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노을 속 석촌호수에 나를 적시며

패션 큐레이터 2008. 10. 6. 23:23

 

 

오늘 하루 부산한 일정을 소화했다.

현대백화점 코엑스 점에서 5번째 강의를 마치고

여의도로 넘어갔다. 뭘 타고 갔냐면 세상에 대낮에 유람선을 탔다.

뭐하자는 일인지. 노부부와 지방에서 여행온 5명의 아주머니들이 다였다.

 

 

 

여의도에 내려 거래처에 가서

정리할 거래 건을 마무리 짓고, 수불 관계를 정리했다.

SK 티슈 11월 호 원고의 컨셉을 늦게 정한 탓에

서점에 가서 미술과 건축에 관한 두권의 책을 사서 읽으며 갔다.

임석재 교수님의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시리즈를 읽고 있다.

패션과 건축과 미술을 통합한 글을 한번 올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 하는 책이다.

 

 

건축과 미술의 상호 교류되는

상상력의 무늬는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을

나름대로 잘 풀어내셔서, 읽기에 아주 좋다. 그런데 아쉬운 건

그런 기준으로 서울이란 도시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조경을 살펴보면

매우 삭막하고, 흔적들이 하나씩 지워져가서, 결국은 말소되고 마는 기억의

앙금만 새겨있는 것 같다. 서울은 그렇게 말라 비틀어진 도시다.

 

한강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급 아파트가 아무리 조형적인들

자연스레 강을 타고 흐르며 조율된 파리의 미학을 이길수 없는 법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재건축과 도시적 외관을 조율해온 서양과 비교할 때

이 땅의 매음새를 �고가는 선들의 풍경은 단순하고 직립적이다.

 

강 바람이 시원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작은 책 한권

가져다 유람선 위에서 가을 햇살 맞으며

읽어보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간, 노을의 시간 아래 석촌호수를 걸었다.

예전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살았던 탓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지만

꽤 오랜만에 호수를 걷는다. 고객과 저녁약속을 이 부근에서 잡고, 매콤하고 알싸한

음식을 입에 넣으니 정신이 푸근해진다. 계약과 일에 관한 이야기 보단

자식 걱정과, 이번에 수능을 치는 자녀분을 가진 거래처 대표의

이야기가 더욱 귀에 들어온다.

 

가을 바람 맞으며 노을 아래를 걸었다.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호수표면에 투영된 햇살이

운명은 그리움에 찌든 채, 밤의 시간을 껴안을

준비를 하는 신부의 속살을 닮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 노을지는 하늘을 봤나 하는 생각이 다 든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후배를 우연하게 만났다. "형 다크서클이 왜 이렇게 진해요?"

피곤하긴 한가보다. 하긴 어제 3시간도 자지 못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 있는지, 2번째 책 때문일까. 독자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여전히 미진한 텍스트의 행간을,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공기처럼 투명한 삶의 흔적과 영혼의 무늬를 입사시키고 싶은 내 마음이

한자 한자 또박 또박 글을 쳐서 넣는 손길의 속도를

무한정 느린 유속으로 조율한다.

 

 속보로 호수를 걸으며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아주머니의 뒤태를 닮아가는 내 부족한 글쓰기의 시간과

한계 앞에서 다시 한번 겸손하게 나를 바라보고

시작해야지......하는 마음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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