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속 보양식의 세계
박은선_제 간을 받아주세요_디지털 인화_2007
저번주였나 싶네요. KBS 심야토론 시간엔 군복무 가산점에 대한
논의가 토론을 넘어 치열한 쟁점으로 부각되어 우리들 모두를 양편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빌어 가산점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쪽과
2년이란 기회비용을 박탈당한 군인들에게 가산점은 미진한 보상이란
논리가 부딛혔습니다.
박은선_제 녹용을 받아주세요_디지털 인화_2007
어떤 쪽의 목소리에도 공감할 수 밖에 없었지만
토론이 시간을 지나며 후자쪽으로 제 목소리를 기울이게 한 것은 결국 한국의 남자들
모두 피할수 없이 다녀와야 하는 <군대>라는 상황과 경험이 남겨놓은 상처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박은선_절대충성, 절대복종_레진위에 아크릴_2007
"군대는 폭력을 가르치는 교육집단이다"라고 한 패널이 이야기 했습니다.
전거성이란 이름까지 얻으며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신 분의 말이었지요.
예전 같으면 이런 말에 대해서 토를 달았을텐데, 솔직히 논박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 말이 말입니다. 문제는 그 폭력을 배우는 과정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죠. 누구나 강제적으로 징집이란 과정을 통해서 그걸 학습해야 하는 상황
그 기억......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남자들을 구속하고 묶어내는 힘을 갖습니다.
박은선_제 해구신을 받아주세요_레진위에 유채, 가변설치_130×60×40_2007
사실 여성주의를 썩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이 최근들어 이 땅의 페미니즘은
변질될 만큼 변질되어 철저한 이기주의로 변했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의무는 없이 권리만을 찾는 목소리가 제도화의 과정이라고 떠들어대는 남윤인순 같은 사람들
의 주장에 대해 이제 신물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것을 떠나서 남자에게 적어도 이 땅의 군대란 특수한 경험으로
일종의 트라우마를 모든 남성의 기억속에 각인시킵니다. 문제는 그 기억의 포로가 되어
산다는 것이죠. 작가 박은선의 <위문전시> 연작 시리즈는 바로
직업군인인 오빠를 위해 그녀가 만든 보양식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박은선_강요된 희생_레진에 유채_15×11×14cm_2005
누군가를 위해 온 몸을 다 바쳐야
하는 희생제의의 사물들, 우리는 여기서 물개와 초코파이, 군인에게 절대충성을
맹세하는 인삼과 녹용이 마치 살아있는 사물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우리들에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만 지속될 수 있는 사회
하긴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분명 이 땅의 군인들은, 적어도 모병제가 아닌 지금
강제징집을 당하는 이 땅의 젊은 남자들이야 말로 그날 토론에서 잘못된 비유를 들어
설명된 <카나리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광부들이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 새를
갱도에 가지고 가서 그곳의 생태를 평가한다는 비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공멸한다는 변호사의 말은 미안하게도 자리를 잘못 잡았습니다.
군인들의 절대 희생과 폭력 앞에 강제로 학습해야 하는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안전한 사회적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사회적 약자>를 이야기 한답니까?
박은선_충성_스컬피에 유채_23×23×13cm_2005
요즘 여름 날씨가 왜 이런지, 하루 종일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초가을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더운 여름날엔 저는 삼계탕을 종종 먹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어야 수분이 보충이 되는거 같아요.
화날 일도 많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일도 많지만 다시 되돌아 보면
그 힘든 삶의 모습들, 나 보다 더 약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며 살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문득 빠져봅니다.
박은선_묵념하는 총각 무_스컬피에 유채_5×14×11cm_2005
사실 여성운동에 심취해 있던 초기에도 저는 남녀공동병역제를
오히려 찬성했던 사람이었고, 이제 2009년 부터 선택에 의한 여성병역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연 얼마나 선택할지가 문제겠지요.
여전히 남성의 군대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림 속 시뻘건 국물 속에서도 우리의 신체를 위해 달콤한 수육을 남기며
죽어가는 강아지의 모습, 한끼 밥을 위해 우걱우걱 씹혀야 하는
총각김치의 묵념처럼, 이 땅의 젊은 남자아이들이 요즘 새롭게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박은선_충성_레진에 유채_21×21×27cm_2005
국가에 충성을 한다는 것을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나름대로 민간외교를 하고 경제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했고
미술작가들을 찾아내서 언젠가는 국제 무대에 알려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만
과연 이것은 도대체 왜 내가 아닌 국가란 단체의 이익을 위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집안을 위해 특전사에 복무해야 했던
화가의 오빠를 위해 만든 작품 속 사물들은 하나같이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희생의 제물이자, 그 희생으로 숨을 쉬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몰아내고 낡은 기억만을 갖게 되는 걸 막기 위해선
사실적 기억과는 다른 심리적 기억을 포기해야 한다. -크리슈나 무르티-
군대, 희생, 그 심리적 기억을 포기하지 않는한 끝나지 않는 논쟁을 바라보며
그래도 유쾌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낸 작가 박은선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