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사랑을 되찾는 마술을 배우고 싶다면-영화 '천국의 책방'

패션 큐레이터 2008. 10. 21. 10:45

 

  

시간을 내어 교보에 들렀다. 패션원서 코너에서

갑자기 말을 걸어주는 분이 계셨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의 독자라고

하시면서 소개한 이 분은 여행사를 운영하는 CEO셨다. 서 있는 자리에서 다양한

여행의 이야기와 미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전 시간을 틈타 간송미술관에 들렀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세심하게 살펴보았고, 이후에 월북작가 이태준의 생가를 찻집으로 만든

수연 산방에서 향기 좋은 우리떡과 시원한 모과차를 마셨다. 창가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가을빛 햇살의 무늬가 곱다. 시간의 앙금이 짭조름한 간장처럼

무뎌진 입술의 감각을 되살린다.

 

 

 

 

Time to Eat & Relax

 

 

오늘은 모처럼 만에 일에 집중했다. 상품기획안을 마무리 하고, 브랜드 출시와 관련된 예산 집행안을 정리했다. 집에 돌아온 시간 11시 20분.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얼음 띠운 김치말이 국수와 떡볶이, 담백한 맛이 좋은 납작만두 란걸 먹었다. 요즘 날씨가 예년에 비해 덥다보니, 자꾸 차가운 음식에 손이 간다.

 

삼청동 거리를 걸으며 모디스트의 가게에 걸린 모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검은콩과 견과들이 들어간 팥빙수를 먹었다. (결국 차가운걸 먹더니 배탈이 났다) 코엑스 현대백화점 강의를 마지막으로 이번 가을 학기는 마무리했다.

 

한달 동안의 쉼을 갖는다. 아....이 즐거운 휴식의 시간들이여.집에 들어오는 길에 <천국의 책방>이란 영화를 빌렸다. 문화 비타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먹어야 한다. 그나저나 오늘 먹은 음식들의 칼로리를 계산해보니, 말끝마다 다이어트란 단어를 달고 다니는 나는 아무래도 넙대대한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 식탐의 계절이여!

 

 

천국이란 개념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크리스천이지만

영화 속 특이한 천국의 의미가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에서 �겨난

피아니스트가 단기 알바(?)를 위해 천국으로 끌려간다는 설정은 꽤 참신한 느낌을 발산한다.

 

 

천국이란, 이승에서 주어진 100세의 삶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이
나머진 생을 채워가는 곳으로 그려진다. 즉 100세의 삶을 그곳에서 메우고 나면

기억은 망각되고, 다시 이승에서 아이로 환생한다는 개념이다.

 천국이 영원성의 뜻으로 사용되기 보다 이생에서의 아쉬움과 회환을 정리하고

채우기 위한 임시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단기알바를 위해 천국으로 끌려온 남자 주인공과

자살로 생을 마무리 했던 피아니스트 쇼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스토리는 다음 영화검색을 참고하시라)

 

 

이런 멜로물이 나름대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건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로맨스의 결론이 해피엔딩이 아니란 엄연한

사실때문일거다.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을수 있고,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경우 인간의 일반적인 반응은 망각이다. 연인의 부재에 대한 망각.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나는 일이 지상에서 살아있는 자가 취해야 할 일이겠지.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며 사는 이들은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고 말이다.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사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허다하리라.

 

그러나 결국 사랑은 연인의 부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상처의 덫에 걸리지 않고,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연화, 즉 사랑의 불꽃이다.

소코가 자살한 이유가 연인의 실수로 빚어진 폭죽 사건으로 청각을

잃었고, 이로 인해 피아노란 삶의 동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생의 무게가 어깨를 눌렀을거다. 실제로 이런 케이스를 본적도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지상에서의 상처를 달래고

봉합할 수 있는 장소로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 곳으로서

천국을 설정한다는 점이다. 책방에 모여 자신이 고른 책을 남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다.

 아마도 이건 자신의 이야기, 혹은 상처의 역사를 타인의 음성과 껴안음을 통해

보듬어 보자는 작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천국이란 설정을 통해, 각자가 가진 상처들을 치유하고

다시 한번 지상에서의 삶을 허락받은 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갖고 싶은

바로 그 기회의 순간을 취득한 자들일거다. 그들이 부럽다.

 

 

포근한 기운과 쌀쌀하게 시샘하는 가을 만추의 차가움

그 속에서 피고지는 꽃들의 그늘 아래 서서, 지나간 사랑을 기억했다.
홀로 타는 갈증을 처진 눈길과 젖은 손으로 위무하며 그리움의 몸부림과 대면해본다.

 

사랑의 불꽃을 기대하기엔 늦은 나이가 되었다고

나 자신에게 자문하지만, 불꽃은 뜨거운 어떤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란 걸 배우는 지혜를 이제는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를 스쳐지나간, 그 사랑의 흔적과 상처들, 아픔 앞에서

난 너무나도 태연자약하다. 시원한 김치말이국수나 다시 먹어야 겠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이야기리라. 누굴 그리 미워하고, 싫다고 할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이들이 해변의 모래숫자처럼 많음을 이제는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