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노무현 대통령께-당신의 인생이 비극이 아닌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09. 5. 27. 19:14

 

S#1 당신을 기억하며

 

노제를 기다리며 펜을 들었습니다. 너무 큰 충격과 상실감으로 인해 삶의 전 부분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의 비극적 서거가 준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먹지도 잠을 청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비극이란 의미를 찾아보니 <염소의 노래>란 뜻이 있습니다. 제의를 위해 희생물로 던져진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지요. 비극의 본질은 삶이 불행하게 끝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희생자를 숭고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고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게 즉각적 영향력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즉 비극에서의 주인공의 삶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온갖 이해력에 호소하는 보편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당신의 삶을 희랍 비극 속의 주인공의 삶을 닮았습니다.

 

우리가 비극을 보면서 기대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나 지극히 불행한 상황에서 흔히 부딛치는 것과는 다른 고귀성과 중요성의 재확인입니다. 당신의 서거가 숭고한 것은 우리에게 던져준 메세지가 이 땅의 슬픈 근대사의 고리구조를 깨는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이 앞으로의 이러한 파국들을 막아낼 항독주사를 우리에게 놓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비극은 인간에게 존재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관한 견해를 밝히는 연극 장르입니다. 세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인간의 종속적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당신이, 당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했던, 아니 거의 물어 뜯어죽이지 못해 매일 매일 음해와 공작과 비난과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상처를 무한으로 입혔던 저 자들의 마수에서 결국 이기지 못한 것. 거대언론의 폭력과 언술의 권력 앞에 처절하게 노출된 채 죽어간 당신의 삶은 분명 비극입니다. 2천 5백년 전 프로메테우스는 불의 씨앗을 훔치고 형벌 속에 죽어갑니다. 그가 불을 훔친 이유는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패하기 마련입니다. 신과 인간의 대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결국 계층의 벽과 지역색의 벽, 자본의 벽 앞에 인간은 패배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패배 속에서 인간은 한 줄기 빛을 발견합니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 말씀하신 그 모습. 그 외로움의 절정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사랑. 국민에 대한 사랑을 나는 이제서야 발견합니다. 당신의 죽음은 역사적 사건이 되어야만 합니다. 역사란 사슬 속에 포박된 프로메테우스로 죽어간 당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살아생전, 내가 너무나도 지독스레 굴었던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구석 겨우 봉합시킨 상처의 무늬들이 터집니다. 왜 그리도 그때는 미워했는지. 난 한 인간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꿈꾼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이라도 권력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는 사회의 그림'을 함께 그리길 저는 주저했습니다. 차가운 현실속에 던져진 서민을 위해, 그들의 역할모델이 되고 싶었다는 그 꿈은 많은 이들의 그리움 속에 진정으로 그림이 될겁니다. 

 

아니 이제부터 함께 꿈꾸겠습니다. 당신이 미처 방점을 찍지 못한 그 사회의 그림. 이제는 제가 함께 사람들과 그리겠습니다. 하늘에서 저를 보시거든 꼭 꾸짖어 주십시요.

 

저를 향해 꼭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혼내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을 향해 "뇜현이 이 개새끼 때문에"라고 말했던 과거가 용서될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어찌 하지 못하는 언론권력의 힘 앞에서 아팠을 당신을 안아드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 속에 담긴 기득권 세력의 날카로운 덫에 겨울 나목처럼 노출된 당신의 상처를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가리켜 "대통령이 너무 말을 함부로 한다" "쉽게 한다"는 말만 들었지요. "대통령의 권력은 기껏해야 5년 이지만 우리들은 영원하다"고 말하는 언론을 비판하지 못했습니다. 물어뜯기는 당신을 못난 대통령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파렴치한 인간에게, 화해란 궁극의 메세지를 던져주고 간 바보 노무현이 너무 밉습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의 공백감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위기에 빠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과 북을 냉전구조로 만들어야 하는 이 나라나 북의 지도자나 똑같은 목표를 지향합니다. 냉전기간동안, 당신이 꿈꾼 기초는 허물어질것이고, 장기 집권을 위한 권력의 기반 다지기가 사회전반에 시작되겠죠. 이럴수록 서민들의 손을 잡아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그림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움에만 잡혀 있기엔 당신이 우리에게 알려준 꿈의 진정성이 너무 큽니다

 

 

봉하마을에 가져가고 싶었던 그림을 바칩니다. 거대 언론에 눈이 멀어 당신의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도록 강요한 그 짐들, 이제는 자동차 위에 다 올려놓고 편하게 여행길 떠나세요. <여행-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작그림 입니다. 사계를 마음껏 즐기십시요. 삽도 한 자루 실었습니다. 농사꾼으로 살고 싶었다는 당신을 위해서요. 누구에겐 삽이 그저 폭력적인 재개발의 상징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라 말하며 돌아간 당신. 당신이 사랑한 이 나라의 대지,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한채, 터벅 터벅 걸어가는 '저기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이제 우리가 '그 사람'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킬 것이며 당신의 유지를 받들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비극이 아닌 이유입니다. 당신을 기억하고 그 뜻을 받들며, 이제 다시는 이 나라의 현대사에서 이와 같은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 배우며 익히는 국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걸 분명히 밝혀둡니다.

 

누구에게나 낙화의 순간은 옵니다. 이 포악한 살인마 정권도 한송이 꽃처럼 바스러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보복을 위한 칼을 가는 것이 아닐겁니다. 한 생애 국민을 향한 사랑을 그리워했던 당신이 남긴 단아하게 남긴 싯구.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그 한줄의 울림을 가슴에 새기는 일입니다.

 

당신은 비극적으로 바스러졌으나 향기로운 자가 되어 떠났습니다. 떠나는 자들은 고요히 떠납니다. 그 고요한 적요의 시간은 수천 마디의 웅변보다 훨씬 더 큰 말을 남깁니다.

 

"생의 이편에 남아서 떠나는 자들을 배웅하는 자들은 그들의 고요한 뒷모습에서 새벽안개 냄새를 맡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새벽길을 떠날것이다. 믿거니와, 우리는 어두움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살아서 너무나 어두웠던 우리는, 사는 것으로 어두움에서 진 빚을 다 갚는 것이다. 삶 아닌 다른 지옥이 또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빛을 향해 간다.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당신의 삶은 비극이 아닙니다. 빛의 아이로 태어나 빛을 주고 간 당신. 권력을 가리켜 화무십일홍이라 한다지요. 나는 꽃이 져도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많은 걸 깨닫게 해준 당신이 그저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합니다......참 좋은 대통령. 당신은 내게 하늘이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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