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보낸 한철-핀축 아트 센터에서
아주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옵니다.
글을 쓰려니 낮선 느낌의 공간감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오네요.
지난 21일날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행을 마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장장 23일간의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글을 쓸수 있는 이곳에 돌아오니
반가운 마음이 절반, 여전히 그리운 러시아의 광대한 땅에
그 마음의 절반이 여전히 놓여있음을 느낍니다.
우크라이나는 가장 마지막 기착지였습니다.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대학을 비롯 다양한 디자인 관련 전공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고, 제 37번째 생일을 맞았고, 오랜동안 온라인을 통해서만 알았던
뵙고 싶었던 블로거분을 만났습니다.
이런 러시아 횡단열차 기행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장벽이 너무 심해서 상처도 컸고, 적은 비용으로 답파하려는 목적에
많은 것을 아껴야 했지요. 이렇게 힘든 여정을 뒤로 하고
우크라이나로 가는 그 과정 또한 힘이 들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벨라루스라는 작은 나라가 있는데요.
제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기차표를 끊을때, 이 벨라루스란 곳을 통과하는지
몰라서, 국경수비대에 잡혀 혼줄도 나고 다시 벨라루스의 고멜이란 곳에 가서
임시 TRANSIT 비자를 만들어 힘들게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의 기업이 얼마나 현지의 마케팅을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화가가 그린 그림이
생활가전 속에 오롯이 배있는 그 제품이 그 곳에서 좋은 호평을 받고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들었을때, 저 역시 삶 속에 배인 패션과 미술의 만남이란 주제를
오랜동안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매우 기뻤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해주신 한국기업의 배려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동안 다양한 미술관들을 쉽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국립 우크라이나 미술관에서 장식미술관, 보석 박물관, 그리고 오늘 소개할 핀축 아트 센터입니다.
Pichunk Art Center는 우크라이나의 재벌인 빅또르 핀축이 세운 예술 재단의 일환입니다.
그는 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레오니드 쿠쉬마의 사위였고, 현재 우크라이나 내 제일의 제철관련 파이프 제조업체인
'인터파이프'사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문화 예술분야의 촉진을 통한
국가 이미지를 올리는 작업에 관심이 많아 2006년 다보스 포럼에서 만찬을 주최하기도 했고
이 핀축 아트 센터를 지어 서유럽과 동유럽의 현대미술을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었지요.
제가 갔던 날이 2월 10일 제 생일이었는데요.
운이 좋게 이 Reflection 전시가 너무 인기가 좋아서 24일 까지 연장하기로 했다더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파리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파코 라반도 이 전시를 보러 왔다고 해요.
어쩐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줄을 서있나 했지요.
데미언 허스트 <허영의 아름다운 폭발-나비> 2006년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 제프 쿤스, 새라 모리스, 무라카미 다카시
리차드 필립스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의 작품들을 다 모아 '성찰'이란 테마로 묶어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핀축아트 센터는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우크라이나 대표 화랑이기도 합니다.
새라 모리스 <격자-로스엔젤레스> 2005년
우크라이나란 도시는 뭐랄까요
여행하며 지나온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와는 판이한 느낌의 도시였습니다.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레닌 동상이 보이지 않는 곳.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순환이 동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까요? 거리는 수많은 상점들과 백화점, 서유럽에서
수입된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마크 퀸 <고도를 기다리며> 2006년
인구 400여만의 작은 중소도시였지만
비정한 느낌의 모스크바와 북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상트 페테르 부르크에 비해
따뜻하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도시의 풍광들이 곳곳에 박혀 있는 곳이기도 했지요.
리차드 필립스 <축복받은 엄마> 2000년
예전부터 리차드 필립스의 작품을 한번 다루려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우크라이나에서 그의 작품을 보게 되다니
정말 기뻤습니다. 팝아트 장르를 하는 작가인 리차드 필립스는
흔히 세계 현대미술의 거장 100인에 꼭 들어가는 작가이기도 해요.
무라카미 다카시 <꽃> 2006년
이번 전시에서는 서유럽과 미국의 작가 뿐만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우크라이나의 현대작가들의 작품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우크라이나에서 이틀째 되던 날, 우크라이나 대학에 갔었는데요
아쉽게 졸업작품전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동유럽은 항상 현대미술의 자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한국 미술이 서유럽과 미국에 너무나도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같이 작품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 옆에 걸린 사진은 거장 안드레이 구르스키의 작품이고요.
이곳에서 만난 신인작가들, 화랑들, 화상들
그들을 통해 알게된 러시아의 현대미술은 생각보다도 규모나 엄청났습니다.
단순하게 여행기만으로 정리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일리야 치카칸 <이성의 게임> 2007년 설치작품
이곳 키에프 출신의 일리아 치카칸의 설치 작품을 오랜동안 지켜봤습니다.
도구적인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보다는
유희하고 놀이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지지하는 작가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설치작품 에선 사람들이 마음대로 농구공을 들고 아인슈타인의 머리 위에
달린 농구대로 공을 던질수가 있지요. 호모 루덴스, 쉼과 놀이의 인간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 회복하는 것이 이성을 도구로서만 사용하는 현대를 치유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라는 작가의 메세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앤터니 곰리 <맹목의 빛> 2007년 설치작품
영국의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신작들은 너무나도 놀라왔습니다.
그의 Blind Light란 작품 속을 거닐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 CIS 지역에 러시아의 영향력과 함께 묶여 있다가
이제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과 자본주의의 방식에 자신을 더욱 익숙하게
만들어가려는 이곳 우크라이나 지역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참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적절하게 좋은 전시들을 많이 보았고, 생각지도 않은 행운도 많이 얻었구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파코 라반을 만나다니......(아래 사진 가장 오른쪽)
우크라이나에서 비록 3일이란 짧은 시간을 머물렀지만
부지런히 다닌 덕분에 여러개의 미술관을 보았습니다. 하나하나 풀어가도록 하지요
시간에 �기고 있고, 넘겨야 할 원고가 밀려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던 여행의 시간들 되세기며 하나하나 기억을 반추해야 겠지요.
이번 여행에는 감사해야 할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도 2편 정도의 포스트가 필요할 듯 해요.
생각지도 않았던 기적들이, 제가 말로 내뱉기만 하면 일어나곤 했거든요.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오기 전날, 10일날 생일을 맞이해서
이곳 우크라이나로 저를 초대해주신 블로거 강처럼 님과 따님과 함께 생일파티를 했습니다.
모나코란 프랑스 식당이었는데 이야기하느라 케익 사진 하나 겨우 찍었어요
오랜만에 푸아그라도 먹어보고, 화려한 정찬으로 생일상을 맞았네요.
(솔직히 사진 찍어 올리면 샘 내실거 같아서 일부러 안찍었어요)
마치 투명한 얼음처럼 동결시켜 버리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을 주셨던 두분에게 감사하며......
오랜동안 기다리시느라 심심하셨죠?
자주 글 올리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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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부터 예술의 전당 맞은편에 있는 갤러리 K에서 수요일 오전에
'미술로 읽는 패션 이야기'라는 테마로 강좌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발간될 <패션-미술의 옷을 벗기다>의 내용이 주가 되고요
책에서 미처 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 하나씩 풀어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