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삼청동에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패션 큐레이터 2009. 1. 17. 01:08

 

 

오늘 하루는 부산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달렸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나면, 언론사들의 취재를 동행하거나, 인터뷰 요청을 받은 후

책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고, 지나온 이야기들, 혹은 제 이야기를 버무려

자그마한 기사감이라도 만들어주는 것이 통과의례입니다.

 

오늘 아침 서울엔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소드락 소드락 눈을 밟는 소리. 주변의 사물을

사물의 외곽선을 껴안아 단순함의 극치로 만들어버린 눈의 힘 속에,

작은 발자욱 소리조차도 크게 들리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국민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내일은 월간 여성조선을 비롯, 몇 개의 여성지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질 예정입니다. 책 반응이 괜찮은 모양입니다. 다행입니다.

소원하던 한겨레 신문에 서평이 실려서 입이 함지박만해졌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친한 갤러리 관장님들에게

책을 돌리려고 삼청동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함박눈 내린

갤러리 거리는 고적한 적요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아트 선재로 가는 길

붉은 색 조화 위에 내린 백색의 눈이 곱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흑주색 연청무늬 기와 위에도 눈은 어김없이 내려

흑백의 미감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삼청동 거리는 참 오래도 다녔지만

걸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일상의 황홀이란 폴더를 만든 것도, 사실 이 길 위에서의

생각이었고, 그 길의 무늬를 짜깁고 기워가며, 속속들이 생겨나는

가게들의 풍경과 주변의 모습들을 보며 카메라로 담는 일은

참 즐겁고 행복합니다.

 

부랴 부랴 친한 관장님 몇 분에게 책을 전했습니다.

오늘과 내일 창동 스튜디오에서 신인 작가들의 오프닝이 있다보니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가기 위해, 움직이는 분이 많아서, 겨우 눈 인사만 하고 왔지요.

 

 

 제가 종종 들르는 사진 전문 갤러리 트렁크구요.

이번에 성지연 작가의 전시가 있더군요. 말이 나온김에 이 성지연 작가의

작품을 책이 나오기 얼마전 예술의 전당에서 <파리의 한국 미술>전시회 에서 발견하곤

발간하는 책에 넣어보려고 했습니다. 오프닝 이전에 한가람 미술관 측에

연락을 하고선, 벽에 작품을 걸던 날, 작가도 만나고 작품도 볼겸

부랴 부랴 갔었습니다. 도록에서 볼때와 조금 느낌이 달랐습니다.

 

 

 성지연_뜨개질 하는 여인_Edition 3_람다 컬러 프린트_100×86cm_2006

 

우선 뜨개질을 하는 여인의 표정이랄까

모습이 조금은 따뜻하길 바랬는데, 프린트로 찍혀 나온 모습이

약간 쿨한 것이 차가운 기운이 배어나와서, 책의 첫장에 나왔던 스웨터 그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넣질 못했지요.

 

이후에 작가에게 연락이 왔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작품이 참 좋은데, 이번 책의 테마나 성격과 좀 맞지 않았던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성지연 작가는 최근 사진계에서 주목받는 작가입니다.

다음 책엔 꼭 부탁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삼청동 거리는 언제 걸어도 정겹습니다.

요즘은 출사를 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도처에서 셔터 소리가 들리더군요.

 

 

<쌍화점>의 고려후기 복식에 대한 글을 올리고 나서

엄청나게 조회수가 늘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영향이긴 하지만

더욱 열심히 한국 복식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양복식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복식을 비교분석하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연결성을 찾는 작업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희경 교수님이 쓴 한국복식연구서와

한국복식사전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민속박물관에도 다시 들러

복식 카탈로그를 사야겠습니다. 최근 단국대학교 내의 석주선 박물관에

들러 관련 자료들을 사 모았습니다.

 

 

복식은 공부하다 보면, 정말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신상품을 입고 평하는 스타일리스트나 평론가 못지않게

관련 자료들이 고가이고, 대부분 원서인지라, 마음먹고 책을 사는 날은

엄청난 돈이 그냥 날라갑니다.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목숨을 거냐고 하더군요.

 

최근 독일에 거주하면서 샤넬의 1920-50년대 빈티지 룩을 컬렉팅 하시는 분을

만나, <샤넬 미술관에 가다 2>를 쓸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특이합니다. 정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정보와 자료를

가진 분을 만나 도움을 얻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제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설을 지낸 후 본격적으로 언론사들을 만나는

인터뷰 일정들이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전시도 소개해야 하는데

계속 정신없이 보내며 소홀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올해는 멋진 전시가 많습니다.

패션에 관한 전시도 있고, 퐁피두 센터 전시도 곧 올리도록 할게요.

 

방송을 하건, 언론을 만나 인터뷰를 하건

물속 에서 헤매지 않고 제대로 자맥질을 하길 소망합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싶네요.

지상에 내린 함박눈 입자의 숫자만큼, 여러분의 주말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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