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뽁뽁이로 만든 드레스-입는 즐거움과 터트리는 즐거움(?)

패션 큐레이터 2008. 9. 23. 09:07

 

S#1-커피는 상처를 삭힌다

 

언제부터인가 커피홀릭이 되어 있었다. 사무실 책상 옆엔 커피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계를 갖다 놓았고, 예쁘게 채색된 도자컵도 가져왔다. 금요일날 졸업 패션쇼를 가기 전, 막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바리스터가 운영하는 커피가게를 들렀다.

 

이곳에 가면 난 마음이 참 편한 것이 항상 느릿한 재즈가 흐르고, 커피향 가득한 가게에 앉아있으면 백일몽을 꾸는 것 같기 때문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항상 커피열매를 고르고 주인 아저씨는 매일 열리는 커피 현장강의를 준비하고 게신다.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 길에 "이곳에 오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라고 이야기해 드리고 왔다.

 

오늘 처럼 초가을 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엔, 몸의 혈중도가 떨어지는데, 이럴땐 이디오피아산 요가체프가 제격이다. 물론 사진 속 커피는 수마트라산 만델링이다. 요가체프가 신산한 느낌을 준다면 만델링은 씁쓸하다. 처음엔 이 맛을 잘 몰랐는데, 마음 한구석이 뭔가 모를 속도감에 눌리거나, 괜히 허한 느낌이 들때 이 커피를 마시고 나면 속이 풀린다.

 

한잔의 커피는 한벌의 옷과 같다. 적어도 내겐, 물론 가격대를 단순비교하자면 터무니 없는 비유일수 있으나, 그 속성들을 파고 들어가면 꼭 그렇진 않다. 커피는 향과 혀끝에 닿는 미각으로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옷도 그렇다. 입는 이와 입혀진 물체로서의 옷이 어떤 작용을 하는 가에 따라 전체적인 느낌이 바뀐다. 한벌의 옷을 입으면 일주일 동안 기분이 좋았다. 농담삼아 기분전환을 위해 옷을 산적이 꽤 많은 걸 보면 이 말이 맞나보다.

 

 

졸업작품전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친구와 함께

근처 평창동의 미술관에 들러 와인 한잔을 마셨다. 우연히 둘러봤는데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내 눈길을 끄는 작품 하나가 보였다.

패션과 미술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 두가지를 함께 묶어

설명할 수 있는 화재나 소재거리가 등장하면

동물적으로 촉수가 선다.

 

가슴부분이 깊게 패인 이브닝 드레스인데

자세히 보니 소재가 특이하다. 옆에 있는 상의와 하의 모두

동일한 소재로 만든 것 같다. 처음엔 언뜻 보고 광택 나는 타일인줄 알았다

 

 

자세히보니 에어캡이다. 여러분이 흔히 뽁뽁이라 부르는 포장재료다.

파손을 막기 위해 택배시에 자주 사용하는 이 뽁뽁이는 꽤나 재미난 소재다

사실 많은 이들이 이 뽁뽁이를 터트리는 재미난 장난감으로 사용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놀랍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는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박건희란 작가인데

옷에 대해 관심이 많나보다. 적어도 옷에 대한 철학을 '제 2의 피부'로 규정을 하고

자신의 설치작업에 끌어낸 걸 보면 말이다.

 

옷은 우리신체의 확장이다. 옷은 우리를 보는 이들과 연결시키고

사회속으로 끌어당기는 일종의 자석과 같다. 그래서 제 2의 피부라고 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사회의 미시적인 단면들을 고고학적으로 캐어물을수 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거다.

 

자세히 보니 뽁뽁이 하나하나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삽입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뽁뽁이 하나하나에 발포되어 있는 물감의 빛깔은

정신적 외상과 상처들의 색깔이란다. 마치 몸에 소름이 돋거나 솟아나는 발진처럼

치유를 필요로 하는 아픔의 무늬다.

 

 

옷은 일차적으로 내 몸의 상태를 드러내는 매개체가 된다.

이후에 몸의 각 돌기마다 솟아나는 상처들은 외과적인 수술이나 약물이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을 통해, 터트려 없애고 싶은 상처다.

작가는 그렇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이 상처들을

치료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물론 잘못 터트리다간 옷에 묻을수 있으니 낭패)

 

오늘 주간 한국지에 <패션과 미술> 특집기사가 나왔다.

"패션, 미술의 바다를 유영하다"(클릭)

피쳐링 기사라 신경을 써서 집필했다. 나 이외에 기자들과 패션디자인 전공 교수들의

글이 기고될 예정인데, 내가  가장 먼저 포문을 여는 첫번째 라이터가 된 것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패션과 미술의 만남에는 입는 즐거움과

터트리는 즐거움이 함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기쁨을 찾아내 도전한 것 뿐이다.

 

또한 우리 안의 상처들과 그 무늬가

광택나는 타일로 만든 것처럼 화려할 수 있는 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처가 아물고, 고마리꽃 무늬처럼

승화될수 있음에 대한 믿음이다. 마냥 파손을 막기 위해 갖혀있는

상처가 되어선, 결코 꽃으로 피지 못한다.

 

자 이제 터트리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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