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샴페인에 빠진 아티스트들-럭셔리를 위하여

패션 큐레이터 2009. 6. 25. 11:15

 

S#1 크링 가는 길

 

상품기획을 하면서 브랜드와 관련된 행사들을 꽤 많이 준비하곤 했다. 특히 런칭시점에서 보도자료를 마련하고 기자회견과 연예인을 비롯한 셀레브리티를 초대하는 문제는 항상 골머리가 아팠다.

 

상품의 종류와 속성에 따라 PR을 비롯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수단과 방법론이 조금씩은 달라지는데, 럭셔리 브랜드일수록 섬세한 런칭쇼가 필요하다. 단지 제품의 역사와 미학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더욱 고양시키고, 통일성 있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구조적인 틀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틀전 세계적인 샴페인 하우스인 페르에 주에의 런칭쇼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패션계 지인들도 만나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도 뵙고 인사드렸다.

 

패션과 아트의 결합이라는 혼종성 문화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장한지도 시간이 흘렀다. 올해만 해도 경기도 미술관과 아람누리, 한가람 미술관 등에서 패션과 미술이 접목된 전시를 할 예정이다. 이 중 한가람미술관에서 하게 될 패션 사진의 거장 사라문 展을 공동으로 기획할 기회가 생겨 요즘을 열심히 그녀의 사진세계에 대해 연구중이다.

 

패션과 일반 상품의 결합은 그 미학적 연금술의 지평을 더욱 확장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더구나 200년이 넘는 브랜드의 상징을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작업하는 예술가의 손으로 재해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은 제품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번 페르에 주에 샴페인 런칭쇼는 철저하게 공간 디자인에서 부터 아티스트의 협업, 내부 메세지가 통일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1902년 아르누보 유리공예가인 에밀 갈레가 디자인한 아네모네 문양이 바로 이 샴페인병의 상징로고다. 1902년이 언제였던가 복식사에선 벨 에포크라고 해서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는 때다. 여성들의 신체가 모래시계형으로 빚어졌으며, 재봉틀의 발명과 인공염료와 텍스타일 기술의 발전으로 당대 가장 화려한 옷을 입던 시절이다. 이 당시 여인들의 모습을 담던 인상주의 회화의 색감속엔 시대의 풍경이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에밀갈레가 디자인한 유리잔을 보고 싶었다. 샴페인을 한잔 마셨는데 혀끝에 부드러운 느낌이 목 넘김의 냉철한 감성과 맞물려 떨어진다. 포스팅이 길어질까봐 에밀갈레의 유리잔 디자인을 올리진 못했다. 보라색 꽃잎 위에 부유하는 샴페인 보틀의 느낌. 우아함과 섬세함을 극미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아르누보의 산물이다.

 

 

위에 보시는 샴페인 보틀이 바로 페르에주에다. 꽃과 여인의 육체가 빚는 곡선의 유아함, 아라베스크 무늬가 혼합된 흰색과 분홍의 아네모네꽃 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네모네꽃에 관련된 그리스 신화를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사랑해 남편 아레스에게 죽음을 당한 아도니스의 몸에서 피어난 꽃이 아니던가. 그 열정적 사랑의 농밀함을, 명멸하는 접촉의 순간들을 아련하게 표현했다.

 

 

이제부터는 브랜드의 콜레보레이션, 협업과정에 동참했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련다.

패션사진가인 김용호의 작업을 살펴봤다. 이 외에도 텍스타일 디자이너, 북 디자이너, 파인아티스트, 미디어아티스트

패션 디자이너, 슈즈 디자이너 등이 모여서 이 아네모네 꽃을 상징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의 작품이다.

다른 것보다 샴페인의 기포를 확장시켜 투명한 물방울 패턴을

옷 위에 투사시켜 표현했다.

 

 

보석 디자이너 김성희의 작품이다.

아네모네꽃을 그대로 형상화해서, 초록병 빛깔과 더불어

진주와 에머럴드를 이용해 작업했다. 꽃잎들의 떨림, 상감처리한 꽃잎파리

그 위로 밀월의 시간을 곰삭이는 수술대의 묘사가 뛰어났다.

 

 

화려한 팔찌, 큰 컷으로 잡아봤다.

 

 

개인적으로 구두에 관심이 많다. 세계의 구두박물관을 다 다녔었는데, 그때마다 여인들의 신체미에 방점을 찍는 건, 발끝을 얼마나 들어주는 가에 달려 있는, 저 힐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슈콤마모니 수석 디자이너 이보현의 작품을 오랜동안 봤다. 킬힐에 필이 꽂혀 최근 그녀의 작업은 아네모네와 더불어 초록과 주황의 색채배합을 통해 수제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킬힐을 이야기한 김에 저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여행하며, 그녀들이 신었던 평균 12센티의 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빙판길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걷는 그 보폭의 힘이여......!

 

 

이보현의 또 다른 작품 이번에 금속성이 강한 느낌의 부츠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간호섭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콜레보레이션 관람은 끝이났다. 물론 이외에도

북 디자이너와 파인아티스트들의 협업또한 볼만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15인의 아티스트는 그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해야할까? 중요한 건 매체를 가지고 철저하게 브랜드의 중심적 테마를 확장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나 싶다.

작품들이 서로 연계되기 보다는 그저 산재한 섬들처럼 통일성이나 느낌이 하나로 압축되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긴 그건 어떤 전시든, 기획전의 이름으로 많은 작가들을 동시에 나열하게 될때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패션과 럭셔리 제품의 협업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여러기업들로 부터 관련된 컨설팅을 해달라는 주문까지 듣는 걸 보면, 테마가 부상의 수준을

넘어 큰 화두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걸 느낀다. 단 한가지만 주의하자. 한국의 기업들은 뭔가 하나가 유행하면

이곳 저곳 모두다 다 따라한다. 그러다보니, 독창성은 간데없고, 철저하게 표피화된 협업의 결과만 남는다.

이런 단점들을 극복할 대안을 찾아가고, 기업의 철학 속에 내면화 시킬때야 비로소

패션과 경영의 메세지가 아름답게 통합되는 진실의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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