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나쁜 그리스도인을 위한 충고-기독교인은 뱀파이어다(?)

패션 큐레이터 2008. 9. 2. 01:16

 

 

2007년 케냐의 빈민촌 키베라에서

 

S#1 개(犬)독교 VS 개(開)독교

 

우리 사회는 지금 종교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현 정권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종교 편향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세상은 기독교 신자를 가리켜 개독교인이라 부르고 사회는 성도들을 향해 더 이상 그리스도인처럼 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기독교인 비판은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로 번진지 오래다. 정치권력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목적을 당당하게 합리화 한다.  촛불집회 참석자를 '사탄'이라 규정하질 않나, 최근 불거진 장경동 목사의 불교 폄하 발언까지 머리가 아프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최근 한 권의 책은 이 질문에 답한다. <나쁜 그리스도인>이란 책인데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 기독교 전문 리서치 그룹의 멤버였던 데이비드 키네먼과 게이브 라이언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이 책을 좌파의 비판인 양 몰고 싶겠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기독교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20 만명 이상의 미국인을 조사했다, 이를 통해 핵심적 요소를 추출해낸다. 기독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이미지는 책의 첫 페이지에 한 불신자의 말을 통해 드러난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란 매우 보수적이고 자신들의 사고의 틀에 갇혀 있고, 반동성애 성향에, 낙태반대론자에, 항상 화가 나 있고, 폭력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신들만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하고, 자신들이 믿는 것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는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이 없지요" 책에서 추출한 6가지 기독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위선적이다  ■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  ■  동성애자를 혐오한다

■  그리스도인은 안일하다        ■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  타인을 판단하려 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의 잘못(기독교인)이다" 분석을 통해 기독교는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과 같은 상황임을 말한다. 결국 부정적 인식을 일으킨 장본인은 우리자신이고, 이로 인해 기독의 사명인 사회적 전도의 걸림돌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정치목사의 존재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가장 강경한 공화당의 매파를 형성하고, 핵무기 사용을 찬성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선택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지도자들은 파숫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험을 감지하고 성도를 지켜내야 한다.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익만 도모하며 (이사야 57장 9-11절)

 

종교 지도자의 패악을 꾸짖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이다. 요즘과 별 차이가 없다. 군사정권 시절, 사회를 향한 복음의 목소리를 높였던 KNCC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정치단체 한기총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른다. 그들의 기도는 대통령을 향한 용비어천가로 변했다.

 

파숫군이 되기 보다 아첨꾼이 된 교회는 더이상 제자도를 말하지 않는다. 듣는 성도들이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말 자체가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를 따르려는 의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수 없음을 의미한다. 작년 딜러드 윌러스 목사의 글을 읽었다. 그는 <잊혀진 제자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성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피(구원)에만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교회가 넘쳐난다. 나는 그들을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제자도가 상실된 이 땅의 교회 속 우리 모두 바로 뱀파이어다. 참된예배를 드리지 못한채, 우리 안의 죄의식에 대한 면죄부만 얻기 원하는 우리들의 잘못이다. 이사야에 나오는 참된 예배의 모습을 적어본다

 

"내가 기뻐하는 예배는 억울하게 투옥된 자를 풀어주며 일하는 사람들을 압박하지 않으며, 노동자를 공정하게 대하며 그들의 몫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굶주인 자에게 너의 식량을 나누며 떠도는 가난한 자를 네 집에 초대하여 입히며 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서 숨지 않는 것이라. 이렇게만 하면, 너의 구원이 새벽이 밝아오듯 다가오며,네게 있는 치유의 힘이 세상에 퍼질것이라" (이사야 58장 6-8절)

 

교회는 성도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한다. 교회 성장에 마케팅 기법이 도입되면서, 소비자 중심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목적이 되는 곳이다. 성도가 듣고 싶어하는 말들,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자신의 행악에 대해 고치라는 말보다, "상처를 안준다"는 미명 하에 영혼의 면죄부를 부여하는 교회가 되면, 교회의 사명은 이미 끝난 것이다.

 

케냐의 키베라에서 보낸 한철, 열악한 삶의 조건 속, 죽어가는 아이들, 에이즈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먹이며 안으며, 속으로 참 많이도 울었다. "자녀가 일류대학에 가고, 남편이 승진하고, 결혼하는 것"만이 기도의 제목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글을 읽고 싶어도 교육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인구가 수억이고, 사회적 부조리 앞에 짓밟히며 신음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면서, 선교의 비전을 가졌다면서, 선교하기 편한 곳에 자기개발을 위해 떠난 당신. 예수 믿어 우월하기에 너네에게 준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당신. 정치 지도자의 부도덕성과 부조리에 침묵하는 당신, 공의대로 법적 소송을 이끌지 않으며, 진리대로 판결하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를 개(犬)독교라 부른다.

 

세상의 정권에 도전하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 성경은 세상의 권력에 순종하라고 가르치니 말이다. 문제는 왜 충실한 종이 아닌 미친종이 되어가고 있냐는 말이다. 당신은 참된 예배의 길을 걷는 개(開)독교인인가 아니면 개(犬)독교인인가? 자문해보라. 

 

 

                                         

 

 

4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