는데, 연도순으론 앞서지만 사실 고객들에게 공격적으로 시행하고 관행처럼 굳혀버린 건 역시 로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삭스핍스 백화점에 입점하기 위해, 유명인사들에게 제품을 무료로 샘플화하여 보낸 사람이 바로 에스티 로더다. 그레이스 캘리 왕비도 이 샘플을 통해 그녀와 친구가 되었다. 1962년 새해인사로 '새해를 새로운 얼굴로, 에스티로더 화장품으로 아름답게 시작하세요''란 코멘트로 인기를 끌면서 소원하던 니만 마커스 백화점에도 입점을 하게 된다.

 

 

독일의 저명한 미용관련 기자였던 도리스 부르크하르트는 자신의 저서 <아름다움의 제국>에서 헬레나 루빈스타일과 엘리자베스 아덴, 에스티 로더의 삶을 재조명했다. 호주에서 강렬한 태양아래 피부가 노출되어 나이보다 늙어보였던 여성들을 위해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던 루빈스타인과 항상 문화계 사람들과의 끈끈한 교류를 놓치지 않았던 아덴, 그리고 후발주자 에스티 로더가 백화점을 공략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기술들을 참 재미있게도 설명해 놓았다. 뷰티 클래스를 듣다보니 화학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럴수 밖에 없다. 화장품 산업은 철저하게 피부과학의 산물이다. 피부란 것이 참 신기한 것이, 자외선 노출을 막고, 영양을 어떻게 공급하고, 끊임없이 피부 내의 재생조직을 활성화 시키는 가에 따라 정말이지 성패가 갈린다. 한때 동안 신드롬이 유행을 했지만 결국 동안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브이자 형태의 얼굴도 중요하지만 피부가 아닐까 싶다.

 

S#2 당신의 지친 피부를 21일만에 되살리는 법

갈색병에 담긴 나이트 리페어 제품은 에스티 로더의 효자상품이다. 지금까지 160만병이 넘게 팔린 제품이다. 우선 15밀리그램 샘플을 받아왔으니 써보면서 그 결과를 하나씩 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피부 세포에는 일종의 시계같은 것이 있다. 그 시계의 초침에 따라 피부는 밤에 재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요즘 외부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보니, 마치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시차때문에 고생을 하듯, 피부의 각 조직또한 그렇게 되는거다. 이걸 동기화 시켜주는 기술을 이용한 제품이란다.

 

 

예전에 읽었던 빨강색 표지의 에스티 로더의 성공이야기가 에스티 서울 사무소의 로비에 놓여 있길래 한컷 찍었다. 개인적으로 에스티 로더는 브랜드 상품보단, 그녀의 삶에 더 관심이 있었다. 연극배우를 꿈꾸었던 여자. 삼촌이 만든 크림을 열심히 판매하며 언젠가는 화장품 제국을 짓겟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 화장품 산업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그녀와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인 레블론과의 피튀기는 싸움은 꽤 재미난 사례처럼 읽을수도 있을 것 같다. 1968년 알레르기가 적은 화장품 브랜드인 크리니크를 개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던 에스티 로더 제국. 프렌치 쉬크의 제국 프랑스의 거대 백화점 라파예트에 입점하기 위해, 실수처럼 자신이 개발한 향수를 바닥에 쏟으면서까지 자신의 일과 사업에 매진한 여자. 에스티 로더. 그녀의 빨강색 모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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