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를 가르치는 시간 (주) 세정에서 두번째 임직원 특강을 마쳤습니다. 지난번 부산에 이어 오늘은 서울에서 함께 했습니다. 복식사를 테마로 많은 강의를 하는 편입니다. 복식의 역사가 단순하게 상식이나 교양을 쌓는 수준이 아닌, 패션이란 인간의 물질문화의 일환을 읽는 렌즈가 되는 것이고 이러한 관점을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상품기획자들을 위하여 패션의 역사에서 뽑은 혁신의 역사와 창의력에 대해서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엔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의 논리에서 소비자본주의의 탄생과 쇼핑의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죠. 최근엔 패션의 인문학과 사회사를 심도깊게 가르쳤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 복식의 역사는 단순히 옷을 잘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 정도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각 시대가 만들어낸 스타일과 유행의 역학을 보는 것이고, 그 속에서 소비자의 행동과 열망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죠. 그건 트랜드를 해석해서 팔아주는 회사에서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만큼 이땅에서 자칭 기업을 상대로 색채에서 트랜드 교육을 담당하는 곳의 강의 내용이 부실하고 하나같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것은, 이러한 인류학과 사회학, 철학과 문학에 이르는 인문학적인 배경이 약해서입니다.
맨날 자기네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뿐, 한번도 거론되거나 시도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자칭 패션회사를 끼고 패션학교 만든 분들, 반성하셔야 합니다. 이외에도 사단법인 컬러 및 트렌드 단체도 마찬가지고요. 패션의 역사는 미시사로서, 문화사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복식의 역사를 읽는 관점은 무한이 되죠. 경제적인 관점에서 상품 교역의 역사만 따져물어도 되고요. 이 경우도 과거의 그때 이랬다가 아니라 그 역사를 통해 오늘날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함께 읽어야 통찰력이 되는 겁니다. 역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쓴 <문화사의 과제>란 책에는 참 멋진 그의 통찰들이 나옵니다. 강의 후기로 그의 글을 적는 것으로 제 마음을 갈음하려 합니다. 역사적 통찰력의 발전은 원사료의 비판 검토한 후에 행해지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자료를 발굴해내는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32쪽) 복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서구의 책만 거의 번역해서 옮겨놓는 수준으로 봐서는 실제로는 제대로 된 복식사를 가르치기도 어렵죠. 끊임없이 자료를 발굴하고 현재의 사례를 만들어가는과정을 통해, 그 과정에서 선물로 주어지는 영감을 얻는 것입니다. 영감이란 대상에게 바치는 시간만큼, 그 대상이 주체에게 주는 선물이란 말을 기억해보려 합니다. 저는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패션이 탄생한 중세말기와 당시의 우리상황을 비교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건 매우 아카데믹한 이야기죠.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들은 항상 당대와 연결되고, 그들의 열망은 우리와 연결됩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씩 읽어가는 게 좋습니다. 오늘 아침 8시부터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열의를 다해 강의에 함께 동참해주신 주식회사 세정의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이땅에 좋은 패션기업으로 꼭 남아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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