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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오빠가 되는 방법-영화 '오펄드림'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1. 24. 09:15

 

 

영화 오펄드림

(오펄보다 더 빛나는 당신의 인생을 위하여)

 

 

 

S#1-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해 꾸는 꿈

 

피터 카타네오 감독이 멋진 컴백을 했다. 기억하는가? 1997년 여성 전문 스트립바에서 춤을 추는 전직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 풀 몬티(영국 속어로 홀딱 벗다는 뜻)>로 그해 한국을 뒤집어 놓았다.

 

옛 영화를 잃어버린 광산지역 셰필드, 당시 재벌옹호와 감세, 국가개입을 축소하고 소비문화를 증대해서 국부를 키우겠다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경제정책은,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모든 세력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광산도시 셰필드는 그런 희생의 일부일 뿐이다.

 

90년대 말, 한국사회는 이 영화를 철저하게 페미니즘이란 협소한 관점으로 해석하기에 급급했다. 남성성이라는 힘겨운 굴레를 벗어던진 헤라클레스, 심지어는 내면의 폭력적인 남성성을 버릴 때, 본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는 해석만 판을 쳤다. 물론 이런 시각이 틀리다는 건 아니다.

 

어디에도 남성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감성에 젖고 적응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기회를 주지도 않았던 교육방식과 체계, 사회적 약자를 토끼몰이하는 신 자유주의의 발톱에 대해서 언급을 쉬쉬했기에,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다.

 

남성이 벗어던진 옷은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남성성의 상징이자 페르소나였기에, 여성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선 언급하지 못했다.

 

여성성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열심히 떠들었지만, 경제급부에 따라 여성 내부에서도 약자와 강자가 갈리고, 명령과 복종이 존재한다는 걸 배우게 된 여성들은 여전히 제 3의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11년이 지난 지금, 호주 남부의 오펄 광산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동화는 피터 카타네오의 시각이 더욱 확대되고, 풍성해졌음을 방증하는 증거를 보여준다. 오늘 소개할 영화 <오펄 드림>은 한편의 동화같은 작품이다.

 

 

 

서머싯 몸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벤 라이스의 소설 <포비와 딩언>을 바탕으로 했다. 이 작품은 소녀의 행복을 위해 마을전체가 따뜻한 한편의 거짓말을 하는 거대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포비와 딩언이라는 가상의 인물들과 살아가는 소녀 켈리엔, 그녀를 놀리기 좋아하는 오빠 애슈몰, 오펄같은 눈빛을 가졌다는 아빠, 그 아빠에게 반해 도시의 삶을 버리고 사막 한 가운데의 섬, 오펄 광산에 따라온 예쁜 엄마.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이 가상의 인물 포비와 딩언과 살아가는 켈리언은, 그들을 잃고 깊은 시름에 빠진다. 이유없이 몸이 아파오고 먹자마자 토하고 여위어 간다. 이런 딸을 위해 광산을 뒤지다가 다른이의 광산에 들어가 졸지에 도둑으로 몰리고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동네주민들은 가족을 왕따시키고, 심지어는 폭력까지 일삼는다. 더 재미있는 건, 호주에선 도둑을 쥐새끼라고 부른다는 거다. 영어로 Rattler.사전을 찾아보니 허풍선이, 딸랑이, 나아가 폭력적인 군국주의자란 뜻까지 가지고 있다. 역시 쥐에서 파생된 상징은 폭이 넓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애칭은 괜히 나온게 아니지 싶다.

 

오빠 애슈몰은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소녀가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너무 맑아 놀라울 정도로, 오빠는 동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상의 인물 포비와 딩언을 찾기 위해, 공고문을 동네에 붙이고, 법정소송을 당한 아빠를 위해 한때 법대출신이었던 오펄 제련사를 찾아가는 등 동분서주한다.

 

한 몫을 잡기 위해 오펄 광산에 왔던 가족은 힘겨운 삶 속에서 해체의 위기까지 겪지만,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포비와 딩언이 실제로 존재하는 가의 유무에 상관없이, 켈리언을 위해 거짓말에 동참하기로 한다. 포비와 딩언을 위해 관을 짜고, 장례식을 열고 꽃을 헌화한다.

 

한 몫을 잡으려는 인간의 속성이랄까, 여간해서 인간을 잘 믿지 않는 집단일 가능성이 높은 이곳에서, 소녀를 위해 행복한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이 사못 곱다. 따뜻하다. 저 흥미로운 건, 상상속의 인물을 실제로 그려낼 수 있다는 거다. 간절한 믿음은 우리 안에서 진정 존재해야 할 힘의 형태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생생한 살과 피를 부여한다.

 

 

동생을 위해 모든 걸 다 들어주는 오빠의 모습은 놀랍다.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이자 화자인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는 '희망'의 메세지엔 힘이 담겨 있다. 보고 나오는 길, 마치 영성체 훈련을 마친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영화는 결국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것을 믿으면, 그 실체가 우리 속에 존재하게 되고, 생명의 삶을 덧입게 된다는 걸 알려준다.

 

그림으로 표현된 포비와 딩언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짙은 우울 속에 살아가는 캘리언의 분신과도 같다. 화재로 한쪽 다리를 잃어 나무 다리를 한 탓에 절뚝 거리는 포비의 모습과 공주 딩언은 답답한 캘리언의 분신이다. 그 분신은 이미 멋진 오빠의 노력을 통해, 현실 속에서 실재로 존재하는 힘으로 등장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체란 성경구절이 딱 떠오르는 영화. 그러나 영화는 절대로 구차하게 설교를 하진 않는다. 한때 바다였던 오펄 광산. 아쿠아마린 빛 바닷물 속으로 투과된 햇살의 양에 따라, 빚어낸 오색의 조합. 보석 오펄은 인간의 마을을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빛을 껴안는 힘을 보여준다. 원래 중세시대에 오펄은 모든 보석의 빛깔을 포함하는 보석이라 하여, 보석중의 최고로 여겼다.

 

 

더구나 오펄은 원래 무정형이다. 가공을 통해 백색, 회색, 적색, 오렌지,황색, 초록과 청색, 마젠타와 장미빛 , 핑크, 올리브와 브라운, 검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상을 표현한다. 원래 바다 깊은 곳에서 생성되다가 육지로 융기한 곳에서 발견된다는 이 오펄. 영화는 세계 오펄 생산의 90퍼센트를 담당하는 남부 사우스 웨일즈 지역의 쿠버 페디를 배경으로 한다. 이 쿠버 페디란 말도 사실 호주 아보리진, 원주민 말로 소년들의 구멍이란 뜻이다. 호주전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육지가 된 바다, 태고적 바다는 오펄이란 보석을 어떻게 잉태했을까?

 

영화는 우리에게 '희망'이란 실체가 그만큼 보이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 곁에서 함께 호흡하게 될 것이란 점을 순수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 시선에 함께 노출된 우리들의 자아 또한 따뜻하게 변한다. 마음의 연금술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오펄 드림. 안타깝게 이런 좋은 영화들은 왜 상영관을 많이 잡지 못하는 지 아쉽다.

 

 

오늘은 료 요시마타의 연주가 돋보이는 Godsend 란 곡을 골랐습니다.

원래 후지 TV 의<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이란 드라마의 삽입곡인데 너무 좋습니다.

설을 맞아 분주하게 길 위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군요.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만큼

행복의 갯수를 마음에 품는 여러분의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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