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양 세계 대전 시절 활동했던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자서전이 출간되었습니다. 샤넬의 라이벌로서, 당대 모더니즘 문화의 기수였던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입니다. 뭐랄까 샤넬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이 많아서, 번역을 하면서 두 사람을 함께 놓고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번역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로마대학에서 오리엔탈리즘을 가르치던 교수를 아버지로 둔 디자이너 답게 유년시절 그녀의 독서력이 말해주듯, 그녀의 자서전은 그저 로맨슬르 멋들어지게 적어놓거나 자신의 업적을 연대기로 나열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조각가인 자코메티,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시인 장 콕토,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를 비롯하여 수많은 당대의 지식인들과 함께 패션과 예술을 결합하는 프로젝트를 해온 그녀입니다. 여기에 유년시절에는 시집까지 내는 등, 실제로 그녀의 글은 쉽게 읽혀지기엔 너무 많은 지뢰같은 은유들로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만나는 예술가들에 대한 논평이나 설명을 할 때도, 그리스 신화에서 부터 중세의 다양한 문학적 표현을 알아야 옮길 수 있는 문장이 가득했고 게다가 초현실주의 패션 디자이너 답게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나누어 마치 유체이탈을 하는 듯한 화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양 전쟁 사이, 인류의 위기가 가장 강력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던 시간, 패션의 창조자로서 그녀의 삶은 단순하게 앞서나가는 선각자 정도의 표현으론 부족합니다.
그는 정녕 패션의 힘을 알고 있는 작가이자 예술가였으며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런 사람의 삶을 짦은 책으로 옮겨내는 작업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번역을 원문 그대로 옮기려니 문장이 딱딱해지고 문장을 풀고 다시 만들려하니, 원문을 둘러싼 디자이너의 의도가 흐뜨러지게 될까 두려워서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패션의 역사를 다루는 복식사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위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위해 멋진 멘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께 해준 출판사 시공사에게도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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