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다산 정약용을 구속수감해야 하는 이유는
최근 민속학자 천진기가쓴 <운명을 읽는 코드-열두동물>이란
책을 읽고 있다. 2008년이 쥐의 해란 걸 어제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릴 정도로 이래저래 부산한 일정들을 소화하며 살아가긴 하나보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저번 일요일날 갔던 서울민속박물관에는
12간지 조상이 세워져 있다. 대리석으로 꽤 정교하게 조각을 해서
눈에 잘 들어오는데, 오늘은 왼쪽에 보이는 이 쥐가 주인공이다. 쥐는 십이지의 첫자리로
정북방향을 가리키며 시간으로 자시는 오후 11시에서 오전 1시까지의 시간을 뜻한다.
이유진_꿀단지_은, 청동-브로치_45×50×45cm_2005
이유진의 조형 작품 속 꿀단지에 빠진 쥐를 보자.
쥐는 집안의 곡식을 축낸다 하여 흔히 서생원이라 하고 집안 내부의
도둑이라 불린다. 잽싸게 집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폼새에서
행동이 경망하고 방정맞지 않은 사람, 혹은 약삭 빠르고 얄미운 인간을 가리켜
쥐새끼 같은 인간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을 감지하는 뛰어난 본능과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끈질긴 능력으로 긍정적인 평도 얻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배언론과의 유착을 맺고
안된다던 복당을 허락할 판에 놓인 현정권의 수장을 보면 서생원을 연상하게 된다.
이유진_죽은 쥐_캔버스에 실크스크린, 은-브로치_45.5×53cm_2005
쥐는 흔히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해안지방에선 여전히 수호신으로서 추앙받고 있으며
전남 비금도 월포리당과 경치리당은 쥐신을 모신 곳이다.
신사임당 <수박과 쥐> 28.3*34cm, 국립중앙 박물관 (좌) 초충도(우)
신사임당이 그린 수박과 쥐는 원래 초충도의 두번째 그림으로서
섬세하게 붉게 익은 수박과 이것을 갉아먹는 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쥐는 우리나라의 풍속화에선 흔히 재물을 의미한다. 오른쪽 패랭이 꽃의 푸르름은 청춘을
그 위를 나르는 황색나비는 노년의 삶을 의미하는데, 결국 쥐가 아무리
갉아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장수의 삶을 기원하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다 하겠다.
소조십이지상-쥐 경주 국립박물관 소장
옛 선인들은 흔히 나라를 좀먹는 무리들, 모리배와 같은
정치인들을 가리켜 쥐에 비유했다.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보이는데
바로 고대 시가집인 <시경>의 <석서>편에는 과중한 세금을
백성들에게 걷지 못해 안달하는 큰 쥐를 탓하는 장면이 나온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식량 앗아가지 마라
3년이나 널 보살폈는데도 날 보살필 생각은 없구나
이제 너를 버리고 저 평화로운 지역을 찾아가련다.
다산 정약용은 여기서 더 한발자욱 나간다.
들쥐는 구멍파서 이삭 낟알 숨겨두고
집쥐는 집을 뒤져 모든 살림 다 훔친다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 마르고 피 말라 뼈 마저 말랐다네
정약용의 <이노행> 전문
여기서 들쥐는 곡식을 수탈하는 지방관리를 집쥐는
국고를 탕진하는 간신배를 의미한다. 유교를 집권철학으로 내세운
조선에서 쥐로 포장된 간신배들로 인해 군주의 정치가 피폐해지고 있음을 한탄한 시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 그대로다.
검찰은 정조이산의 시대로 돌아가, 그를 구속수감하라.
수감사유는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혐의.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포털에 댓글을 삭제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백성들은 쥐의 등쌀에 나날이 초췌해가는데, 그저 입막음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나보다
(내가 한말이 아니라 다산 정약용의 말을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할것)
인도에선 쥐는 항상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항상 악마와 사탄 탐욕의 상징으로 쥐를 사용한 기독교와는 달리 흰두교에선
사려깊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지혜의 신 가녜사의 수레를 끄는 동물로 포장되어 있다.
며칠 전, 동아일보에선 연예인들의 광우병 발언을 문제삼았다.
특히 김구라는 광우병소 수입시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우리 모두 흰두교로 개종하면 된다"는
우스개를 했다. 의미를 깊이 들어가보면 이것은 대통령의 명예를 복원키 위해 흰두교의 쥐로 변경시킨
현명함의 극치라 하겠다. 이런 깊은 속을 모르고 '미친 발언' 운운한 동아일보는
개그맨 김구라씨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것을 요청한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한때 즐겨보았던 여걸식스 프로그램엔
자주 나오던 게임의 일종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쥐는 항상 박멸의 대상이다.
아무리 민속학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긴 해도, 쥐는 항상 변신과 둔갑술의 천재로서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다. 특히 한국의 옛 설화는 이런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변신과 둔갑을 자유자재로 하는 쥐를 소재로 한 민담에는
흔히 공통적인 패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이나 며느리가 쥐를 도우면 쥐가 은공을 잊고
가짜주인으로 변신하여 진짜를 �아내는 스토리"구조이다. 고래를 막론하고
쥐가 이런 속성의 은유로 쓰인다는 건 참 재미있다.
하긴 자신을 뽑아준 백성의 은혜를 잊고 주인인 척 하는 모씨를 생각하면 그렇다.
한국의 옛 속담 구조를 보면 쥐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은데 여기엔 하찮고 작은 것을 뜻하기 위해, 혹은 쥐의 생김새나 습관을 보고
유추해 만든 것들이 많다. 좋은 것이 몇개 있어 오늘 소개한다.
'쥐구멍으로 소를 몰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하려 함을 의미한다.
어쩜 이렇게 의미가 잘 통할까.....쥐와 소라....속담을 읽으면서 역시 옛선인의 지혜를 떠올린다.
최근 한국사회를 달구고 있는 광우병소 공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더 재미있는 속담중에 '멍석 구멍에 생쥐 눈 뜨듯"이란 속담도 있다.
이것은 겁을 먹고 몰래 숨어서 바깥을 엿보는 생쥐의 속성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캠프 데이빗에서 골프 카트 한번 몰아보려고 국민들의 건강권을 내다버리고
문제가 커져 국민들의 여론이 심각하니 뒤로 숨어 '꼼꼼하게 처리하라'고 이야기 하는
누군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가뜩이나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먹기 힘든 국민들의
세금부담은 높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1퍼센트를 위해 상속세와
및 소득세는 철저하게 감면하는 정책은 '곳간쥐는 고마운줄 모른다'는 옛 선인의
속담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흔히 정월 열 나흗날 밤엔 농가에선 흔히
쥐불놀이라 하여 논과 밭두렁에 불을 놓습니다. 이는 해충을 막고
불에탄 재가 다시 거름이 되어 대지를 비옥하게 해줄 것을 염원하는 것이다.
여기엔 또한 농토에서 작물을 갉아먹는 쥐들의 토벌목적 또한 포함되어 있다.
강강술래 놀이의 한 대목엔 쥔새끼놀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쥔새끼란 쥐의 전라도 방언으로 들쥐들이 엄마의 꼬리를 물고 행렬하는
모습에서 착안한 놀이란다. "쥔쥐새끼를 잡았네, 공 하나 팥 하나, 땡볕드니 콩자루 되었네"
란 대목을 반복한다. 한마디로 쥐 한마리를 잡으면 콩 하나가 한되가 된다는 뜻이다.
역시 부자가 되려면 우선 쥐를 잡아야 한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나보다.
늦었지만 십이간지 중 쥐를 빌어 새해인사 드린다.
"우리 모두 쥐를 잡아 올해는 부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