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팝콘-꽃비가 되어 내리다

패션 큐레이터 2007. 4. 29. 20:54

 

구성연-꽃 시리즈 2005

 

주말에 친구를 만나 가볍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천연염색을 전공한 친구인데, 그 덕에 저 또한 노란 치자물에 손을 담구기도 하고

푸른 빛깔 머금은 대나무잎을 우려 명주 위에 엊어, 연두빛 가득하게 담아보기도 했습니다.

잘 나가던 직장 관두고선, 천연 염색에 빠져 산자락에 살고 있는 그녀를

저는 사랑합니다. 친구로서, 혹은 동년배로서 동시대란 생의 풍경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요.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고른 메뉴는 금꽃 비빔밥입니다.

황토기에 담겨 나온 금낭화와 민들레, 클로브핑크와 달리아 꽃을 엊어낸

상콤한 봄의 향기가 땅의 빛깔을 닮은 잡곡밥과 어울려 있는 것이

어찌나 예쁘던지, 먹기면서도 행복하고 그 향에 취하고 그랬습니다.

 



구성연_꽃 시리즈_2002

 

밥 한끼를 여유있게 빛깔과 향취를 느끼며 먹는 것이 쉽지 않음을

세월이 흐르며 녹록하게 느낍니다. 그것도 마음에 맞는 사람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며 먹는 밥 한끼 만큼이나 힘이 되는 게 없는 것 같더라구요.

 

밥 위에 얹어진 화사한 봄꽃들을 보고 있으려니

예전에 보았던 전시가 떠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모아두었던

카탈로그를 꺼내 보니, 구성연이란 사진작가가 찍어둔 작품들이 눈에 꼬옥 박혀오는 거에요.

 



구성연_다이어리_2005

 

이 작가의 바이오그라피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진 못합니다.

인도철학을 공부했고 이후 사진의 세계에 빠졌던 작가인데요. 그는 항상 꽃과 나비

혹은 다양한 이질적 사물들을 함께 위치시키며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구성연_팝콘 시리즈 popcorn series_2006
 
작년이었나, 우연히 본 그의 작품 속엔 마른 나무 가지들 위에
팝콘이 마치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처럼 우리들의 시야를 사로잡습니다.
 
디지털로 창조된 푸른 하늘, 그 아래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며
꽃 그늘 아래 보낸 이 황홀의 시간은 마음 속 앙금이 되어 땅 위에 흩뿌려집니다
봄꽃을 볼때마다, 그것을 껴안아 보고 싶은 이유는
겨우내 대지 아래 뿌리 박고 견뎌온 겨울의 시간을, 그 상처의 풍경을
따스하게 안아 치유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요?
 


구성연_팝콘하늘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슴이 환해질때, 겨우내 말라붙었던 내 마음속 마른 가지에도
달콤하고 고소한 팝콘꽃이 피는 것만 같습니다. 최근에 좋아하는 교수님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교수님이 좋은 친구분이라며 어떤 분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그 분도 정말이지 미소가 맑고 고운 분이셨어요. 불란서 희곡을 전공한 분을 만나
다양한 희곡 이야기도 들었지요. 예전에 연극 텍스트를 읽는 일을 참 즐겼었는데
과거의 시간들이 마치 추억의 환약처럼 내 손에 쥐어지는듯 했습니다.



구성연_팝콘하늘
 
사람을 만나 가슴이 환해지는 것이란 바로 이런 일인가 봅니다.
다음에도 꼭 한번 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집에 돌아와 예전 읽었던 희곡 이론집을 꺼냈는데요.
세상에나.......기억해 내려고 했지만 오랜동안 떠오르지 않았던
한편의 시를 그 책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예전 대학 3학년때였나, 모 잡지에 실린 시를 적기 귀찮아 살짝 찢어서
책 갈피에 넣어두었는데 찾게 된 것이었어요.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정호승의 -밥 먹는법- 전문
 
소중한 분들과.....이 봄꽃들이 다 지기 전에
한번쯤 만나, 따스한 밥 한끼들 하시는 건 어떠세요?
저도 그 분을 만난 기념으로 장 쥬네의 <하녀들>이란 희곡을 다시 한번 읽으려구요
요즘 만나는 분들이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것이
 

 

 

5월을 기다리며.....인사동에서

 

 
제 블로그를 보는 이유가 제 글보다도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댓글이
너무 곱고 소중하고 예쁘다고 말씀하세요.
항상 감사드려요 제 뒤에서 이렇게 좋은 것들 주시고 도와주셔서요
꼬옥 이 연두빛 봄 하늘 아래, 꽃으로 비벼낸 마음의 비빔밥 한그릇 선사하고 싶습니다.
 
전수연의 연주로 듣습니다.
<어느 맑은 날>.....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릴거라고 하네요. 그럴수록
마음 한구석 습하지 않도록, 웃으며 멋진 한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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