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내 인생의 산맥 그리기

패션 큐레이터 2008. 10. 8. 23:28

 

 

혜화동의 초콜릿 음료를 파는 레스토랑에서 책 한권을 꺼내 읽습니다.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구본형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6명의 연구원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실제로 자신을 모델로 실험을 하고, 그 결과값을 토대로 쓴 책입니다. 요즘 자기계발 책이 시중에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좋은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IMF가 터진 직후, 구본형이란 변화경영전문가가 쓴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란 책을 읽고 마음을 되집었었죠. 다이어트로 20킬로그램을 삐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고, 새벽이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2킬로미터를 뛰어 발레학교에서 새벽 발레레슨을 들었습니다. 파랑이 높은 바다에서 서핑을 배우며, 균형감각을 익혔고, 바닷가에서 승마를 했고, 비행기에서 세번 떨어졌고, 7번의 번지점프를 뛰었고, 카약을 타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갔습니다. 하루에 3권의 영어잡지와 2권의 책을 요약하고, 번역하면서, 언어감각을 익히고, 좋은 영어표현을 하루에 100개씩 정리해써 외우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발레 하면서 몸을 찢었고, 근육을 찢었고, 회사에서 받았던 상처로 인해 무너진 마음을 하나씩 봉합하며, 행복한 시간의 앙금들을 기억의 무늬에 새기고 돌아왔던 때가 언제였나 싶습니다. 행복했던 때와 불행했던 때를 시간축에 놓고 (책에 나오는 대로) 쭉 이어보며, 내 인생의 산맥을 그려보았죠. 책에서는 이걸 산맥 타기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연대기처럼 넓게 펼쳐 봄으로서 그 안에 담겨 있는 강점과 기질, 욕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실제로 매우 간편하게 알아볼수 있는 방법같아서 추천드리고 싶네요.

 

소망과 강점이 만나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바로 그곳이 우리가 성공하는 삶의 진정한 비밀이 담겨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자신의 독특함에 기반을 둔 소망에 노력이 더해질 때 삶이란 꽃이 아련하게 피어나는 법이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이 외에도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기 위해 가족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고, 나의 강점과 기질적 특성을 찾아보는 방법도 아울러 추천하고 있습니다. 자기 혁신, 혹은 자기 변화란 결국은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되는 자기 주도성을 되찾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제 소망은 예전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고 연기자가 되고 싶었고,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첫번째 꿈은 완전히 건너갔고(아는 아트디렉터분이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항상 격려해주셔서 어쩔땐 '함 도전해봐?" 할때도 있습니다) 연기는 그저 교회에서 성극을 하는 정도, 라디오에서 책을 읽어주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지요. 올해가 가기전에 작은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패션과 미술을 아우르는 문화 프로그램을 맡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일은 이루었으니 3분의 1을 이룬셈인데 적지 않게 느껴지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페미닌한 매력을 많이 가진 남자아이였기에 그것이 자신의 독특함의 요소가 되었음을 저는 부인하진 않습니다. 하긴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고 교보 베스트 셀러 4위에 올랐을 때 우연히 사이트에 가니 재미난 댓글이 올라있더군요. " 남자인 나, 저자인 당신도 남자, 그러나 남자로 사느라 참 힘들었을 당신을 위해 박수를....."이란 댓글이었어요. 이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내가 정말 원하는 일들,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 그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고 조리해야 하는지, 몰입이 왜 중요하고, 어떤 영향이 나를 몰입으로 이끄는지도 살펴봤습니다. 더 좋은 건 이 책은 최근 '아침형 인간'을 위시로 한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을 모델로 해서 '따라잡기'류의 방법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쉽게 만나는 실제의 우리들을 모델로 해서 부족하고 남우새스러울지라도, 행복하게 자신의 생을 일구어가는 연구원의

방법론들이 소중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차가운 초콜렛 음료를 마시며 달콤한 케익 한조각을 입에 털어넣으며 그렇게 문장들을 돌올하게 말려진 내 삶의 지도위에 풀어놓고, 퍼즐 맞추기를 해봤습니다. 저는 지금의 생이 좋습니다. 물론 바빠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실 바빠지고 있지만, 돌아오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백화점 강의는 시간 대비로 따져 돈이 안되는 일이고 언론매체들과의 다양한 인터뷰도 지금 당장 돈이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행복합니다. 36살의 나이, 풀고 싶은 숙제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숙제의 내용을 가리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며 어깨를 두드려주니 신이 납니다. 숙제하고 칭찬을 받아본 것이 언제인가 싶습니다.

 

내일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두번째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시간을 하두 쪼개어 쓰는 통에, 주변에(회사에서)얼굴을 많이 찌푸립니다. 하지만 선택했으니 가서 행복하게 강의하고 와야죠. 내일은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의 역사, 드레스 속 악세서리 이야기들을 합니다. 대전 분들, 그리고 저번 강의에 와주신 분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강의하려고 합니다. 많이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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