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소설가 공지영을 위한 그림-나는 뜨거운 가슴이 좋다

패션 큐레이터 2012. 1. 30. 10:09

 

 

야코포 틴토레토 <자신의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작가 공지영, 80년대 학번들의 한계

 

나꼼수가 난리다. 아니 현재 구금된 정봉주 의원의 석방을 위해 국민본부에서 시작된 운동 때문이다. 문제는 그 운동이 석기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80년대 학번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여자의 가슴'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말한다. "수많은 사진들이 오가고 '나와라 정봉주사이트'를 검색한 결과 나의 입장은 수꼴들이 그리고 마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그 방식으로 여성의 성징을 드러내는 석방운동을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반대하며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꼼수팀과는 분명히 의견을 달리한다" 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맞다. 여성으로서 이러한 성정과 감정을 갖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단 그녀의 표현 중 가슴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찬탄하거나 논평하는 모든 남성들을 마초라고 규정하는 시선에는 반대다. 물론 그녀를 불편하게 했던 논평들 댓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참.....얘들은 아이큐가 몇이냐'를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뭐라고 규정하는 건 반대다. 촛불집회에서도 여성은 남성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결정과 목소리를 내왔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기존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정치란 문법의 장에, 스스로 치어리더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자꾸 말을 내뱉어왔던 건, 바로 80년대 학번들의 운동방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언설이다. 그래서 난 공지영이 불쾌하다.

 

'아직도 반대하며'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피아식별이 확실해야 했던 세대. 석기시대를 살아가던 그녀 세대엔 여성도 남성처럼 강철군화를 신고 싸워야 했다. 그들이 의식확장운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인 페미니즘이 전투적인 성향을 띠는건 당연한 이치. 당시 여성운동에 몸담았던 자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비판하던 가부장적인 남성들, 대리남성의 모습을 참 많이 가지고 있음을 오랜동안의 운동을 통해 느껴야 했다. 난 솔직히 그랬다. '가슴터지도록' 구하고 싶다는 정봉주를 위해 하나같이 비키니 시위를 시작한 여성들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기 보단, 그냥 이슈 하나 만들려고 하나.....혹은 튀려고 하나. 이 정도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표현방식에 대해 꼰대짓을 하고 싶지도 않다. 성범죄에 대항한 여성들의 슬럿워크를 들이대며 비키니 시위를 승화시킬 생각 추호도 없다. 다만 그냥 '이렇게 노는 구나....얘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게 오히려 나꼼수의 속성에 맞지 않는가?

 

말끝마다 피해자로서의 여성과 가해자 남성이란 프레임을 들이대던 자들. 물론 이로 인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단 페미니즘을 팔아서 현재의 사회적 기득권을 갖게 된 여성들에 대해선 공지영 같은 이들이 눈 감고 있는 건 의외다. 모든 사유에 페미니즘을 붙이지 않으면 '덜떨어지거나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처럼 보이도록 조장한 댓가로 그들이 얻은 건 상당히 많다. 대학교수를 꿰찬 이들도 부지기수고 정치권력에 입성한 자도 다수다. 이런 이들을 위해 항상 남성은 가해자여야 하고 절시증의 주체여야 하는 공지영의 프레임이, 시선의 정치학이 '난 참 불쾌하다'.

 

그런데 80년대 학번, 공지영의 시선에는 그게 그렇게도 불쾌했나보다. 물론 그녀의 불쾌감에 대해서도 뭐라 항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남성들을 바라보는 시선, 규정의 방식은 마치 중세말 종교재판(Inquisition)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일거다. '내가 묻노니'로 부터 시작되는 종교재판은 철저하게 재판장의 정체성과 동일한 자/아닌자를 색출하는 방식으로 틀지어져 있다.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타인에게 투사해 그대로 찍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오늘날의 486 세대들의 웃기지도 않은 작태를 보면 우스움을 떠나 안스럽다. 상처받도 산 자들의 '그 후의 삶'을 보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동의를 우리에게 권하는 것도 반대다. 그냥 그 세대의 짐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진중권이 그랬다. 자기가 촛불때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 사람인데 '자기 말을 안듣더라'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나꼼수를 듣나보다 싶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꼼수를 들으면서 스스로 잡놈이기를 자청하는 자들과, 정치판을 향한 현대판 우신예찬을 듣는 것. 때로는 배설하고 분개하는 맛. 그래서 이들이 나꼼수를 듣고 그들의 편에 서 있는 것 같다. 잡놈들에게서 숭고와 단아함을 끄집어내려는 건 어리석다. 남이야 튀고 싶어서 '가슴터지게'를 외치던, 잡놈짓을 하건, 빅엿을 먹이고 먹든, 별의 별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정체성의 마을이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말이다. 조중동 좋아할 일 있나? 지적허영이건 혹은 자신의 성징을 드러내건 왜 당신은 엄숙한 시선으로, 당신의 석기시대를 이들에게 살아가라고 꼰대질인가? 우리에겐 쿨이 필요하다....정치적 쿨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