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서울패션위크는 전시행정의 극치!

패션 큐레이터 2008. 10. 24. 22:34

 

 

오늘 오후 서울 무역전시장에 갔다. 이틀남은 서울패션위크를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의 2009년 S/S 작품이

궁금했다. 토요일에 하는 지춘희의 표를 미리 예매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놓친 패션쇼도 많았다.

타샤튜더의 정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디자이너 서승희의

작품이 궁금했다. 모 기업의 CI 작업을 위한 에이프런 디자인 건으로

서승희 교수님을 잠깐 뵌 적이 있다. 조용 조용한 성품을 가진 디자이너의 풍모랄까,

말없이 섬세하고 강한 선을 그리는 모습이 기억에 선연하게 남았다.

 

한국의 패션산업과 디자이너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을 가진 나로선 이번 행사에 대해 격려의 말 한마디 하고 싶지만, 오늘은 좀

따가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뭘 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올해로 서울 패션쇼를 참관한지도 98년 백화점 패션 바이어로 일 하던 시절 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지켜봤다.

 

졸속행정의 표본을 이번 서울 패션위크가 보여준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 금치 못한다. 한 마디로 의욕이 넘쳐서 디테일을 챙기치 못했다고 말해야 하나.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 작은 차이를 어떻게 만들지 모르는 마음의 습관이 문제일 듯 하다.

 

27억을 쏟아부어 세계의 기자들을 초대한 건 좋다. 세계 5대 패션시장으로 서울을 부상시키는 계획,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만큼 서울시의 노력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게다가 세금을 쏟아부어 가뜩이나 힘든 패션산업을 위해 써준 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패션위크를 비즈니스와 연계한 노력은 하나같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패션부스는 파리만 날렸다. 왜 그럴까 살펴봤더니 이해가 간다. 부스 디자인부터가 글러먹었다. 상품들은 검정색 벽면 부스와 공간에 일련의 컨셉이나 주제별로 정리되기는 커녕

그냥 물건으로서 위치하고 있었을 뿐이다.

 

바이어 상담실을 짓는데만 수억이 들었고, 기자들을 초청할 때도 프레스티지석으로 끊어서 돈이 수태 들어갔는데, 바이어석과 프레스실에서 괜찮은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티켓은 쇼가 열리기 전 4일전에나 바이어들에게 송부했다니 할말이 없다. 패션위크가 있는 주에 바이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선을 연구는 하기는 한건가?

 

 이 나라는 도대체가 페어가 열릴때마다 외주를 주는 경호업체들은 왜 그 모양인지. 패션쇼 하나 볼까 하다가, 솔직히 이 양반들 썩은 얼굴을 보고나면 패션쇼를 보고 싶질 않다. 비판이 들끓으면 직원교육에 신경을 쓰겠느니 어쩌니 하지만 짝다리 짚고, 팔짱끼고 벽에 기대고 유유히 놀고 있는 직원들을 보니, 아직까지 한참 멀었다.

 

이 따위로 배경과 무대를 만들어놓으니, 그 안에서 죽어라 컨셉 잡으며 고생한 디자이너들만 욕을 먹기 일쑤일거다. 쉽게 생각하지 마라. 세계적인 패션쇼와 위크를 꽤나 다녀본 나다. 공무원 교육을 시킬려면 패션 페어나 위크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운영되는지 부터 연구시키고 연수를 시켰어야 하지 않나 싶다.

 

더 웃기는 건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만들어 놓은 부스다. 이 추운날 바깥에 허접한 부스 만들어놓고 작품 몇개 걸면, 신인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런 전시행정은 아예 안 하느니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가난한 미술계도 이 따위로 하진 않는다. 물론 패션을 비즈니스와 연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줄 안다. 초기라 이해해달라고 말하기 전에, 벤치마킹을 할 모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식할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나? 세계 5대 패션시장은 립 서비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패션관련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패션산업이 총체적 위기란 분석만 내놓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뭘 해야 할지 부터 고민하라. 의상관련 졸업전시회를 면밀히 보면서, 감각있고 될만한 감(?)을 찾는 일을 과연 이 땅의 패션 저널리스트들이 보여주었나 물어보라. 하나같이 컬렉션 돌아다니며 남들이 써놓은 글이나 복사해서 옮기는 것들이 전부다.

 

패션계의 빠른 속도와 자존심 센 바이어을 잡는 것은 비싼 비행좌석표와 국민의 세금을 털어 쇼룸에서 벌이는 '문화체험'이 아니다.

브랜딩의 기본도 모른 채, 돈을 쏟아붓는 전시행정으로는 패션 선진국의 길은 요원하다. 패션(Fashion)은 삶의 열정(Passion)을 파는 일이다. 세계적인 패션 페어를 철저하게 분석하라. 바이어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만족시킬수 있는지, 그들의 니즈가 뭔지, 다른 페어와 차별화 되는 한국적 페어의 요소가 뭔지 부터 요소분석하라. 제발 내년에는 올해처럼 볼것 없고 먹을 것 없는 잔치가, 말뿐인 파티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