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나무 아래 숨을 고르다
- ■ 나무는 소통을 위한 일시정지다
- -레몬나무 아래 숨을 고르다
쉼, 방점, 피리어드, 일시정지......
빗살무늬로 낙하하던 빗망물의 잔치도 소강상태, 쉼에 들어갔나보다. 한자로 쉼을 의미하는 휴(休)에는 나무에 인간이 기대어 있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숲이 많았던 UBC에서 보낸 대학원 시절, 바다가 보이는 장미정원과 원예연구센터 앞 널브러진 햇살이 투과하는 초록빛 숲 사이에 편안히 누워 책을 읽곤 했다.
나무에게선 냄새가 난다. 따스한 온기와 향이 난다. 그 그늘 아래 서면 막힌 가슴이 열린다. 후에 알았다.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숲의 향기는 사실 나무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의 냄새인것을. 나무의 상처가 나를 낫게 하다니, 그에게 고마와해야 함을 배운다.
며칠 전 영화 한편을 보았다. 이스라엘 영화였다. 제목은 <레몬트리>. 사실 영화를 보기전까지만 해도, 가수 박혜경의 <레몬트리>를 생각했고, 글을 쓸 때 습관적으로 마시는 영국산 홍차에 띠우는 샛노란 환희의 빛깔, 그 레몬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울어버렸다. 포스터엔 '향기로운 스캔들'이라고 써놓고, 그 내면을 보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굉장히 무거웠다. 초반 10분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약간 졸기까지 했다.
팔레스타인 여인 살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에서 레몬 농장을 가꾸며 혼자 살고 있다. 어느 날 이스라엘 국방장관 부부가 살마의 이웃에 이사를 오고, 며칠 뒤 그녀는 장관 부부의 안전을 위해 레몬 농장을 없애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소중한 레몬 나무를 지키기 위해 살마는 이스라엘 대법원에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때부터는 재판의 연속이다. 내용은 오로지 한가지 살마의 '지키고 싶은 레몬나무'를 향한 싸움이 다다.
그런데 이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결론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샤프란 꽃의 향기처럼 환해졌다. 레몬의 빛깔처럼 샛노랗게 물들어가더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끊이지 않는 분쟁, 신이 명령한 영토를 회복한 이스라엘과, 그 덕분에 변방으로 �겨나 지금도 자신의 주권을 위해 싸우는 팔레스타인. 영원히 소통불가라며 스스로 평가하는 두 집단의 이야기가 레몬나무 아래서 펼쳐진다.
■ 나무는 삶을 위한 희망이다
유독 아랍과 이스라엘 영화에는 나무가 일종의 상징으로 많이 등장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와 <체리향기>가 그랬다. 그만큼 척박한 토양과 환경 속에서 자라나, 달콤한 수액으로 지친 그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나무는 그들의 삶에 깊게 관여하기 때문일거다. 자살을 꿈꾸는 청년에게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상징이었던 <체리향기> 올리브 숲 사잇길로 걸어가는 여인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엔 담겨진 애절한 첫사랑의 코드, 아랍권 영화의 특징은 영화 속 해석과 결말을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번 <레몬트리>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끝, (결말은 도저히 말 못하겠다) 앙상한 레몬나무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한 그루의 희망의 나무가 자랄수 있음을 상징하면서 끝난다. 나무는 희망이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사오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살마의 레몬나무 숲을 군용철책선으로 나누어놓는다. 삶의 터전을 빼앗고 나서 그저 한다는 이야기는 양국의 평화를 위해, 교전을 최소화 하고 게릴라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 레몬트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사실 이 영화는 실화에 기초한 작품이다. 테러방지의 목적과 약자의 땅을 빼앗고 불법적으로 합병했다는 주장이 서로 신랄하게 충돌한다. 그런데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정치 영화가 아닌 교착 상태에 빠진 인간에 대한 이야기"란 말은 영화가 전개되면서 하나씩 이해가 간다.
3천년이 넘게 지속된 두 민족간의 반목, 살마를 괴롭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툭하면 죽은 남편 이야기를 꺼내며 정조의 의무를 들먹이는 이웃들. 장관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속내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고, 정치국의 눈치를 살피는 장관의 모습도 그리 편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도 확정된 승리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숲을 둘러싼 풍광 속의 인간들과, 그 어깨에 짊어진 생의 짊이 무거울 뿐이다.
사람들은 나무의 그림자를 마구 밟고 다닌다
나무는 그림자가 밟힐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들어도
동상에 걸린 발을 젖가슴에 품어주던 어머니처럼 사람들의 발을 기꺼이 껴안아준다
정호승의 -나무의 마음- 전편
■ 나무는 인간을 껴안는다
성경에는 희년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땅을 경작할 때 7년째 해에 휴작을 하고 7일째 안식일을 갖는 인간의 리듬을 결합해 49년째의 해에 희년을 선포,자신의 땅을 해방시키고 모든 부동산 거래의 효과를 무효화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이기에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리는 것임을 천명한다. 희브리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의 땅을 침탈하면서 가장 먼저 어긴 법이 바로 이 희년의 법칙이다. 살마가 키우는 레몬 숲을 거닐고 싶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철벽이, 이 땅의 국민과의 소통을 원천봉쇄한 컨테이너 박스와 왜 그렇게 오버랩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식의 상정은 피해야 하는데......잘 안된다. 오늘 저녁엔 시원한 레모네이드나 한잔 마셔야 겠다. 내 마음 속에 지키고 싶은 나무는 무얼까? 하루종일 고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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