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MB와 비교되는 이유
S#1 CEO 안철수를 생각함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CEO 관련 리뷰나 자서전들을 읽는다. 개인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공부했지만 CEO 한 개인을 심층깊게 읽는 일은 하지 못했다.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모 기업에서 해외사업팀을 맡던 시절, 친구는 안철수가 쓴 <영혼이 있는 승부>란 책을 꼭 일독해보라며 권했다. 며칠 전 안철수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오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분명 그는 거론할 점이 너무나 많은 CEO다.
그의 책을 통해 많은 걸 반성했던 나로서는 지금의 '안철수 열풍'이 진정한 리서십의 부재와 이걸 찾으려는 사람들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유독 경영전략 트랙에는 '리더십'수업이 개설되었다.(물론 내가 있었던 UBC의 경우에 한한다. 다른 학교 사정은 최근에는 잘 모르겠다)
왜 그럴까? 질문을 던져보자. 재무관리나 마케팅 혹은 생산관리를 전문트랙으로 전공하는 곳보다 경영전략 트랙에 리더십 수업이 있는 이유가 뭘까? 재무나 마케팅은 스페셜리스트를 키우는 트랙이다. 산술능력에 기초한 거시적인 경제분석과 미시적인 경영상황 분석이 더 우선된다. 마케팅 또한 소비자의 마인드를 읽는데 초점을 두기에 통계학과 더불어 정성적/정량적 분석을 테크닉적으로 익히기도 버겁다. 상품개발과 가격정, 유통, 촉진정책이란 4가지의 핵심가치와 연관된 경영의 스킬을 익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항상 옳다'란 말을 몸에 체득한다.
'소비자는 항상 옳다'란 말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 국민은 항상 옳다란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옳다란 것의 가치, 그 핵심논리를 살펴보고 기업에 적용하는 것이 경영자가 할 도리다. 안철수의 책은 읽을 때 마다 초심을 잡는데 좋다. 난 책을 읽을 때 항상 그 책을 처음 읽을 때의 첫마음을 상기하려고 노력한다. MBA를 마쳤어도 정작 배운 것을 성찰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그가 짐 콜린스의 Built to Last (한국에선 '성공하는 기업의 7가지 비결"이란 책으로 번역되었다)에 대한 단상, 인접영역과 유관영역을 구분하고 어디에 힘을 더 실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나를 반성케 한다. 그만큼 자신의 핵심역량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초심지키기에 열을 올렸다는 말일거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짐 콜린스의 책을 좋아하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접근 방식이 일반 경영학이 아닌 '역사비평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영학 연구가 일천한데는 인문학적 접근 들, 그 중에서도 역사학적 관점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드는 나로선, 이런 책이 고맙다.
S#2 영혼이 있는 승부를 위하여
내가 안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리더십과 내 의사결정방식이 일정 부분 공통분모를 갖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보기엔 이론실천형 인간이다. 그는 내게 '이론의 존재론과 지평'을 새롭게 알려준 사람이다.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실천하고, 다시 수정사항이 생기면 과감하게 고치고 새롭게 등재하는 형이다. 이때 이론은 단순하게 '거인의 어깨위에 선 난장이'의 축적된 지식이 아닌, 과거의 지혜가 선사하는 삶의 태도이며 입장이다. 그는 자신을 비롯 기업의 핵심가치를 알고 이를 위한 제도화가 뒷받침 되어야 하고, 평등한 기회와 공평한 분배가 기업 내에서 자리잡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CEO다. 이 책에서 나를 가장 사로잡은 부분은 성장시대의 기업 경영에 관한 그의 철학이었다.
성장통이 생길만큼 성장의 속도를 영혼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때, 일견에는 시장이 활황이고 내가 개발한 제품이 잘 팔리는 '무사태평'의 시절로 보이지만 사실 이때가 가장 위기다. 우리사회가 이 성장통을 정신적으로 통어하지 못해서 생긴 사회적 불평등과 문제점을 마주하고 있다.
성장통(Growing Pain)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문제는 그 성장통을 통해 어떤 균형성장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성장속에서 인간중심이 아닌, 자신의 성공만을 향해 달리는 CEO가 독단성에 빠지는 건 바로 성장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발 속에서 연대의 힘을 믿는 이들, 함께 하고 자신을 리더로 섬겨준 이들에 대한 감사가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사람과, 성공에 도취된 거짓 신화를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인간이 나타나는 지점이다.
"남이 보는 '자기'와 내가 보는 '자기'는 다르다. 그 괴리감이 느껴지는 경계는 선(線)이 아니라 지대(地帶)에 가깝다. 일종의 '중간지대'라고 할까. 중간지대는 내면의 자기와 외면의 자기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의 소용돌이 영역인데, 그 소용돌이 영역에서 심리적으로 어떤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느낌과 태도가 결정된다" 인용한 글은 정신분석학자 정혜신이 현 대통령에 대한 분석글이다. CEO로 삶을 살아온 두 남자의 세계관이 여기서 갈린다. 안철수는 항상 타인의 시선 속에 비췬 자신을 보고, 겸손을 향해 갔지만, MB의 경우엔 남이 보는 자기와 자신이 평가하는 자기가 같다고 믿었다. 그래서 불도저가 되었고 독선적 밀어붙이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에 반해 성장 속에서 위기의 징후를 살피며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안철수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철학을 선택한다. 사실 경쟁력도 이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서 나온다. 이명박 스타일의 신 자유주의는 긴 호흡보다 짧은 호흡을 견지한다. 이런 사회에선 안정된 고용보단, 그저 빨리 빨리 쳐내고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우는 '노동유연화'가 자연스레 나올 수 밖에 없다.
S#3-이명박의 '경험'와 안철수의 '이론'
말끝마다 '내가 경험해봐서 다 안다'는 사람. 물론 그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어린시절을 버티고 월급쟁이의 신화를 이룬 사람이란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단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이 감내하며 형성하게 될 성향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잠을 4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단다. 그는 시쳇발로 '안해본게 없다'는 사람이다. 모든 걸 몸으로 익혔고 체험했다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안철수의 삶은 몇가지의 섹터로 간명하게 나뉜다. 의사,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 개발자, CEO, 대학교수. 커리어를 넘나들기 위해, 그는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고 이론으로 무장하고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모든 걸 경험으로, 동물적 감각으로 처리한 사람은, 유독 경쟁결과가 승리로 끝날경우 '자뻑'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통제불가능한 자신감으로, 세상의 모든 걸 시험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철저하게 1인칭화된 세계다. 체험을 통해 세상을 다 알게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기 싶다. 그래서 이론이 필요한거다. 다양한 삶의 목소리가 동일한 수준의 체험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반응정도와 해결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 이걸 알아야 한다. 이론을 통해 타인에 대한 정서적 동조가 생긴다. "내가 몰랐던 상처들이 저들에게 있었구나"하고 깨닫는다. 안철수는 바로 이 점에서 MB와 또 갈린다. 결국 MB는 경험속에서 이룬 자신의 세계가 너무나도 견고하다고 믿는 나머지,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정서적 배려는 하지 못한 셈이다. 그게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