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시작하면서 몇 개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곧 출간하게 될 책이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랬고, 러시아 횡단열차 여행을
성공리에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2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컴퓨터 앞에서 지나간 나날들, 겨울의 환 속에 펼쳐진
시간 속 무늬들을 부족한 기억력을 동원해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조립하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러시아를 횡단하고 견문을 쌓는다는 관점을
견지하지 않았습니다. 부상하는 러시아 미술을 살펴보고, 주요 미술관을 가고
상업갤러리에 가서 관계도 쌓는 일. 중요했지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현실이란 오감으로 느끼는 오만가지 편린들의 무한한 조합을
내 생에 가장 긴 기차여행의 시간 속에서 맞추어보는 일이었습니다.
표피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통찰력은 결국 여행과 독서, 생경한 풍경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20일 전날 속초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첫번째 미션.
러시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톡과 연결된 자루비노란 작은 항구로
출발하는 배가 있습니다. 3시에 출발하기로 했던 배는 선내 검사 문제로
계속 늦어져 5시 반이 되어서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겨울 햇살이 잔멸하는 시간
서로가 시간을 내기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많은 걸 감수하며
이번 여행에 함께 한 형과 동생들이 있습니다.
첼리스트였고, 지금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그는 삶의 이정표를
음악에서 건축으로 바꾸었지요. 이국적인 외모에 첼로의 현음같은 저음부의 목소리를 가졌답니다.
인기도 참 많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자매들의 데이트 신청이 줄을 잇지요.
클래식과 함께 힙합도 좋아하는 멋진 청년입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고
향후 법을 동시에 공부해서 건축 관련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지요.
악보 속에 음표를 하나하나 위무하는 일, 연주하는 일도 사실 집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음악적 상상력이 가득한 집을 설계하고 싶다는 당찬 막내의 꿈을 지지합니다.
오른쪽은 우리팀의 정신적인 지주인 안광영 형입니다.
그는 오랜동안 사회생활을 했고, 이번 여행 전에도 미국과 동유럽 이외에도 다양한
나라를 횡단했습니다. 지금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그는 책을 읽기를 좋아하고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녹차를 꼭 마시는 버릇이 있습니다.
항상 누구를 만나도 환하게 웃는 버릇이 몸에 유전자처럼 새겨진 사람입니다.
오른쪽은 현재 동아일보에서 사진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홍진환 군입니다. 그는 포토 저널리스트이기 전에,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진사입니다.
최근 블로그에서 인기를 끄는 관광사진류 보다는, 한번은 생의 리듬속에 걸러진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 좋아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엔
그 표피를 너머 바라보면, 그것을 설계한 창조자의 지문이 묻어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행복을 찍는 사진사이기도 합니다.
6인실 3등 객실에 짐을 풀었습니다. 속초에서 출발하는 배는
15시간 후면 자루비노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생각같이 이 15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배가 생각보다 많이 흔들려서 3명의 동행자들 모두 배멀미로 고생을 했습니다.
저만 생생했답니다. 어린시절 바다에서 오래 살아 그런가보다 했지요.
가져간 햇반이랑 몇개의 참치캔, 고추장을 꺼내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선내 사진은 그리 많이 찍질 않았습니다. 2등칸은 침실칸인데
공개되어 있고, 인원이 적은 탓인지 러시아분들이 마구잡이로 차지하고 있더라구요.
해가 넘어가는 시간, 바다의 빛깔은 한 차례 변화를 겪습니다.
여행이란 일종의 도전은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를 가져다 주겠지요.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나라를 간다고 해서 기실 삶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일상사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지난 3년동안 한권의 책을 쓰느라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이제 출간을 앞두고 손을 떼어야 할때가 왔다고 생각했지요.
손을 떼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믿고 이제 온전히 그에게
내 원고를 맡기는 일이니까요.
배멀미와 흔들리는 선체 속, 여우잠을 자며
견뎌낸 15시간이 흘러......바다위에 산재한 땅에 뭍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올때쯤
우리가 지나가는 바다는 동결되어 있고, 배는 그것을 깨뜨리며
서서히 앞으로 나가아고 있었습니다.
황색의 쇄빙선을 따라, 얼음을 조금씩 부수며 앞으로 전진합니다.
우리의 여행도 거대한 바다를 얼린 추위 처럼
신산하고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여행은 아주 적은 예산을 들여
시작했답니다. 다해서 170만원 정도가 들었어요. 러시아에서 보낸 일정이 20일을 넘어가는데
이 정도의 예산이면 블로그에 올릴만 하다 싶네요. 내역도 하나하나 정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이제 점점 뭍에 가까와 옵니다.
마음이 설레야 하는데 두려움도 점점 커집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무덤덤하게 자리를 지키는 저 검푸른 바다의 포말 위에
사실 도착 전날 밤, 눈이 내렸습니다. 바다의 무동을 타고 건너는 이 광막함이
서럽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제 점점 자루비노 항이 가까와 졌네요.
내릴 준비를 해야 겠습니다. 자루비노는 화물배들을 받는 작은 항입니다.
지금은 미개발 상태지만, 러시아 정부에선 향후 몽고와 중국으로 갈수 있는 기차편의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요즘 투자가 한창인 곳이라고 하더군요.
굵은 밧줄이 검청색 바다빛 위로 햇살을 맞아 하얀 속살을 드러낸
얼음의 표면위로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그 끈을 잡아 영차 영차 끌어내겠죠.
팽팽하게 줄이 당겨졌습니다.
우리의 여행도 이 정박의 순간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글을 쓰는 이 시간 드는 군요. 여백과 긴장, 두려움과 즐거움이
이 배를 내리자 마자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출발하네요.
유키 쿠라모토의 연주로 듣습니다. Virgin Road.....
우리들의 첫 여행길을 축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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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기는 본편과 번외편으로 나누어 편집하려고 합니다.
우선 사진만 추려내어 기본적인 내용들을 정리한 충실한 여행기를 쓰고
후에 번외편에서는 동영상을 통해 다시 한번 생생하게 현장을 그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주요 미술관은 아예 동영상으로 편집하고 있습니다.
주요 미술작품들을 여러분을 위해서 현장에서 촬영해서 찍었습니다.
제가 그림읽는 자키가 되어 여러분에게 작품을 해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번외편에서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경비와 여행 관련 팁 까지
다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할께요. 이번 여행기만 잘 읽어도 러시아 횡단열차 여행이
상당히 쉬워지도록 배려해서 쓸 생각입니다. 물론 저희들이 고생해서
얻은 정보이고 경험이니만큼 좋은 점수도 주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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