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필요한 이유-영화 '버터플라이'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1. 25. 14:11

 

 

영화 버터플라이

(맹랑소녀, 할아버지를 만나다)

 

 

S#1-그 많던 나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제부터인가 도시 속 유민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자연은 또 다른 형태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숲과 풀벌레 소리, 별들의 통음은 더 이상, 마음 속 별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가슴을 관통하지 못한다.

 

동양과 서양 모두, 나비란 곤충에 주목해왔다. 알에서 우화한 애벌레가 다시 4번의 탈피과정을 겪으며 완성된 나비의 삶. 탈피를 거듭할 때 마다, 무늬와 빛깔을 변화시키며, 변화의 도정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삶을 투사하고 싶은 심리가 나비를 둘러싼 동서양의 담론 속엔 들어있다.

 

작년 김기덕의 <비몽>에서 두 사람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가 나비였듯, 동일 제목의 고전 영화 <빠삐용>에선 결코 구속될 수 없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표현했던 매개체였던 나비가 이번 <버터플라이>에선 화해와 용서, 인간의 자유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상징하는 응축물로 등장한다.

 

영화는 두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일흔이 넘은 고집불통 나비 수집가 줄리앙과 같은 아파트 윗층에 이사온 8살짜리 소녀 '엘자'다. 엘자가 태어나자 마자, 책임을 다하기 싫어 도망간 아빠를 둔 덕에 20대 초반의 젊은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엘자.

 

그녀는 꽤 조숙하려고 노력한다. 생에 관한 많은 질문들을 재잘재잘 던지기도 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 엄마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듯, 할아버지를 졸라 나비를 잡으러 떠난다.

 

게임기만 만지작 거리며 하루종일 간호 보조사로 일하는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엘자에게 어느날 할아버지가 보여준 비밀스런 방의 나비는 신비하기만 하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부화하는 현장을 보면서, 소녀는 자신또한 저 나비처럼 아름답게 자라고 싶었을 터다. 가출을 단행한 후 엄마에게 걸려올 전화가 두려워 할아버지의 핸드폰에서 핀을 뽑거나,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프랑스 남부 베르꼬르 지역은 알프스가 시작되는 기점이다. 겨울에도 진초록빛 숲과 백설기 같은 눈의 풍경이 어우러지는 곳. 자연을 거니는 일주일 동안 할아버지와 맹랑한 소녀는 별별 질문을 주고 받는다. 별똥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나님의 머리카락이라고 설명하는 줄리앙. 바다의 움직임에 썰물이 있는 건, 사람들에게 앙코르를 외치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하는 할아버지. 참 로맨틱 하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조울증으로 세상을 등져야 했던 아들을 위해, '이자벨'이란 이름의 나비를 구하고 싶어 이번 등정에 참여했다.

 

 

영화의 로맨틱한 외피를 벗고, 내면의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면, 프랑스가 겪고 있는 사회적 병리의 돌기들이 보인다. 가정 해체와 남부 프랑스 소농의 몰락, 아동학대 등, 사회가 껴안아야 할 문제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엘자에겐, 원대한 꿈이 있다. 키가 큰 사람이 되는 것. 문제는 그 모델이 키가 아주 작은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였단 사실이다. 소녀에게 거대한 가수란 말이, 위대함이 아닌 신체적인 '큼'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세 소녀가 웅얼거리는 『사랑의 찬가』는 아름답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대사 중심의 작품이다. 두 사람의 대사를 주고 받는 과정, 시선의 처리, 노인과 꼬마소녀의 언어 속에 드러나는 미묘한 즐거움, 그 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추억을 찾으면 된다. "손녀 안키워 봤지?" "하는게 너무 엉성하잖아" 라고 몰아부치는 엘자 앞에서, 봄의 미풍처럼 우리를 껴안는 따스한 응대와 답변이 볼만한 거리다. (난 언제 저렇게 자연 속에서 야영생활을 해봤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주 오래전이다) 참고로 난 아이들에게 두터운 어른옷을 입혀서 레이어드룩 느낌이 나게 입히는 걸 참 좋아한다. 아이들이 은근히 귀엽다.

 

 

크레파스를 들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어린시절 그렸던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어른이 되었다는 말일 것이고, 사물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의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우리를 위한 영화다. 천국에 가려면 왜 아이의 성정을 가져야 하는지. 아이들의 발언, 아이들의 시선, 그 망막에 맺힌 세상의 무늬는 그렇게 어른을 키우고 교육시킨다.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에게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노년의 여유와 따스함을 전해주기 위해서일거다.

 

두번째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필요한 이유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꺼내며, 오랜 삶을 살아온 할아버지조차 내 안에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음을 배우게 된다는 것. 구 세대와 신 세대가 결코 충돌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나비 이자벨을 엘자의 실수로 놓치고 말지만, 결국 이자벨은 할아버지의 비밀스런 방에 있었던 것. 행복은 결국 가까운 곳에 있다는 진부한 결론을 우아하게 포장해낸다. 8일간의 가출(?) 로 엄마의 관심을 회복한 엘자 또한 이자벨을 얻는다. 엄마의 가슴 속에 있던 두려움도 이 사건을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얻는다. 나비 한 마리가 만든 기적 치곤 너무 심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알고보니 엄마의 이름이 이자벨이었다. 두 마리의 이자벨을 행복하게 얻으며 끝나는 영화. 다시 말하지만 줄거리를 너무 많이 써놓아서 영화보는 즐거움이 덜할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이자벨의 우와등선을 보는 것 하나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돋보인다. 남부 프랑스의 아름다운 자연에 시각적으로라도 몸을 담그고 싶다면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선택일 듯 하다.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며, 비슷한 답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미 당신은 세월의 각질이 거무티티하게 박혀 있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 될테니 말이다. 그러니 준비하라.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며 기상천외한 답변을 만들어보라. 그리고 그 속에서 치유되는 여러분이 되길 난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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