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거니는 시간
아주 오랜만에 미술관 오프닝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내일부터 시작될 <놀이의 순간>전 오프닝 파티였습니다. 패션과 미술의 콜라보레이션을 주로 살펴보는 블로그라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실제 최근들어 패션쪽에 매우 경도되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대형 패션회사와 유통회사, 화장품 회사, 그룹 연수원 강의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방송활동까지 영역을 넓힌답시고 이러저리 뛰어다니곤 있는데 많이 지쳐있던 참이었습니다.
복식사와 미술사를 동시에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터라, 사실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저로서도 수월치 않습니다. 하나를 가까이 하면 또 다른 한 곳이 멀어지지요. 언제부터인가 미술관 마실숫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알고 지내던 현대작가들도 1년전 모습 그대로 입니다. 이번 <패션의 인문학>책을 저술하면서, 한국의 현대미술을 통해 패션의 면모를 밝히고자 했던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실과 바늘, 한장의 천, 직물의 세계가 모여 한벌의 옷이 되기까지 솔기선을 한땀한땀 수놓는 재봉의 시간 그 속에서 박히는 수많은 부자재들, 그 기호들의 세계를 밝혀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전시를 가게 된 것도 출품작 중에 단추를 이용해 사찰을 표현해 낸 한 작가분을 뵙고 이미지와 작가의 변을 듣고 싶어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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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시의 제목은 <놀이의 순간>입니다. 이 전시는 최근 들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환영’(Illusion)에 관해 집중 조명합니다. 일루젼은 ‘착시’와 관련이 깊습니다. 또는 미술가들이 의도적으로 형태를 일그러뜨리는 ‘왜상’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외에 여러 방식으로 환상적인 미술작품을 선보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일루젼은 감상자들에게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로서 다가갑니다. |
관객이 보는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매순간 작품은 변화합니다. 관람객들은 감상과정에서 어떤 특정 지점에서만 작품의 온전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눈 앞에 보이던 형상은 사라지거나 다른 개체처럼 왜곡되기 마련이지요. 어떤 작품 앞에서는 마치 감상자가 땅 속으로 깊이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참여 작가들은 우리를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당황하게 만듭니다.
<놀이의 순간>전은 현대미술가들이 보여주는 환상과 트릭의 세계를 선보입니다. 일루전은 어찌보면 모든 미술작업의 시작이자 마지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일루젼이 주는 착시현상 때문입니다. 이런 당황스런 경험속에, 우리의 시각이 가진 맹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고 한번쯤 회의해보는 것. 기계적인 경험이 되어버린 인간의 시각에 한번쯤 거리를 두고 새롭게 사물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여유를 줘보는 건 어떨까요? 어제 <뿌리깊은 나무>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해 봅니다. 세종 이도가 궁을 거닐며 독백을 하죠. 수천번을 거닐었을 궁 연못가의 이름없는 들풀을 발견하고선, '저것이 언제부터 피었느냐고' 묻습니다. 궁의 제례가 이뤄지는 저 코발트빛 하늘의 색을 그 또한 다시 보게 된 것이죠. |
시각은 이렇게도 선택적이고 어떻게 보는지, 어떤 각도에서 보는지에 따라 새로운 값과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함부로 단정짓지 말아야 하는 이유지요. 물론 시차에 따라 관점들은 충돌을 일으킵니다. 형상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요. 그러나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상충하는 두 입장과 형상을 긴장감 속에서 탄탄하게 유지하고 감쌀 수 있는 지혜입니다. |
오랜만에 박승모 작가님을 뵈어 작품을 보며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번 뉴욕 여행때 뵈려고 했는데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뵙질 못했거든요. 오늘의 만남이 더욱 반가왔던 이유입니다. |
작품 앞에 선 박승모 작가님 모습 한 컷 찍었네요. |
이번 전시의 부제가 '아하 모멘트' 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어떤 발견과 각성을 경험할 때 느끼게 되는 탄성의 순간을 말합니다.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감상자들은 미술가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트릭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깨우침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런 전시를 좋아하는 것은, 섬광같은 깨달음이 문득 제 자신에게 찾아올 때가 있기 때문이죠. 이것은 특수한 형태의 직관입니다. 개념이 매개되지 않기에 더욱 내 안에서 부글부글 발효되며 부풀어오르지요.
저는 자칭 교육 전문가들의 메소드를 별로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통제된 실험을 통해 밝혀진 값을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지요. 요즘같은 시대, 모든 경험과 지식, 감각이 통합되어 완성되는 찰나의 혜안이 필요한 시대에는 고정되고 굳어있는 방법론들을 버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각을 다시 한번 벼리워야 하지요. |
오늘 찾아뵙고 인사드린 황란 작가님입니다. 작품 앞에 서계시죠. 작품 설명을 오랜 동안 들었습니다. 수만개의 단추를 가지고 궁의 단청무늬며 기와와 형태선을 그려낸 인고의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1년동안 작품을 한개 정도 만들기도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올 한해도 마무리 되어가네요. 정말 정신없이 바빴던 한해였습니다. 내년은 1월 스케줄을 보니 거의 살인적입니다. 강의만 10회가 넘네요. 인기 강사가 되는 건 좋지만, 이 과정에서 절대로 타성에 젖어 하던 소리나 계속 내뱉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독서나 여행이 힘이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듣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한 벌의 옷을 입는 것,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 무대에서 내 몸을 찟어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는 것, 한 장의 여백에 사유의 흔적을 쓰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입니다. 듣고자 하는 이들의 머리 속에 생의 여울을 깊게 팔 수 있도록 돕는 생각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될 수 있는 인식의 효소, 그 씨앗을 뿌리는 일이니까요. 그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일테니까요. 세종 이도가 드디어 백성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되었다고 하는 그 마음이 제게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드라마의 여운이 크네요. 자꾸 글을 쓰다 드라마로 환원되는 걸 보니 말입니다.
*** 양파가 부르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OST 중 '기억할께요' 를 올립니다. 이제는 개별 블로그에 곡을 못 올리네요. 블로그 전체 음악으로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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