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현대무용으로 그린 패션의 세계-소셜스킨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2. 12. 4. 16:49

 

 

무용, 패션의 언어를 논하다

지난 금요일, 혜화동에 있는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해외 안무가 초청공연 시리즈인 <소셜스킨Social Skin>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해외 안무가 초청공연은 해외에서 주목받는 안무가를 초청하여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신작공연을 올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참여한 안무가는 이브기& 그레벤. 유리 이브기는 1990년부터 7년동안 이스라엘 키부츠 현대무용단에서 일했습니다. 요한 그레벤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죠. 이후 각자 안무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보이기 위한 작업에 천착. 1998년 이브기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떠오르는 예술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이브기는 2003년 그레벤과 함께 첫 작업을 선보입니다. 헝가리 현대발레단을 위한 작품으로 새로운 버전의 카르멘으르 선보이죠. 이 작품으로 국제 페스티벌을 휩씁니다.



이번에 선보인 소셜스킨은 2011년 이브기 & 그레벤이 자신의 작품 <오브젝트>를 공연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던 당시, 국립현대무용단의 리허설을 보고, 무용수들의 역량과 테크닉에 반했던 안무가의 적극적인 지지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옷, 사회적 인간을 감싸는 피부

 

작품제목인 소셜스킨(Social Skin)은 곧 옷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 작품에 끌렸던 가장 첫번째 이유이죠. 안무가가 말하는 옷은 나를 표현하고, 강조하고, 혹은 숨기는 도구로서의 옷입니다. 옷은 또한 문화적, 사회적인 정체성의 지표이지요. 안무가의 생각 속 옷이 담겨진 거대한 벽면이 공연과 더불어 눈 앞에 펼쳐집니다. 500여벌의 무수한 옷들이 걸려있는 벽면은 어떤 일면에서 보면, 옷의 개수만큼 다양한 정체성을 매일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공연시작, 남자와 여자 무용수가 서로를 얼싸안고 마치 자웅동체처럼 움직이다가 남자가 여자를 옷장 속으로 미는 장면이 나옵니다. 옷을 통한 성정체성이 결정되는 시점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옷을 통해 성차를 식별하게 되니까요.



지난해 국제현대무용제에 초청되어 국내의 관객들에게 주목받은 이후로 이브기 & 그레벤이 지속적으로 선보인 자신의 무용언어는 '자유에 대한 갈망'입니다. 인간을 억압하는 문화적 환경, 사회적 기준을 깨뜨리기를 열망하는 안무가는 인간을 억압하는 첫 번째 사회적 기제로서 옷을 들고 나옵니다. 무대에서 무용수들의 서로의 몸을 부수고, 만지고, 대면하고 쌓고, 포개어집니다. 그들의 몸을 설명하는 단어는 한 벌의 옷을 다루는 우리들의 행동과도 닮아있죠. 안무가는 무대가 관객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길 바라는 듯, 무수한 옷의 무덤 속에서 환원 불가능한 개인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옷 속에서 나신으로 등장하는 무용가들의 몸은 바로 옷이란 사회적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우리들의 몸'입니다.

 

두 번째로 이어지는 장면은, 자웅동체를 이루던 남녀가 하나로 통일된 후, 등장하는 집단의 모습입니다. 마치 이들은 하나의 지배적인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유행현상으로 소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유행을 추종하는 이들의 모습은 처음부터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진 못합니다. 당연하지요. 유행이란 사회적 현상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편차가 있을테니까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이러한 섬세한 면모들을 꽤나 일반 관객들에게도 통어될 수 있는 수준에서 잘 표현합니다.


 

당신은 어떤 옷을 입고 있나요

저는 무용을 좋아합니다. 무용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무용수의 몸을 상수로 하는 예술이기에 그렇습니다. 패션도 그렇습니다. 한 벌의 옷은 디자이너의 창작과정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결국 제 3자인 인간이 입는 착장 행위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획득하지요. 문제는 문화별로 착장 행위에 부여해온 주요한 가치들이 상이하다는 것입니다. 옷의 인류학은 항상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현대무용 <소셜스킨>은 제게 꽤나 많은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조명과 무대가 완벽한 한 몸을 이뤄 보여지는 공연, 참 오랜만이었죠.

 

무대가 안무가의 미학을 시각화하는 유일한 공간이라면 이번 소셜스킨은, 세상의 모든 런웨이의 배면을 흐르는 원초적인 우리들의 열망을 담았다고나 할까요? 강렬한 무용수의 신체를 활용한 안무는 옷을 둘러싼 사회적 통제와 권력, 시선을 아주 섬세하고 내밀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패션을 소재로 한 이러한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그저 공연예술에서 패션을 소재로 하는 것이 패션쇼나 디자이너를 다루는 것 정도에서 머물고 마는게 이 땅의 빈천한 드라마와 영화, 공연예술이었는데요. 이렇게 패션의존재론에 대한 당당한 질문을 던지고, 육체로 답하는 그 모습이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