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뉴욕 첼시의 갤러리를 다니며
내 눈에 각인된 한 명의 화가가 있다. 에릭 제너(Eric Zener)
하오의 햇살은 마치 컴퍼스의 축처럼 내 손등의 지점을 콕 찌르며, 중심의 원환을
그리려는 듯 빙그르르 돈다. 그림 속 이미지가 녹아있는 대형 캔버스
앞에 서니, 어루숭어루숭 오래전부터 앓아온 피부염으로
등이 더욱 가렵다, 무슨일일까 궁금하다.
에릭 제너는 오레곤 주, 애스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심리학자였던 아버지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바이올린 주자였던
엄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어린시절부터, 예술과 심리학이 결합된 환경 속에서
조금씩 예술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이후 백화점에서 바이어 생활도 했고 이후 모든 걸 버리고 2년 동안 베낭을 매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 방값대신 그림을 대신하며 오랜 세월 여행의
흔적 속에 자신의 생각의 씨앗을 뿌렸다. 1991년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와 이때부터 본격적인 화가생활에 접어든다.
2003년 스페인의 브라바 해변 지역에 잠시 머물며
그는 해변가를 유영하는 이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연작들이 바로 물과 인간의 접촉, 물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이미지들이다. 깊은 심연으로 자맥질하는 여인의 모습,
코와 입가에 바다거품이 뭉글뭉글 엉겨 오르는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물은 나의 영감의 플랫폼이다"라고
주장한다. 다이빙대 끝에 선 붉은 줄무늬 트렁크를 입은 다이버
도약의 순간과 물과 접촉하는 최초의 순간에 온 응축된 힘을 모으는 이들의
모습, 그 시선과 형상에서 지치지 않고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을 봤다.
물은 인간에게 발견의 장소이자, 위험과 변화의 순간을
알려주는 은유다. 인간의 탄생은 따스한 어미의 자궁 속 물 안에서
이뤄지며, 양수를 터뜨리고 지상의 비루하고 폭력적인 환경 속으로 편입되는
순간에도 물은 인간의 죄를 정화하고, 힘을 복원시키는 매체가 된다.
그림 속 주인공인 여인은 화가의 아내인 줄리다. 그녀는
사업 파트너이면서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한다.
그의 그림은 처연하고 외롭다. 물 속을 유영하는
인간은 자신의 탄생처럼, 혼자 태어나 자신의 시원을 상징하는
물 속에서 깊이, 찬연하게 자맥질한다. 인생의 파고와 서러운 세월의 끈끈한
흔적들을 뒤로 하고, 빛의 입자와 함께 부서지는 말간 포말들이
인간의 몸을 감싼다. 끊임없는 변화와 자기개혁이 필요한
인간이 물을 통해 새롭게 부활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큐멘터리 속 어부는
가마우지 입에서 하루치 시간을 꺼낸다
가마우지의 허기진 하루가 거세당한 식욕처럼 벗겨지고 있다
강제된 소식(小食)은 목에 묶인 끈을 잊게 하나
어부의 낚싯바늘이 되어 쉼 없이 물갈퀴 허우적댄다
한줌으로도 움켜쥘 수 없는 식욕 속으로 자맥질하며
잠수와 부상을 거듭하는 동안
가마우지의 숨은 떡밥처럼 부풀어 오른다
만족을 모르는 어부의 손이
더욱 필사적으로 목줄 조여 온다
눈물이 강물 위에 파문을 그리는 저녁 무렵에야
조여진 목구멍을 비웃으며 물고기 한 마리가
가마우지의 빈 위(胃) 속으로 떨어진다
오늘도 다큐멘터리를 찍고 온 내가 냉큼 삼켰던
마이너스통장의 대출 잔액을 더욱 부풀게 하는,
내 월급의 가시가 목구멍을 후비며
쓰디쓴 위액이 가득한 위장 속으로 입수하는 저녁
삶에 대한 갈망은 모욕보다 뜨겁다
최옥자 시인의 <가마우지가 사는 법> 전편
여행을 하는 동안 내 자신의 상처가 응혈된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과 만난다. 오렌지빛으로 충혈된
가로등을 따라 차가운 브룩클린 다리의 속살을 건었다. 애상이
무늬가 되고, 슬픔이 곡이 되는 바다의 풍경, 저 너머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움켜쥘 수 없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나/너/우리의 구분
위엔 약한자와 강한자의 빗금이 그려진다.
우리 모두 물의 자식이건만
영혼을 감싸는 따스한 어미의 자궁 속
물의 기억들을 잃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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