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어제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등장했다.
최근 발행된 법보신문의 기사를 빌어 현 정권의 종교에 대한 태도를 비판한 기사였다.
국토해양부가 관리하는 대중교통정보이용시스템에서 기존에 표시돼 있던 수도권의 조계사·봉은사 등
대형 사찰 등 모든 사찰에 대한 표시가 삭제돼, 불교계가 강력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반면에 교회에 관한 정보는 사찰과는 대조적이어서 봉은사 주위에서만 삼성제일교회 등
7~8개에 달하는 교회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교회의 경우 ‘十’ 표시와 함께 선명하게 지도에
그려져 있어 마치 교회 홍보 지도를 연상케 하는 시스템이었음을 드러냈다.
시민들과 불교계가 "종교전쟁을 하자는 거냐" "공약대로 한국을 하나님에게 봉헌하겠다는 거냐"며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이 정권의 친 기독교적 행태가
얼마나 이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기독인의 한 사람으로 항상 부끄러운 마음 금치 못한다.
나 자신이 기독인이지만, 이런식의 행태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태도를 신앙적 관점에서 보는것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오늘은 후자의 입장을 따른다. 신앙적 관점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할수는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대표자로서, 그가 가진 종교관은 사회적 관점의 틀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왼쪽 사진은 예전에 한번 채플을 드렸던 프린스턴 대학의 채플실이다.
오른쪽은 캐나다 벤쿠버에 있던 시절, 가장 존경하는 신학자, 목사로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유진 피터슨이란 분이다. 캐나다에 있던 시절 신학자 유진 피터슨에게
설교를 듣거나 강의를 들을수 있었던 목요일 저녁이면, 나는 항상 그의 목소리에서
한가지 메세지를 발견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바로 예수의 삶을 그대로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기독교적 영성을 강조하며 일상적 삶의 차원을 강조한 신학자다.
유진 피터슨을 보면 떠오르는 스님이 한분 계시다. 바로 법정스님이다.
수필가로서, 문장가로서, 구도자로서 사실 난 이분의 열렬한 팬이자 그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두 분을 종교인으로서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의 존재론에
대해 온화한 미소와 행동으로 답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은 기독인인 내게 '안식일'의 의미를
새롭게 알려주신 분이다. "쉼이란 신이 창조한 우주적 리듬을 몸으로 감싸안는 일"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법정스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여름편을 읽고 있는데
문장 속에 박혀있는 생의 고운 시편들을 발견하면서 구도자로서의
이분의 면모에는 그저 감탄과 부러움만 있을 뿐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휘장을 두르고 "우리교회로 오세요"
"우리 교회 목사님이 영험해요"란 말을 하는곳은 없다. 한국적인 특이한 종교적 풍경이다.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교회 내의 영성개발로만 바꾸어 새벽기도와 수요예배,금요철야 등 수많은
예배로 성도를 구속하고 개인의 영성이 사회적 행동과 연결되지
않도록 한 것이 이 땅의 개신교다.
종교 사회학은 종교 형태를 흔히 시간상의 발전 순으로
교회원(ecclesia)과 종파(sect) 숭배집단(cult)과 교파(denomimation)으로 나눈다.
이 땅의 기독교는 그럼 지금 어디에 있나? 양식상으로는 교파에 있으나, 실제 내부의 정신적 상태를 보면
숭배집단에 가깝다. 교파로 발전하려면 타종교나 사회적 에토스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갖는 것이 보통이나, 유독 한국사회에서 이런 기독교적 사고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현대 기독교가 숭배집단(cult),즉 컬트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 땅에 기독교가 수입되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1920년대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이 땅의 교회는 교회를 공산세력과 맞서는 힘으로 규정한다.
이 폐해가 아직까지도 남아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갱이넘들이 많은 곳이
MBC가 아니냐"며 주일 설교에 뻔뻔스레 떠들어대는 작태를 만든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가리켜 '김정일 치하에서 살아가라'며 극악 무도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서경석 목사의 멘탈리티에도 이런 근본주의 신학의 폐해가 남아 있다.
2003년 초기 알고가 서비스가 시작되던 때 존재하던 사찰표시가
왜 업데이트 된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삭제가 되어 있었던 것일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종교편향적 태도를 지적하면서 자칫 종교전쟁이 비화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사과문 공지로는 부족하다. 그 진위가 명확하게 보인다. 아주 자그마한 교회조차도
맵 상에 발견할수 있도록 특수표시까지 하면서 그 천년고찰은 빼먹은 의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종교적 편향성과 대통령의 의지에 수족 노릇하는 공무원의 작태라고 밖에는 볼수 없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 내부
종교는 사회 내에서 사회통합적 기능을 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타종교에 대한 배려와 그 사회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 또한 크리스천이지만, 개인신앙의 차원과는 다른 사회 구성체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이 부분을 승화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교회는 3가지 기능을 갖는다. 말씀선포(케리그마)와 디아코니아(사회적 구제)
코이노니아(성도간의 교제)다. 그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세 가지 기능을 잘 해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들의 교제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고
사회적 구제가 교회내의 일원에게 제한되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선 우선순위를 그들에게 두라고 하신다)
그렇게 공고하게 만든 그들만의 리그는, 성경에도 없는 자신들만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기독인을 키워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선포한다.
이를 위해선 정치/종교/사회/문화 각 분야에 리더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가서 성공하여
대통령이 되고, 국가 고위급 공직자가 되라고 말한다. 요즘 들어 부쩍 늘은 교회 내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들은
바로 이러한 맥락 위에서 발생했고 그 세력을 여전히 키우고 있다.
문제는 이 주장이 한발 더 나가, 사회통합의 기능을 해야 할 종교가
타 종교를 배척하는 수준, 더 나아가 '그들을 없애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는 것'으로
포장되면 이건 아주 위험천만하다. 이 사고가 낳은 부산물이 최근 추부길의
'사탄발언'이고 대형교회 목사들의 '기독장로 감싸기' 행태다.
최근 성보를 훼손한 경기여고 주영기 교장의 경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사태 수습을 더욱 힘들게 했다.
교직원들의 반발로 불교 유물을 땅에 뭍었다가
다시 꺼냈으나 이를 공원에 방치함으로서 빈축을 산 것이다. 이번 지도 상의 사찰삭제 사건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 신앙과 사회 내의 통합기능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건이다. 기술적 누락이란 표현을 쓰던데,
엔지니어에게 다 뒤집어 씌우겠다는 심산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Porting 잘못 되었다고 핑계대고 싶은 모양인데(지도정보를 연결하는 것)
엔지니어가 지도내부 정보까지 건들지는 않는다.
불교가 그렇게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나보다. 불교는 '공공의 적'이 아닌 대한민국 사회에서
함께 어우려져 살아가는 종교임을 기억하라. 부끄럽지 않은가? 민심 달래보겠다며
불교계 지도자 앞에서 온통 쇠고기 이야기만 하더니(스님들은 육식 안하신다)
결국 그들을 이용해먹고 뒤로 가서는 이렇게 기독세력 키우기, 그것도 자신의 편에 서는
교회들의 진용을 갖추어 준 일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한것이 없다.
하긴 불확실한 상황에서 확실한 내편 만큼 좋은 것은 없을거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개신교 성도면서도 난 이명박 대통령의 친 기독교적 정책이 그리
미덥지 않다. 나는 분명 밝혔듯, 기독신앙을 가진 사람이고, 그렇다고 종교적 다원주의를
믿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기독인으로서 살아가기에
나와 너의 관계는 결국 대화적 관계,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의미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맨날 소통을 강조하긴 하는데, 여전히 그 의미의 본질을 아는 대통령이라
믿기엔 미진한 부분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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