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로버트 <전화 오퍼레이터> 1977년, 캔버스에 유채
전화예절에서 필요한 것들
인터넷 세상이 뜨겁습니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소방서에 119 긴급 전화로 통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하고 장난전화로 인식한 소방 공무원을 인사조치 했다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녹취록이 알려지면서 새삼 김문수 지사의 행동의 부적절함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저로서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았습니다. 예전 한국의 대표 고전문학작품『춘향전』을 놓고도, 그 의미를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라고 하여 공분을 샀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번에도 구설수에 올랐네요.
인터넷에선 김문수 지사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온갖 패러디를 쏟아내며 조롱하는 양상입니다. '나는 도지사다' '관등성명대고 잠금해제' 등 권력의 한 달콤함에 취해 내뱉은 오만함에 갖은 말들이 분출합니다. 오늘 김문수 지사님을 위해 제가 고른 한 장의 그림은 폴 로버츠의 <전화 오퍼레이터>입니다. 바로 1977년, 어두운 한 모텔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폰섹스 오퍼레이터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지요.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폰 섹스 산업은 80년대에 들어가면서 전화번호 900 서비스와 더불어 미국에서 본격적인 섹스산업의 일부로 편입됩니다. 오늘 그림의 주인공 폴 로버츠는 1948년 영국에서 출생했습니다. <스니프 앤 티어즈> 그룹의 리드 싱어이자 송 라이터였기도 했죠.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그를 포토리얼리즘 계열의 화가로 기억합니다. 록 밴드로 성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대표적인 예술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했던 미술계의 재원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영화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와 미국을 대표하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사진적인 정밀함으로 그려낸 그의 그림에는 강렬한 색채감각과 추상적 가치의 올바른 재현이란 장점이 올올이 박혀있지요.
국민은 폰 섹스 오퍼레이터가 아닙니다.
그의 작품은 유혹과 글래머로 가득한 도시적 삶의 내면을 패러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소수계층과 취약계층,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계층의 여성들은 폰 섹스 오퍼레이터로 몰리고 있습니다. 부업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지난하고 버거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폰 섹스 오퍼레이터의 일은, 전화를 건 남성/여성의 성적 환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부추기며 전화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폴 로버츠의 그림에서 김문수 도지사가 전화로 얻고자 했던 일종의 환상같은 걸 느낍니다. 119 상황실의 긴급전화는 장난전화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 갑자기 고위 공직자가 갑작스레 '자신의 관등성명을 대며' 들어오는 인커밍 전화를 장난전화로 오인할 가능성이 큰 것이죠.
오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행태를 비평하면서 제가 굳이 폰 섹스 오퍼레이터의 그림을 삽입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 시절, 혹은 호기심으로 성적 환타지를 얻기 위해, 혹은 자위를 위해 이 폰섹스에 전화를 걸어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성적 환상을 떠나, 환상은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정치가에게 그 환상의 핵심은 바로 권력이고, 권력의 이미지를 입고 벗고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김문수 도지사가 시정평가를 위해 전화를 걸고자 했다면 여기에 합당한 번호로 걸어서 소방공무원들의 노력을 치하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관등성명을 대면 모든 이들이 그 이름을 알고 인지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제가 폰 섹스 오퍼레이터라면 '갖은 공감의 연기'를 펼치며 전화를 건 이의 성적 환상을 부추기겠지만, 적어도 국민들은 도지사님의 권력의지와 욕망을 채워주는 폰 섹스 워커가 아닙니다. 이번에 김문수 도지사가 보여준 행동은 거의 국민을 자신의 권력의 환상을 투영하고 받아주는 대상 정도로 취급한데서 나오는, 다시 말해 그런 저열한 욕망이 '정치가의 외양' 이면에 감추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전보조치 되었던 소방공무원 두 분이 원상복귀했다는 소식입니다. 온라인 세상에서 부글부글 들끓다보니 내린 조치겠지요. 권력은 탐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걸 몸소 보여준 김문수 도지사, 정말 다시 보게 되네요. 요즘도 춘향전을 읽을 때 그저 '변학또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로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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