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여자로 사는건 개고생이다

패션 큐레이터 2009. 5. 16. 14:44

 

 

송진화_수고하고 짐진자_나무, 혼합재료_27×45×22cm_2008

 

송진화의 조각은 항상 나를 눈물짓게 한다. 부박한 나무의 결로 조형된 여인의 삶이 그 속엔 배어있다. 그의 작업은 이 땅의 엄마와 아내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가 아닐까. 블로그를 읽다보면, 육아일기를 써 올리는 분이 종종 있다. '우리 강쥐' 라 불리는 아이들이 어느샌가 강아지가 아닌 커다란 개가 되어 있는 상황. 오늘은 송진화의 <女세요>展을 소개한다. 그녀의 전시는 항상 다양한 나무를 깍고 다듬어 자신이 반영된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송진화 <사랑밖엔 난몰라> 나무 43×45×15cm 2009

 

사교육비는 하늘을 치솟고, 어린시절 강쥐는 어느샌가 사춘기랍시고 툭하면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질 않나 엄마의 가슴은 외로움과 생의 버거움으로 가득하다. 요즘 원수연의  <메리는 외박중>이란 순정만화를 읽는다. 매회 그녀의 작품을 즐겁게 보면서도 두 아이에게 온통 신경이 가 있어서 창작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작가의 푸념이, 64페이지에 달하는 웹진 만화를 그리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살림과 작업을 동시에 하는 작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송진화 <계속달려라>

나무_180×34×4cm_2008

 

어느샌가 머리는 산발이고 남편 출근전쟁 시간, 아이들의 등교를 시키고 나면 어제 밤 아이들 문제로 뒤척이며 풀리지 않았던 피곤이 눅진하게 온 몸을 쑤신다.

 

아침 드라마나 보면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삶을 쥐포처럼 씹거나 내 자신을 대입해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일도 이제는 지겨울 때, 그래도 난 <사랑밖에 몰라>라며

 

가족에 대한 헌신과 엄마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세기며 이웃엄마들과의 마라톤에 나선다. 아이들의 성적은 곧 엄마의 몫으로 던져진지 오래. 어느 학원에 누구 선생이 좋다는 정보는 초특급 정보라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된다. 이 땅의 엄마는 참 힘들다. 요즘 물의를 일으켰던 어느 광고만큼이나 개고생을 시킨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일까?

 

 

 송진화 <솟아라 날개> 나무 45×40×20cm 2008

 

하늘에서 날개라도 하나 떨어진다면 좋으련만.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모든 엄마의 옆집 엄마들은 교육부 장관이 아니던가? 모든 교육의 기준은 옆집 아이가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엄친아, 엄친딸의 생산은 이제 친구의 경계를 넘어 바로 내 이웃으로 전파된다.

 

 

송진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무, 혼합재료38×32×12cm_2008

 

송진화의 작업엔 생의 페이소스가 숨쉰다. 나무의 결과 형태를 살려 만들어낸 조각들. 그녀는 생김생김이 예쁜 나무들만 고르지 않는다. 온전한 형태의 나무를 비롯 향이 진한 나무, 옹이지고 벌레먹고 휜 나무들도 지천이다.

 

작업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무를 나무 그대로 사랑하는 건, 그걸 작업에 이용하는 건 나무가 사람의 삶과 닮았다는 그녀의 생각 때문이다. 

 

나무는 풍경을 그리는 붓과 같다. 그 속에 놓여진 인간의 거짓을 자신의 몸으로 안아낸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내 삶이 때로는 우리를 속이고 참담하게 만들어도, 여전히 생은 지속되고 있으며, 한 차례의 상처가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생의 더깨가 덮혀 나이테란 생의 화폭을 그려가지 않는가.

 

그녀의 조각을 볼 때마나 답답함과 더불어 시원함을 느끼는 건 바로 이유 때문이다. 나무의 결을 내 보이는 건 지금까지 살아낸 내 삶의 무늬를 타인 앞에서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송진화_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이_나무_16×140×26cm_2009 (좌)

송진화_PM5:50_나무_27×55×7cm_2008 (우)

 

나무를 만지고 느껴본 이들은 안다. 송피껍질 두터운 상처의 표피 아래로 인간의 혈흔자국이 느껴진다는 걸.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결을 살리는 건 나를 그만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나무가 살아온 역사는 곧 나의 역사이며, 나이테의 녹아든 미세한 금들의 무늬 속엔 내 삶의 변주곡이 연주된다. 5월의 신록, 연초록 숨결 속에 호흡하는 나무형상이 보인다. 살풋한 자태 뒤에 오는 공복감. 나무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호흡을 뱉고, 인간이 토해낸 문명의 토사물을 껴안아 다시 자신의 껍질로 녹여낸다.

 

 송진화_관계_나무, 혼합재료_42×15×110cm_2007

 

그녀가 작업의 오브제로 사용하는 저 나무는 누군가의 톱날 도끼날에 잘려 슬픈 넋을 들고 그녀의 작업실로 왔을거다.

 

함께 잘린 다른 토막은 어디에선가 텅 빈 교실의 나무 의자가 되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정오 햇살같은 웃음을 담아낼 것이고, 시집가는 신부의 삶의 출발을 여미는 초록빛 생각을 잉태시켜 줄것이다.

 

나무는 인간과 그렇게 관계를 맺는다. 인간들간의 관계는 때로는 칼에 찔린 듯, 못을 박고 무거운 짐을 지거나 뻥 뚤린 듯 공허함에 시달려야 하지만, 나무는 자신의 몸뚱이를 잘라낸 인간을 자신의 혈흔자국 베인 온 몸으로 안아내 인간을 구원한다. 나무의 죽음, 그 명멸의 순간이 아름다운 하늘의 율동이 되는 것은, 나무의 유언이 인간의 몸 속에 생활과 더불어 박히기 때문일거다.

 

 

 송진화 <목구멍 깊숙히> 나무, 혼합재료_45×86×40cm_2008

 

참 많이 울고 싶을 당신을 위해 송진화의 작품들을 올린다. 여자로 사는게 참 쉽지 않은 당신에게.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저 발 하나 내미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배워가는 나이의 우리들.

 

그런 당신을 위한 시원한 그늘의 나무가 되어 주고 싶다. <女세요>란 전시제목이 걸린다. 여자세요? 란 뜻일까 아님 문을 여세요란 뜻일까? 나는 후자쪽에 희망을 두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했던 말이 있다.

 

“Don't spend time beating on a wall, hoping to transform it into a door.”

벽이 문이 되길 소망하며 그것을 때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우리 내 생의 단계들을 구속하는 벽을 문이 되길 소망하기 보다, 허무는 용기. 내 안에 있는 답답함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비 오는 주말,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삶의 문을 열어가는 이 땅의 엄마들, 여자란 이름의 존재에게 축복을 보낸다......그저 행복 가득하길

 

당신은 누구세요?

여자이신가요? 그럼 女세요.

당신에게 찾아온 그 문을 멋지고 당차게 열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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