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인사동 가는 길-나의 하루를 그림으로 채운다

패션 큐레이터 2009. 3. 2. 00:21

 

S#1 인사동 가는 길

 

토요일 오전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성곡미술관 근처 제가 자주 가는 커피스트에서 손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나름대로 2권의 책을 출간하고 보니, 조금씩은 출판업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방식이랄까 이런 것들이 조금씩 보입니다.

 

토요일날 만난 분도 메이저급 출판사의 이사님이셨는데요. 제게 출간제의를 하시더군요. 문제는 제가 해온 일들이 상품기획과 마케팅이다 보니 기획자가 명확하게 아이디어를 설명하지 못하면, 저는 항상 혼을 냅니다.

 

대한민국 출판 기획자중 90퍼센트는 아마 저와 대화를 하면 혼이 날겁니다. 그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브랜드 매니저로 오랜동안 활동하면서 어떤 계획을 짜고 아이디어를 낼 때, 명확하게 그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왔을 때 효익을 얻게 될 집단에 대한 이해, 표적집단에 대한 명확한 세분화된 지침, 그들을 포섭할 수 있는 포지셔닝 전략이 없을 경우 절대로 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소비자 집단의 구매심리와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함부로 일을 하지 않지요. 그래서 이번에 만난 출판기획자도 거의 제가 생각한 컨셉을 정리해서 말해주었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결론이 난건 아니지만 내년 초에는 그 책을 정리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하 미술관>을 출판하고 나서 마음을 되잡은 것은 미술/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 가장 역점을 두어 글을 써야 하는 분야가 복식사와 패션이기 때문입니다. 서점에 가도 제대로 된 복식사나 관련 책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올해 나오게 될 두권의 책도 패션관련 책입니다. 하나는 스타일, 또 하나는 경영학을 패션을 통해 풀어가는 책이 되겠지요. 예전 <성공하는 기업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나름의 인사이트가 충분한데요. 여기에는 바로 역사비평학에서 빌려온 시각으로 경영의 숲을 관통한 까닭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영학자 중에도 인문학과 역사비평에 충실한 지식을 가진 분들이 나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려오는 길, 흥국빌딩 건물을 보니 설치작품과 건물유리를 닦는 분의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한컷 찍었습니다.

 

 

봄기운이 조금씩 완연하게 속살을 드러내며 대지에 퍼집니다.

인사동 초입 들어간 갤러리에서 본 작가 이인옥님의 '가고싶어'전에 나오는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늦깍이 화가로 나섰다고 하시네요. 제주도의 풍광을 고운 색채와 파스텔톤의

화면으로 담아냅니다. 종이비행기와 우산이 하늘을 날라다니는 모습이 고왔습니다.

 

최근 몸이 너무 지쳐서 잠시 여행이라도 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네요.

제주 올레길이 그리도 아름답다는 소문인데, 노오란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바람도시 제주엔

언제 가볼까 하는 생각에 마음만 싱숭생숭 합니다. 잡기만 하면 저를 데려다줄 마법의

노란 우산이 있으면 좋겠어요.그림 속 풍경을 헤메다 꽃멀미에 아파도 좋으니 말입니다.

 

 

토요일엔 보통 인사동과 사간동, 정동길의 왠만한 갤러리들을 꼼꼼하게 다닙니다.

서울 아트 가이드 한권 오른쪽에 끼고, 첫이미지가 인상적인 그림 전시들만 부산하게 보러가지요.

나머지는 네오룩이나 김달진 닷컴에서 일일히 작가이름을 찾아서 살펴봅니다.

 

이번 토요일에 본 그림 중 환한 화면을 가진 두번째 작가는 최영란님입니다.

지금 북경에 가계시던데, 작가로서 경계와 경계를 넘어 자신의 화력을 풍성하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가슴한쪽에서 피어나는 환한 꽃들과 여인의 과장된 입술이 인상깊었죠.

 

 

 

코발트 블루빛 하늘아래, 분홍색 꽃과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중첩됩니다.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테마로 삼는가 봅니다.

노랑색 광택느낌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첼로주자를 떠올렸지요.

누가 저렇게 입었더라, 예전 보았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오프라 하노이가 저렇게

입으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요즘 노랑색에 자꾸 집착하는 이유는

올해 유행색이기도 하고 심리협회에서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탁월해 힘든 시간을 버틸수 있는 힘을 준다고 이 노랑색을 올해의 색으로 선정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도 행복한 캔버스를 그리고 싶다면서

계속 이런풍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작가를 직접 만났으면

좋을뻔 했는데 중국에 있다니 베이징 페어때 가서 보면 될듯 하네요. 요즘 미술시장이

얼어붙어서 도처에 규모를 축소하는 갤러리들이 태반입니다.

 

2006년 말부터 시작된 미술시장의 호황은

이제 끝이났지만 이럴수록 힘들다고 하기 보다는 속으로 알차게

호흡을 골라야 할 때죠. 소재도 하나같이 천편일율적으로 하나만 그리는 작가들

시장성의 스펙트럼이 점점 얇아진 것도 그 원인입니다.

 

예술은 시대를 감싸안으면서도 그 내면의 속살이

썩어들어갈 땐 과감하게 잘라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습니다.

실험정신이 필요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정신의 미술이 등장해야 할 때인것이죠.

 

 

세번째로 만난 화가는 오랜동안 인물화만을 그려온 동양화가 조춘자 선생님입니다.

민가다헌에서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고 헤어진 후 우연히 포스터에 있는 그림 한장을 봤습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사이>란 전시제목이 눈길을 끌었고, 무엇보다도 그림 속

한지위에 채색된 여인의 풍모와 패셔너블한 의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섬세한 튤(tulle)소재의 망사를 저렇게 곱게 그릴 수 있다니

놀라왔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전시회장에 들렀다가 <하하 미술관>에서 다룬 김순철

작가님을 뵌 것입니다. 조 선생님에 대해서 들었는데 훨씬 오랜동안 작업하신 선배님이시라고

하더라구요. 관조미에 젖은 미인도를 오랜만에 봤습니다.

 

그만큼 생략된 화면 속을 가득 메우는 여인사십의 향기가

여전히 등푸른 내면의 강을 건너는 여인의 짙은 에로티시즘이 뭍어나오는

화면 앞에서 계속 그림 속 모델을 응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여인의 몸을 둘러싼 세밀한 망사가 그 오브제가

된 것이 아닐까, 혹은 매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여자들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서 은밀하게 소비성향을 부추기는

괴물은 허영심이 아니다 허영이 아니라 불안이다. 여자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라면

여자에게 사랑을 기대할 자격도 없다.  이외수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중에서

 

작가는 전통적인 호분과 석채를 섞어 가며 전통적인 화법을 계승하면서도

패션 잡지에 나오는 현대적 패션의 디테일과 옷의 패턴을 과감하게 신체 위에 덧입혀

은은하면서도 우아하고, 한편으론 도시적 감성 위에서 불안해 하는 중년여성의 모습을 그립니다.

생각지 않게 좋은 작가분을 만나게 되어서 기분이 좋은 하루였네요. 이제 한주의 시작입니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클림트 전시를 위해 드디어 여러분과 만나는 군요. 열공모드로

들어가야 겠습니다. 공부할 거리가 많은데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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