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케냐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기억해야 할 '생각의 거리(food)' 또한 풍성하게 차려준 시간이었다.
케냐란 거대한 담론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의 무늬를 살펴보는 일은 기쁜 작업이었다.
도착한지 이틀째날 일행은 카리오방기(Kariobangi)지역으로 떠났다.
버스를 타고 케냐 국제공항과 합류하는 외부도로를 경유해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카리오방기에 간다.
사전 조사를 많이 하지 못한게 아쉽다. 앞으로의 글에서도 하나씩 서술할 생각이지만
케냐란 국가행정과 정치적 후진성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설명하게 될 지역들을 명확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렵다.
카리오 방기는 1961년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의해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
(정말이지 철저한)불균형 개발이 이루어진 곳이다. 원래 사진에서 보이는 초등학교를 비롯
카톨릭과 개신교, 외부지역과 맞닿은 재래시장 소유로 된 땅이었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케냐 정부의 부정부패로 인해 부동산 개발의 공공성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소수의 <민영개발업자>들에게 넘어간 이 카리오 방기는 하루아침에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재래시장과 학교가 어루어져 있던 고요한 풍취를 상실한채
슬럼으로 변해가게 된다. 민영화로 넘겨진 부동산 개발정책은
아이들이 뛰어놀던 대지를 하루 아침에 종류를 셀수 없는 방갈로와 얼기설기
지어진 목조가옥들과 간이아파트로 채워졌다.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를 맞아준 것은 학교의 아이들이었다.
환영의 노래와 함께 선보인 아이들의 춤 솜씨는 나를 놀랍게 했다. 춤이라면 다양한 장르의 것들을
다 소화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직감적으로 난 춤에 반응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이랄까, 아이들의 손끝과 웨이브엔
그들만의 생동하는 그루브가 있다. 나는 이런 자유로움이 토해내는 감정의 빛깔들에 원초적으로 끌린다.
땅의 빛깔을 닮은 갈색 유니폼과 고수머리의 아이들이 눈을 마주치며 우리를 반겼다.
어떤 지역을 가던, 항상 내가 관심을 갖는 두가지의 주제가 있다.
바로 교육환경과 문화적 설비인데, 원래 이 지역은 카톨릭을 비롯한 기독단체들이 세운
학교들이 서로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며 자족적인 성장을 했었다. 교과서 공급이 어려운 아프리카 전 지역의
아이들은 여전히 교육의 수혜로 부터 멀어있고, 이러한 삶의 악순환은 소수의 비효율적인
독점체제와 맞물리며 더욱 빈곤의 극대화로 연결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않는 선생님과 아이들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다. 최근들어 여러 NGO들이 연합하여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고, 척박한 삶의 환경들을 개선하기 위한 일차 프로젝트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우리팀을 가이드해준 현지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공공목욕탕을 현재 짓고 있고
앞으로 쓰레기 소각장 설비가 들어오기로 되어 있어서 실업난을 어느정도 완화 시켜줄 것이라 한다.
작가 세바스티아오 살가도의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가난과 삶의 핍진함이 눌어붙은 그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다. 프레임 속에 잡아낸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공동 광산에서 폭압속에서 노역에 던져진 살가도의 사진 속 사람들과 어딘가 모를 유사성을
보여준다. 바로 지금 곤핍과 핍절이 생을 규정하는 씨실과 날실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누가 도움의 손길을 던지게 될까.
하나같이 수인성 전염병과 천식, 만성적인 영양결핍과 실업이
이들의 삶의 하중을 더욱 무겁게 한다. 아이들이 내뱉는 가래침엔 모래알이 좋다고 옹글옹글 달라붙어 있고
아이들의 상처에서 흐르는 고름은 일찍 저버린 가을꽃처럼 말라있다.
가가호호 집을 돌면서 일인이 3일을 아껴 먹을 수 있는 최소의 식량을 전해주고
그들의 아픔을 듣고 기도하며 걸었다. 마음의 문이 막힌다.
바로 생의 저편에서 풍성함에 가눌 수 없는 육체를 지리던
난......절대적인 빈곤과 상처 앞에서 더 이상 그들을 동정하거나 읽어 낼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
저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생채기를 내 눈물로 닦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소망한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따스한 체온으로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무지개빛 그림들을 얼굴에 그려주는 일이다.
카리오 방기의 아이들은 원래 자신의 땅을 빼앗긴 아이들이다.
땅을 상실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의 박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혈맥의 역사와 거리 구석구석에 베어나오는 삶의 정체성을
송두리채 빼았겨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페이스 페인팅을 받으려고 줄을 선 아이들의 모습이
길가에 즐비하게 피어난 고마리 꽃을 닮았다. 그렇다 아이들의 영혼 속엔 항상 한 송이의 꽃이 있다.
적어도 아이들의 얼굴에나마 붉은색과 오렌지색, 하늘을 닮은 사이언을 풀어
잃어버린 땅을 채색할 명징한 무늬들을 수놓아 주고 싶었다......
이번 캐냐 여정내내 나를 도와준 좋은 친구 페이스
올해 23살인 그녀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 올 12월에 자격증을 취득하면
이곳의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성글은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환한 오후의 햇살 속에 나를 비추어 보게 된다.
많이 고맙다, 선한 생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궁핍한 시대의 목소리를 전하고, 그들의 비루한 생에 온 몸을 바쳐 자신을 태우는 것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번 여정 내내 가장 많은 고생을 한 곳이 바로 사진 속 의료팀이다.
부족한 장비와 인력,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장시간을 사람들을 실제로 대면하고
감염의 위험까지 무릅써야 하는 일들이기에, 그들의 열정과 헌신에 나는 감사의 묵도를 올린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무언극은 많은 호평을 받았다.
당장의 빵과 직업이 필요한 자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려면, 그 내면엔 강한 긴장의 힘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연극을 오랜 동안 하면서 익힌 적나라한 현실이다. 물론 연극에 임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연기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많이 미숙하고 부족하다.
하지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과 동시에 내 안에서는
저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세 음절의 메세지가 깊은 내면 속에서 우러나온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이 생의 척박함이 영원한 지속이 아닌 잠시동안의
상흔에 불과하다는 걸, 힘내라는 말을 그렇게 건내고 싶었다.
어디를 가건, 아이들의 미소를 보는 일은 이 비루하고 남새스런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다. 생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난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는 마치 금강경에 나오는 인디라의 구슬처럼
서로 얽혀져, 맑고 명징한 생의 힘을 이끌어낸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과 언어가 자란다.
세상을 지으신 이가 존재한다면, 그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가치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증명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나 보다도 더 큰 상처를 가진 인간과의 조우와 만남을 통해서다. 돌에 부딪히는 물이 작은 포말을
일으킬때 그 물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듯,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저들의 상처에 입술을 대고 입맞추며, 그 상처의 경계에 피어난 소망의 꽃들을
바라볼때임을 기억하자. 일회성 기억으로 끝나선 곤란하다.
무책임하게 툭툭 던지는 중보나 기도의 언어도 조심스레 사용할 일이다.
언어는 그만큼의 힘이 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생명의 언어가 되어
잦아있는 내 영혼의 마음판에 새겨진다. 무언가를 주고 가야지란 마음에 이곳을 찾았지만
기실 얻은 것의 합이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부박하고 버겨운 생의 무게를 한숨에 날려버릴
환한 오후의 웃음속에, 희망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들의 몫일 수 밖에 없음에 대한
강한 긍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경계에선 항상 꽃이 핀다고 한다.
황홀한 삶의 목적이 있다는 것.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우리 내 삶의 풍경 속에서
가능하게 하는 것도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신은 발화하고
우리에게 말을 건낸다.......
너무나도 고맙다.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맙다.
커다란 슬픔을 나누면 그 영혼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다시 배운다.
이제부터는 내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희망과 웃음이 새어나오도록 흘려보내야 겠다.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다시 한번 손을 모은채로 말이다.
아니.....우리를 맞아준 한 아이의 웨이브처럼 그렇게 유연하게
내 웃음과 힘을 너희들에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사랑한다.....사랑한다......
'Life & Travel > 해를 등지고 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쿠나 마타타-케냐의 초원에서 심바와 뒹굴다 (0) | 2007.08.14 |
---|---|
케냐 나쿠루 공원에서-플라밍고와 함께 춤을 추다 (0) | 2007.08.13 |
마사이족과 함께 축구를 하다-이 남자의 케냐 오지체험 (0) | 2007.08.05 |
케냐에서 보낸 한철..... (0) | 2007.08.05 |
천일동안...... (0) | 2006.10.11 |